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러는 죄를 도덕 규칙 위반이 아닌 우상숭배로 표현합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이미 이 둘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켈러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 즉 도덕적 상대주의(moral relativism)에 젖은 현대인들을 고려하며 이점을 부각합니다. (중략) 켈러는 전략적으로, 죄란 ‘사람들이 가진 욕망의 추구와 그를 통해서 정체성의 안정감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제시하는 것입니다.(본문 중)

팀 켈러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④: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

죄는 단지 도덕 규칙 위반이 아니다

 

김상일(보스턴 대학교, 실천신학 박사과정)

 

지난번에 우리는 팀 켈러의 복음 이해를 다룬 『탕부 하나님』(The Prodigal God)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탕부 하나님』에서 켈러가 어떻게 복음을 사회적 상상이라는 차원까지 심화시키는지를 주목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복음이 사회적 상상이 되지 못하게 막는 또 다른 실재인 죄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죄가 어떻게 우리가 지녀온 사회적 상상을 강화시키는지를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Counterfeit Gods)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세 가지 작업을 할 것입니다. 먼저, 켈러가 죄를 도덕 규칙 위반이 아닌, 우상숭배로 표현하는 까닭을 살펴보고, 왜 죄를 우상숭배로 설명하는 것이 현대인들에게 죄의 의미를 소통하는 데 효과적인지를 살펴봅니다. 두 번째로, 우상숭배로 드러나는 죄의 실재가 어떻게 기존의 사회적 상상을 강화시키는지를 분석합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을 믿는 일이 어떻게 이런 죄의 실재에 대항하게 해주는 대안적인 사회적 상상으로 작용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좌)팀 켈러의 저서 『Counterfeit Gods』, (우)한국어 번역본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

 

첫 번째로, 켈러는 죄를 도덕 규칙 위반이 아닌 우상숭배로 표현합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이미 이 둘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켈러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 즉 도덕적 상대주의(moral relativism)에 젖은 현대인들을 고려하며 이점을 부각합니다. 죄를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말하면, 그들은 곧 “기독교를 믿지도 않는 내가 왜 기독교가 말하는 규칙을 지켜야 하느냐?”라고 반론을 제기할 것입니다. 그래서 켈러는 전략적으로, 죄란 ‘사람들이 가진 욕망의 추구와 그를 통해서 정체성의 안정감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제시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란 단어를 들으면 현대인은 목상 앞에 절하는 원시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사도행전에는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의 문화가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당시 도시마다 좋아하는 신이 있어서 신전을 짓고 신상을 숭배했다. … 우리 현대 사회도 고대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문화마다 그 문화를 지배하는 우상이 있다. ‘제사장’과 토템과 의식도 있다. 사무실이나 헬스장이나 스튜디오나 경기장 같은 신전이 있어, 행복한 삶이라는 복을 얻고 액운을 물리치려면 거기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 … 우리가 아프로디테(아름다움의 신) 동상 앞에 무릎을 꿇지는 않을지 몰라도, 오늘날 많은 젊은 여성이 외모와 몸매에 과도히 집착한 나머지 우울증과 각종 섭식 장애에 시달린다. 실제로 아르테미스(다산과 부의 여신)에게 향을 피우지 않아도 돈과 성공을 세상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면 우리도 자녀를 일종의 인신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직장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더 많은 재물과 위신을 얻고자 가정과 공동체마저 팽개친다. (내가 만든 신, 15-16)

이어서 켈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에스겔 14장 3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장로들을 가리켜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처럼 장로들도 그런 지적에 틀림없이 이렇게 반응했을 것이다. “우상이라니요? 무슨 우상? 저한테는 아무런 우상도 보이지 않는데.” 여기서 하신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마음이 성공, 사랑, 재물의 소유, 가정 등 ‘좋은 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마음은 그런 것을 신격화해 삶의 중심에 둔다. 그것만 얻으면 존재감과 든든함과 안전과 충족감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신, 16-17)

