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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사회‧정치적 논쟁과 분쟁은 여러 방면에서 계속되고, 정치에 대한 민주적 기대는 온전히 충족되지 않는 혼란과 불안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세상 질서에 대한 완전한 희망이 충족될 수 없다는 이러한 현실만큼이나, 이 세상의 질서에 대한 완전한 실망도 타당하지 않거나 어리석은 일임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아마도 2026년 제헌절을 맞은 우리들이 마음속에 단단히 품어야 할 헌법적 묵상일 것입니다. (본문 중)

 

이병주1)

 

2026년 7월 17일, 우리는 2024년 12월 3일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법적 질풍노도를 거친 후, 다시 제헌절을 맞이했습니다. ‘제헌절’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느낌은 다소 딱딱합니다. 특히, 박정희, 전두환의 군부 독재 시기의 반민주적인 유신헌법과 5공 헌법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는, ‘제헌절’, ‘헌법 준수’라는 말 자체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부정적인 기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2026년 지금 우리가 가진 헌법은 1987년 전국의 거리를 가득 메웠던 6월 민주 항쟁의 결과로 1987년 10월 29일에 개정된, 이른바 제9차 개정 ‘1987 헌법’입니다. 1948년 7월 17일 처음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은, 그 후 한국전쟁 중의 1952년 제1차 발췌 개헌, 1954년의 사사오입 제2차 개헌, 4‧19 혁명 후 1960년의 제3차, 제4차 개헌, 5‧16 쿠데타 이후 1962년의 제5차 개헌, 1969년의 제6차 삼선 개헌, 1972년 극단적 독재를 추구하는 제7차 유신헌법 개헌, 1980년 계엄 내란 후 신군부의 독재를 제도적으로 보장한 1980년의 대통령 간선제 헌법으로 이어진 제8차 개헌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8차례의 헌법 개정 역사는 그 자체로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오욕을 증언해 줍니다. 또한 1948년부터 1987년까지 불과 39년 동안 9차례의 헌법 개정으로 최초 헌법을 포함해 무려 10개의 헌법이 평균 4년도 지속하지 못했다는 점은, 한국 민주주의 헌법의 불안정성을 보여 줍니다.

 

 

그에 비한다면, 1987년에서 2026년까지 똑같은 39년 동안 1987 헌법이 한 번도 개정되지 않고 대한민국의 사회‧정치 질서를 유지하고 움직여 왔다는 것은 한편 놀라운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9년의 시간이 짧지 않다는 것은 1910년에서 1945년까지의 일제 강점기가 36년이라는 점과 비교해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로서 헌법의 적용과 혜택을 받지 못했던 36년의 ‘무헌법 시대’를 거쳐, 1948-1987년 압도적인 독재 권력의 힘에 눌렸던 39년의 ‘독재 헌법 시대’를 지나, 1987-2026년의 민주화 운동의 열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39년의 ‘민주 헌법 시대’를 우리가 살아왔다고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현행 1987 헌법의 개정에 관한 논의가 여러 방면으로 전개되고 있기는 하나, 40년 가까이 개정되지 않고 유지된 1987 헌법의 견고한 안정성과 민주적 기능성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필자의 「좋은나무」 기고 “헌법과 기독교 신앙”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국민 주권, 기본권, 권력 분립의 세 기둥으로 이루어진 1987 헌법의 내용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원리나 계명들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헌법 제1조의 ‘국민 주권’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창 1:28)가 왕이나 독재자 1인에게 독점적으로 부여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사람들에게 공동체적으로 부여된 것임을 선언합니다. 헌법 제10조에서 제39조까지가 규정하는 국민의 헌법적 권리와 의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헌법 제10조)과 하나님 아래 모든 사람들의 평등(헌법 제11조)을 보장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만큼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사랑 계명의 실천을 공적으로 강제하고, 사회적 자기 부인과 이웃 사랑의 자기 십자가를 제도화한 국민의 납세, 국방 의무 등과 공공복리를 위한 기본권 제한 규정(헌법 제37조)을 두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헌법 제3장에서 제8장까지의 많은 내용을 차지하는 정부의 구성과 권력 분립에 관한 상세 조항들은 권력에 대한 불신을 뼛속까지 제도화하게 만든 세속 역사의 참혹한 경험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세상 권력이 선과 악을 심판하는 권한을 독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해로운지 경고하는 창세기 제3장의 선악과 계명(창 3:6)의 정신을 따라, 권력을 최대한 쪼개고, 나누고, 시간으로 제한하고, 상호 간에 서로 통제하게 함으로써 선악과의 독을 해독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해독제 기능을 마련해 놓은 것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 헌법은 ‘하나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주기도문의 제3청원(마 6:10)처럼, 기독교 신앙의 핵심 계명인 이중 사랑 계명과 선악과 계명 등이 인류의 역사 속에, 그리고 우리나라의 사회와 제도 속에 각인되어 작동하도록 만든 큰 성과라고 보는 것이 정당합니다.

