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안전이란 위험 요인을 모두 제거한 진공상태를 의미하는 것 같다. 위험해 보이는 물건은 모두 치우고, 사고가 날 만한 행동은 아예 못 하게 함으로써 안전이 확보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위험해 보이는 물건이나 행동이 아니더라도 일단 없애고 보는 것이다. (중략) 이뿐만이 아니다. 많은 학교가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놀다가 다치면 아예 운동장을 폐쇄해 버린다고 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외부인이 방과 후에 학교에 침입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교장 선생님이 방과 후 운동장 사용을 아예 금지시켰다고 한다. 운동장은 아무 죄가 없는데도 말이다.(본문 중)

제충만(아동권리옹호 활동가, 『놀이터를 지켜라』 저자)

 

구름사다리, 늑목, 회전 뱅뱅이, 정글짐…. 나의 추억 한구석을 차지한 놀이 기구들이다. 어린시절 놀이터에서 이것들과 함께한 기억이 한가득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것들이 우리 주변에서 자취를 감췄다. 위험해 보인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 뒤를 이어 그네도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간다. 그네를 능숙하게 타면 꽤 높이 올라간다. 특별한 안전장치도 없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그냥 타지 않는다. 줄을 꼬아 빙빙 돌고, 멀리뛰기도 한다. 공중에서 뒤돌기를 해 착지하는 아이도 봤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최근에 만들어지는 놀이터에는 그네가 없는 곳이 많다. 있어도 줄이 짧거나 뻑뻑하게 되어 있다. 바구니 그네는 아예 밑바닥을 쇠사슬로 묶어 놓았다. 그네가 사라지면 그 다음 차례는 무엇이 될까?

 

(사진제공: 제충만)

 

『놀이의 과학』(The Science of Play)을 쓴 미국의 예술사학자 수전 솔로몬(Susan G. Solomon)은 전 세계 놀이터를 찾아다닌 경험을 담아 ‘놀이터는 그 사회의 가치와 태도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놀이터에서 우리 사회가 지닌 안전에 관한 가치와 태도를 발견할 수 있는 이유이다.

대한민국에서 안전이란 위험 요인을 모두 제거한 진공상태를 의미하는 것 같다. 위험해 보이는 물건은 모두 치우고, 사고가 날 만한 행동은 아예 못 하게 함으로써 안전이 확보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위험해 보이는 물건이나 행동이 아니더라도 일단 없애고 보는 것이다.

2014년 대한민국은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아이들을 구해내지 못한 커다란 참사를 겪었다. 즉각적으로 나온 대책은 수학여행 폐지였다. 지난해에는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이 친구들과 함께 체험학습을 갔다가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그러자 개인 체험학습 금지령이 내려졌다.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 자체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일단 위험한 일이 발생할만한 가능성 자체를 없애는 대안이 나온 것이다.

최근에는 아이들의 바깥놀이가 사라지고 있다. 미세먼지가 전사회적 공포를 불러일으켜 아이들이 밖에서 노는 것 자체가 위험한 행동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세먼지가 많을 때는 당연히 야외활동을 자제해야 한다. 문제는 미세먼지와 무관하게 바깥놀이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이들은 실내 놀이 시간(422분)이 바깥(226분)에 비해 약 2배 길다. 주된 놀이 공간은 집과 키즈카페라고 한다. 공기가 조금만 탁해져도 부모들 눈에는 밖에서 노는 아이들이 큰 위험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많은 학교가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놀다가 다치면 아예 운동장을 폐쇄해 버린다고 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외부인이 방과 후에 학교에 침입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교장 선생님이 방과 후 운동장 사용을 아예 금지시켰다고 한다. 운동장은 아무 죄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대응 방식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교통국에 따르면 1969년에는 48%의 아이들이 걷거나 자전거로 통학을 했지만, 2009년에는 13%만 그렇게 했다고 한다. 아이들끼리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강력 범죄의 표적처럼 보여 위험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학교 앞이나 학원가는 아이를 태우러 나온 자동차로 항상 북적인다.