이렇게 현대인들에게 우상숭배가 어떤 것인지를 설득한 켈러는 우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무엇이든 당신이 그것을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말한다면 그게 곧 우상이다. ‘저것만 있으면 내 삶이 의미 있어질 거야. 나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내가 중요해지고, 안정감이 들 거야.’ 이런 관계를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지만 가장 적합한 말은 ‘숭배’(worship)일 것이다. 옛 이교도들이 사실상 모든 것을 신으로 본 게 지나친 상상력을 발휘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섹스의 신, 일의 신, 전쟁의 신, 돈의 신, 국가의 신이 있었다. 무엇이든 신이 되어 개인의 마음이나 대중의 삶을 신처럼 지배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 때문이었다. 예컨대 아름다운 몸은 좋은 것이지만 이를 ‘신격화’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는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단지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프로디테다. 사람들과 문화 전체가 끊임없이 외모 때문에 고민하고, 거기에 시간과 돈을 지나치게 쏟아붓고, 어리석게 성품까지 외모에 기초해 평가하게 된다. 당신의 행복, 삶의 의미, 정체성에 하나님보다 더 영향을 끼친다면 무엇이든 우상이다. (내가 만든 신, 23-24)

여기서 주목할 점은, 켈러가 현대인들이 우상숭배를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을 마음의 안정감, 정체성, 삶의 의미 등으로 표현하는 부분입니다. 내 삶이 지향해야만 하는 목적이 되는 것, ‘저것만 있다면 나는 행복해질 거야’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 우상이라면, 그것은 곧 내가 인생과 사회, 관계와 의미를 상상하는 방식을 모두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상은 내 삶의 의미, 내 삶의 목표, 나에게 정체성을 제공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상숭배로서의 죄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사회적 상상을 지배하게 됩니다.

현대인들이 이전 세대보다 이런 죄 이해를 더 쉽게 받아들이는 까닭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고 태어난 곳에서 평생 살아갔으며, 자신의 역할과 사회의 기대도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해야 할 필요가 별로 없었습니다. 반면, 현대 사회는 각 개인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직업도 가질 수 있으며, 어디에서든지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스스로를 규정짓는 일에 이런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체성의 불확실성을 느끼고 자신이 누구이며,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1] 그러므로 켈러가 죄를 우상숭배로 표현하고, 그 말이 현대인의 공통적인 고민인 정체성의 문제와 어떻게 직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탁월한 전략입니다.

 

두 번째, 그렇다면 우상숭배로서의 죄는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켈러는 여러 예를 들지만, 지면 한계 때문에 여기서는 두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로맨스로 대표되는 이성 간의 낭만적인 사랑입니다.

내가 목회 초기에 만났던 샐리는 미인으로 태어난 게 불운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그녀는 신체적 매력으로 힘을 휘두를 수 있음을 알았다. 처음에는 샐리 쪽에서 남을 조종했지만 결국은 남에게 조종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아무 남자하고든 사랑에 빠져 있지 않으면 자신이 무력한 투명 인간처럼 느껴졌다. 결코 홀로 있지 못했다. 그 결과 샐리는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들과도 관계를 유지했다. 그녀는 왜 그런 대우를 견딘 것일까?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깊은 애정과 수용을 남자에게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신 63, 92)

샐리라는 가명의 여인은 자신의 존재 가치와 삶의 의미를 남자들이 자신을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것에 두었습니다. 어떤 남자도 샐리를 사랑하지 않는 순간이 오면 샐리는 자신이 가치 없다고 느꼈고, 따라서 샐리에게는 남자가 끊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켈러가 이미 말한 대로, 그녀가 만나는 남자들이 비이성적이거나 폭력적인 대우를 할 때에도 샐리는 그런 관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관계에서 벗어나느니 차라리 폭력을 견디는 편이 샐리에게는 더 안정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이런 식으로 작동합니다. 다음 예시는 사람들의 인정이라는 우상입니다.

