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동시에 아시아에서는 평화를 진전시켰다. 나름의 이해관계와 전략이 있을 뿐, 평화가 내장된 인물이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유럽어를 구사하는 삼십 대로, 이념보다는 번영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이전 세대보다는 낫지만 일관되게 평화적 수단만 찾지는 않는다. 평화를 목표로 한다면 우리는 북·미 양 측만 바라보는 관객이 되어서는 안 된다.(본문 중)

윤환철(미래나눔재단 사무총장)

 

‘깨진 협상’의 추억

 

“거, 하지 말자우!”

 

북측이 먼저 요구한 ‘비닐 박막’(보온 못자리용 PE 필름)’ 문제였다. 벼농사 시기를 앞당기면 쌀을 주는 것보다 낫다. 우리 측은 얇은 두께, 모니터링을 위한 방북, 개성 육로를 주장했고, 북측은 두꺼운 것, 화물선 운송을 주장했다. 햇빛이 투과해야 하므로 얇아야 하지만, 두께가 곧 가격이기도 하고 두꺼운 걸 받아내면 뭐든 다른 것을 만들 수도 있다. 선편은 육로보다 4배 비싸고, 모니터링 요원의 방북도 어렵다. 우리는 5일간에 걸친 육로 운송에 매일 후원자 12명이 함께 간다는 합의서 초안을 내놨다.

두께 문제는 자연법칙이 승리했지만, 육로는 완강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비닐의 도착지는 남측 사람과 물자가 뻔질나게 드나드는 개성공단이 아닌 ‘봉동역’이었고, 거긴 주민들이 사는 마을이 있고, 군부대까지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우리 군부가… 허락을 안 해요!”

“길을 여는 건 당신들 일이고, 최적의 물자를 최단 거리로 전달하고 남측 주민들에게 확인시키는 게 우리 일이오.”

 

모내기 날짜가 임박해 오고, 더 늦으면 지원 효과성이 떨어질 것이 우려되자, 동료 지원단체들은 북측이 원하는 대로 주자는 태도를 보였다. 십억 단위의 물량을 여러 공장에 발주한 터에, 이 협상이 깨져서 비닐이 갈 곳 없어진다면 우리도 곤란하다. ‘남남갈등’까지 촉발된 상황에서 북측이 판을 깰 듯 흔들어 댄 것이다. 속은 타들어 갔지만 밀릴 수는 없었다. 내가 포커페이스 기능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뭐, 그럽시다.”

 

협상장을 박차고 나와서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서울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내가 왜 저들을 상대해야 할까….’

 

“그 비닐 러시아에 보낸다고 해라.”

 

상황을 파악한 회장님이 북측에 “너희가 안 가져가도 비닐 필요한 곳은 많다”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나를 위로하시는 말이기도 했다. 잠시 남북 갈등도, 남·남 갈등도 잊자 하는데, 낯선 중국 번호가 찍혔다. 북측이었다.

 

“거어 … 우리가 육로를 열 테니까니, 비니루 생산 하라우!”

 

완승이었다. 두께, 모니터링, 육로. 다 받아냈다. 오히려 5일간 방북단 60명을 채우느라 부산을 떨어야 했다. 우리가 대형 트럭 행렬을 이끌고 짐을 부려 놓자마자, 도내 촌락(협동농장)에서 각양각색의 자동차를 가지고 와서 면적만큼 비닐을 나눠 가져갔으니 모니터링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뒤로 삼 년간, 봄마다 이 일이 반복됐지만, 협상은 짧았다. 북측은 습관인지 의무인지 “육로가 어려우니 배편으로…” 했지만, “작년엔 어떻게 했소?” 이 말 한마디면 끝이었다. 남북 간에 새 길을 개척하기도 어렵지만, 한 번 열어젖힌 길을 닫기도 힘들다는 걸 발견했다.

 

백악관 대변인 새라 샌더스의 인스타그램

 

염화시중의 미소?

협상의 묘미랄까. 그런 게 북을 상대할 때도 있었던 것이다. 민간에서도 그럴진대 정부 간 협상에서 건질 게 왜 없겠는가. 하물며, 제2차 북·미 회담의 전주곡이 얼마나 길었던가. 그런데 어이없게도 ‘노 딜’이라니, 그리고 웃으며 헤어졌다니…, 그 웃음이 뭘까.

우선, 북·미 사이에는 이미 성사된 ‘딜’이 있었다. 미국이 군사훈련에서 북한에 대한 위협 요소를 축소하거나 제거했고, 북은 핵·미사일 실험 유예와 더불어 미군 유해를 무료로 송환했다. 양측은 협상의 묘미를 맛보고 있었다. 협상의 승-승 경험은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지점 바로 앞까지는 가게 한다. 그러나 북·미가 두 걸음 만에 거기 도달해 협상 자체가 깨질 만큼 그 전의 보폭이 크지는 않았다.