 

매일 밤마다 두 개의 차로와 인도까지 점령하는 ‘자녀 픽업 차량’의 질서 유지를 위해 지난해 4월부터 대치동 학원가에 모범운전자들이 투입되었다. (출처: 강남구청)

 

위험해 보이는 것을 치우고 위험한 일이 생길 법한 상황 자체를 아예 없애면 우리 아이들은 정말 안전해질 수 있을까?

놀이터만 놓고 보면 오히려 반대다. 미국의 스투디오루도(Studio Ludo)라는 연구 단체는 위험을 대체로 많이 수용한 런던의 놀이터와 미국의 뉴욕,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의 놀이터를 비교하는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런던의 위험한 놀이터가 미국의 놀이터보다 안전사고가 더 적었다. 또한 미국 텍사스에 있는 한 학교에서는 5년간 안전을 강조한 기존 놀이터와 위험하게 만들어진 모험 놀이터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를 모니터링 했는데 모험 놀이터가 더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위험해 보이는데 더 안전하다는 이 역설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아이들은 위험을 통해 안전을 학습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보건안전청은 놀이터 안전관리에 대한 성명서에서 ‘놀이 기회를 계획하고 제공할 때 목표는 위험의 제거가 아니다. 솜으로 둘러싸인 아이는 위험에 대해 배울 수 없다’고 지적한다. 명백히 위험한 요소를 제거하는 것은 반드시 할 일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적당한 모험을 통해 ‘안전한 위험’을 학습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위험을 제거하는 것은 쉽다. 도리어 아이들을 위해 ‘안전한 위험’을 학습할 환경을 제대로 구성하는 것이 더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놀이 기구를 없애는 식으로 놀이터 안전을 도모하고 있지만, 정작 위험해 보이는 놀이 기구로 인해 아이들이 직접적인 위험에 처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어린 시절 위험해 보이는 놀이 기구에서도 크게 다치지 않고 잘 놀았다. 오히려 차량이 질주하는 놀이터 앞 도로, 배회하는 노숙인, 술·담배 문제, 모텔촌 한가운데 놀이터가 들어서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런 문제는 해결하기도 쉽지 않고 관련자가 많아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놀이 기구를 없애는 것은 손쉽다. 아무리 차가 튼튼해도 도로 상황이나 교통 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진짜 안전보다 쉬운 선택에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닐까?

 

ⓒUnsplash.

 

요즘 할리우드에서는 청소년 모험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현실에서 모험을 하는 아이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현실 세계에서 펼쳐지는 모험이 판타지 영화보다 더 낯설다. 이런 식으로 우리 사회가 안전을 명목으로 모험의 기회를 빼앗고 위험 요소를 모두 제거한 멸균실에 아이들을 가둔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마태복음 25장에는 달란트 비유가 나온다. 이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다른 종들과 달리 위험을 무릅쓰고 장사하기를 두려워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달란트를 땅에 묻어버린다. 악하고 게으른 이 종은 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일까? 혹시 어릴 때부터 모험과 탐험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해볼 기회를 갖지 못한 까닭은 아닐까?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는 어린 자녀에게 칼이나 전동공구와 같은 위험한 도구를 쥐여 준다며, ‘나는 아무것도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아이보다는 손가락이 9개인 아이가 낫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그만큼 위험을 배우고 대처하는 능력을 스스로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명기 22장 8절을 묵상하며 우리 어른들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 “네가 새 집을 지을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 위험하니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표지판만 붙여 놓거나, 지붕을 아예 막아버리거나, 집을 아예 짓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안전한 모험을 즐길 수 있도록 지붕으로 올라갈 길을 열어 두자. 그러나 아이들이 떨어지지 않게 난간을 만들자. 이것이 우리 어른들에게 주어진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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