한때 우리 교회에 나왔던 메리는 뛰어난 음악가였다. … “메리는 사실상 부모의 인정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부모는 늘 딸이 세계 정상급의 음악가가 되기를 원했지요. 메리는 실력이 꽤 좋지만 자기 분야의 정상에 이르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자신이 부모를 실망시켰다는 생각에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겁니다.” 약의 도움으로 우울증을 다스리긴 했지만, 그녀의 문제는 우상에서 비롯된 거짓 신념이었다. 메리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없다면 나는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것이고 내 인생은 실패인 거야.’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움과 죄책감이 심했다. (내가 만든 신, 221)

메리라는 여학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삶의 의미와 안정감의 근거를 사람들의 인정에 두고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복음을 믿는 일은 어떻게 이런 우상 숭배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까요? 켈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선 메리의 경우입니다.

그러던 메리가 복음을 믿기 시작했다. 음악 실력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과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라는 말씀을 믿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부모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욕구의 우상에서 벗어났다. 우울증과 불안도 서서히 사라져 자기 인생과 음악의 세계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만든 신, 221-222)

인생의 중심, 안정감의 근거,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서 찾는 시도 자체가 사실은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런 까닭에 켈러는 메리가 이제껏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음악 실력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했었다고 말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오직 복음을 믿게 되었을 때에만 일어납니다. 샐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샐리는 어떻게 자유를 얻었을까? … 그녀는 남자나 직업이나 그 무엇도 자기 생명이나 정체성이 되어서는 안 됨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남자의 시선이나 직업의 성공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해주신 일과 그녀를 향한 그분의 사랑이었다. (내가 만든 신, 63, 92)

샐리의 경우 또한 메리와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의미, 자기 존재 가치의 근거가 사람이나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옮겨가게 되면서 샐리는 회복됩니다. 복음은 바로 이런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비록 상황이나 문제는 다르지만, 샐리나 메리의 경우 모두 근본적인 문제는 『탕부 하나님』(The Prodigal God)에서 살펴보았던 맏아들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 이야기에서 맏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에서 비롯한 정체감이 아닌, 자신의 선행과 그 선행에서 비롯한 자존감을 통해 삶의 의미, 정체성의 안정감, 행복 등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맏아들이 섬겼던 우상이나, 샐리와 메리가 섬겼던 우상은 본질상 같은 것입니다. 결국, 지난번 글의 주제처럼, 죄가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상상은 오직 복음이 불러일으키는 대안적인 사회적 상상을 통해서만 대체될 수 있습니다. 죄와 복음은 모두 우리에게 근본적인 삶의 의미, 정체성과 안정감의 근거, 지향할 삶의 방향성 같은 것들을 결정하라고 촉구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런 것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복음은 죄가 지배하는 사회적 상상을 표면으로 드러내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문제는, 복음이 폭로하는, 죄에 의해 지배당하는 우리의 사회적 상상을 우리가 얼마나 의식하게 되며, 또한 복음의 사회적 상상에 얼마나 깊이 젖어서 살아가게 되느냐일 것입니다. 켈러가 여러 곳에서 밝히는 대로, 이런 변화가 순식간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복음을 깊이 깨달아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하나님과 별개로 추구하는 삶의 의미, 정체성 등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때에만 일어납니다. 독자 여러분의 삶에도 복음을 깊이 깨달아 사회적 상상이 바뀌게 되는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다음 글에서는 자존감의 문제와 공적 신앙 사이의 관계를 켈러의 또 다른 저서 두 권, 『복음 안에서 발견한 참된 자유』(The Freedom of Self-Forgetfulness)와 『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The Meaning of Marriage)를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의 저서 『진정성의 윤리』(The Ethics of Authenticity)는 현대 문화의 이런 측면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여기서 필자는 테일러의 설명을 짧게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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