 

1987 헌법 체제 아래서 우리나라의 정치는 보수-보수-진보-진보-보수-보수-진보-보수-진보로 10년 또는 5년 간격으로 쌍방향의 정권 교체를 순환적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정권 교체를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한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와 비교하면, 이는 한국 헌법이 아시아에서 가장 실질적인 민주주의 정치를 운영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진보, 보수 정권 간의 교체는 싸움과 실망을 낳기도 하지만, 한쪽만의 영구적인 권력이 유지되는 것보다는 훨씬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보장합니다.

 

39년의 기간 중 2명의 직선 대통령이 헌법 위반으로 탄핵당해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되고 형사 처벌을 받는 일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1987 헌법 하의 민주주의가 여전히 갖고 있는 불안전성과 위험을 드러낸 약점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큰 선악과를 들고 있는 대통령의 권력 일탈을 제지했고, 헌법적 절차를 통해 그 대통령으로부터 선악과를 제거하는 데 두 차례나 성공했다는 것은, 대한민국 1987 헌법의 가장 큰 공헌이자 역사적·국제적 성과라고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1987 헌법에서 사법적 선악과를 대법원이 독점하도록 하지 않고 헌법재판소를 만들어 다시 분립시키고 특별히 ‘정치적 선악과의 헌법적 일탈을 통제하는 기관으로 설치한 부분은, 이 헌법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법관 구성이 계속 변화하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들이 때로는 어이없거나 불만스러운 경우도 많지만, 헌법재판소의 객관적 기능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것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진리입니다.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 노력은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 인간들이 완전히 의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인간들이 추구하는 사회적 정의’(Searching for the Justice by the Unjust people),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Image of God)과 인간의 죄 된 본성(Evil Human Nature)을 종합하고 있는 성악설적 민주주의 헌법의 질서입니다.

 

오늘도 사회‧정치적 논쟁과 분쟁은 여러 방면에서 계속되고, 정치에 대한 민주적 기대는 온전히 충족되지 않는 혼란과 불안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세상 질서에 대한 완전한 희망이 충족될 수 없다는 이러한 현실만큼이나, 이 세상의 질서에 대한 완전한 실망도 타당하지 않거나 어리석은 일임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아마도 2026년 제헌절을 맞은 우리들이 마음속에 단단히 품어야 할 헌법적 묵상일 것입니다.

 

헌법은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지는 못하지만, 이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 줍니다. 우리가 1987년에 우리의 힘으로 독재를 중단시키고 만들어 놓은 1987 민주 헌법이, 39년 후 이 나라가 계엄 지옥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습니다. 이 일에 대해 우리 모두와 한국 사회가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아마도 하나님 앞에서도 칭찬을 받을 일일 것입니다. 세상일들은 앞으로도 계속 울퉁불퉁할 것이고 우리의 정의에 대한 소망과 노력은 앞으로도 희망과 실망을 거듭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가 견디어 내야 하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꽤 잘해 왔습니다. 세계의 다른 나라 공동체들에게도 꽤 좋은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요즈음, 한국 교회는 영 아닌데, 그래도 한국 사회는 꽤 괜찮은 편입니다. 여기에는 우리 모두의 노력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2026년 제헌절에 함께 느끼는 헌법적 자부심과 다짐입니다.


1)  변호사, 법무법인 지향, 평신도신앙실천운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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