국제 관계와 국내 정치가 상호 작용하는 현실은 일상이지만, 선후의 우선순위가 뒤집히거나 상대방을 조종(manipulate)하려 든다면 본질을 달리 봐야 한다. 이 회담을 결렬시킨 ‘+α’가 뭐였는지는 짐작만 할 뿐이지만, 트럼프가 청문회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할 때, 이 회담을 ‘국내용’으로 전환한 것을 고백한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여정을 상세히 담은 기록 영상은 북쪽에서도 이 회담이 ‘국내용’이 된 것을 보여준다. 협상의 내용은 생략한 채, 10살 더 젊은 나이에 김일성 주석의 역사적 발걸음을 좇았고, 숙적이자 최강대국의 수반을 우방국으로 불러내 세계평화를 논한 ‘령도자’로 기록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전문가들이 트럼프가 국내 정치의 난관을 타개할 ‘성과’를 필요로 한다고 했을 때, 그 ‘성과’가 ‘노 딜’이 되리라고 상상했을까.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회담장에 볼턴이 장전되었을 때 결말을 짐작했을 것이며, 낯설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기들이 즐겨 쓰는 협상 전술을 상대방이, 그것도 뻔히 속이 보이는 상황에서 뭔가 ‘나 좀 이해해 달라’는 표정으로 꺼낼 때, 그런 종류의 미소가 지어질 수 있다. 쓴웃음인지 아닌지를 상대의 이후 행보에 걸어두는, 그런 표정이다.

 

‘령도자’들에게 평화가 내장돼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동시에 아시아에서는 평화를 진전시켰다. 나름의 이해관계와 전략이 있을 뿐, 평화가 내장된 인물이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유럽어를 구사하는 삼십 대로, 이념보다는 번영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이전 세대보다는 낫지만 일관되게 평화적 수단만 찾지는 않는다. 평화를 목표로 한다면 우리는 북·미 양 측만 바라보는 관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성장 박사(세종연구소)는, 회담 결렬 후 트럼프 대통령이 에어포스원에서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대화해서 그 결과를 알려주는 등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해 달라”라고 요청한 대로, 남·북·미 실무협의를 추진해서 제3차 북·미 회담을 열고 거기서는 이번에 회담을 결렬시킨 ‘갑작스러운’ 요구였던 ‘α’들, 즉 영변 이외의 핵과 ICBM들과 ‘민생 관련 유엔안보리 제재 해제’를 교환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1] 같은 연구소의 정재흥 박사는 “한국 정부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과도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남·북·미, 남·북·중, 남·북·미·중 회담 등을 주도적으로 개최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균형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2]라고 말한다. 수많은 전문가가 대한민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주문하고 있고, 그들의 말이 옳다.

일찍이 임마누엘 칸트가 주장한 대로 전쟁을 거부하는 시민들 간의 국제연대가 절실한데, 시민들은 각자의 나라에서 어떠한 독재적 발상도 없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공화제 질서를 유지하고, 정부에 평화를 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적정 수준의 자유적 질서가 보장되지 못한 북한 주민들도 전쟁을 회피하려는 면에서는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간주하고 스스로 ‘열린 사회’라고 생각하는 한·미·일의 시민들이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

 

‘무능론’을 넘어

이쯤 말하면 ‘무능론’이 튀어나온다. ‘약소국’,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어떻게 ‘경제 대국’을 논하다가 갑자기 졸아드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대미 관계나 대북 관계나 마찬가지다. 너무나 자주, 특히 교회에서, 듣는 말은 “북한과 협상하면 결국 우리는 공산화 된다”라는 말이다.

 

“그걸 찬성하세요?, 만약 그렇게 될 우려가 있다면 가만 계실 거예요?”

 

이런 대답을 자아낸다. 북한은 전능에 가깝고, 우리는 무능하다는 자기비하가 만연하다. 물론, 대한민국은 평화의 의지와 능력을 갖춘 정치 권력을 유지해야 한다. 집단적 자기비하는 정의로운 정권을 포기한 대중들, 혹은 부정의에 기생하는 정파들이나 가질법한 자의식이다.

이런 심리를 극복한 시민들이라 해도, 모든 걸 내려놓고 쉴 상황은 못 된다. 평화 기능이 내장되지 않은 북·미의 지도자들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도 우리 정부의 비상한 노력과 하늘의 도우심의 결과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세대는 평화의 단 열매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멀리서 보고 환영’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래야 무능론도 이기고, 자기 몫의 평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


[1] 세종연구소, 세종논평2019-6, 정성장,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원인과 한국 정부의 과제: ‘영변 핵시설 폐기 +α’와 유엔안보리 제재 완화 합의 이끌어내야”(2019.3.1.).

[2] 세종연구소, 세종논평2019-8, 정재흥,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중국의 시각(20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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