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5일, 기윤실 바른가치운동본부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어떻게 보고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긴급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당시 패널로 참여한 세 분(정종욱 변호사, 홍순철 박사, 백소영 교수)의 글을 3회에 나누어 연재합니다.

홍순철(성산생명윤리연구소 총무, 산부인과 의사)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판결이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통해, 여성 1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하여, 낙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조항의 개정을 원하는 여성이 75.4%임을 보고하였다. 헌법 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낙태죄 처벌조항에 대하여 ‘헌법 불합치’ 판결을 하였다. 현재의 낙태죄 처벌조항이, ‘사회 경제적 사유’로 낙태를 원하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므로, 태아의 생명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실현을 위한 입법을 다시 할 것을 판결하였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에서는 낙태죄 폐지가 낙태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이제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정리해야 할 때이다. 입법 과정에서 고려되어야 할 몇 가지 의견을 제안한다.

 

지난 4월 15일, 긴급토론회 “‘낙태죄 헌법불합치’, 어떻게 보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홍순철 교수가 본인의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첫째, 태아 기형은 낙태 사유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각 시기마다 사회적 트렌드가 있었다. 과거에는 남자아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들이 부모를 모시고 살며, 부모 제사를 지내준다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낙태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대가족이 해체되고 제사 문화가 감소하고 있는 최근에는 더 이상 여자아이라는 것이 낙태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태아 기형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에는 입술갈림증, 손가락 기형, 신장 기형, 심장 기형, 다운증후군 등 다양한 선천성 이상이 낙태 사유였다. 하지만 의학기술의 발달로 대부분의 태아 기형이 치료 가능하게 되었고, 다양한 사회복지 제도로 장애인도 함께 사는 사회가 구현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선천성 이상을 갖고 태어난 아이가 치료와 재활, 사회복지를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인가의 여부가 선진국의 척도가 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무뇌아를 낙태 허용 사유로 포함시키자는 의견이 있다. 비록 무뇌아 대부분이 출생 후 1달 이내에 사망하지만, 아이와 산모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고려할 때, 분만 후 정상적인 사회관계를 통한 성숙한 이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무뇌아도 낙태 허용 사유로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태아 기형을 낙태 허용 사유로 포함시키게 되면, 임산부와 의사는 더욱 태아 기형을 선별하고자 하는 노력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이는 임산부와 태아 건강과는 별개로 더 큰 사회적 비용으로 연결될 것이다.

 

둘째, 낙태의 허용기간은 임신 10주 이내로 제한되어야 한다. 헌법 재판소는, 낙태죄 처벌조항을 ‘위헌’으로 판결하지 않았다. 위헌으로 판결하게 되면 임신 기간 중의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어 사회적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면서 낙태를 허용해서는 안 되는 주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임신 22주 내외부터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다.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인 생존을 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할 때 훨씬 인간에 근접한 상태에 도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낙태 허용을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은, 마치 임신 22주 이내에선 자유롭게 낙태해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임신 22주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낙태죄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기간을 정하라는 요구이다.

그렇다면, 의학적으로 인간에 가까운 시기는 언제이고, 낙태 수술 후 여성의 건강에 부담을 덜 주는 시기는 언제인가? 의학적으로 임신 4주 3일 이전을 착상전기로 분류하고, 임신 4주 3일부터 임신 10주까지를 기관형성기로 분류하며, 임신 10주 이후를 태아기로 분류한다. 즉 임신 10주(마지막 생리일 기준 10주)부터는 태아의 장기와 팔, 다리가 모두 형성되어 사람의 모습을 완성한다.

여성의 건강 측면에서는 어떠한가? 낙태 수술은 여성의 건강에 많은 부담을 준다. 수술 후 골반염, 자궁내막염이 증가할 수 있고, 이는 난임, 자궁외임신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다음 임신에서 전치태반, 유착태반 등 고위험 임신 증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임신 주수가 진행될수록 여성의 건강에는 해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성의 건강 문제가 덜 부담이 되는 임신 주수는 언제인가? 임신 8-10주 이전이 낙태 수술이 그나마, 여성 건강에 부담이 덜 되는 시기이다.

 

 

셋째, 낙태 시술 기관을 지정하여야 한다. 분만을 담당하는 많은 산부인과 의사는 오늘도 임신 18주, 20주, 28주 임산부의 태아를 생존 가능 주수까지 임신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낙태 수술을 원치 않는 의사나 기관에게 낙태 의료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산부인과 의사를 포기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캐나다 등 낙태를 허용하는 외국의 경우처럼 낙태 기관을 지정하여 운영하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의사의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주지 않을 것이다.

 

넷째, 낙태 수술은 급여화하여 여성의 건강권을 국가가 보호하고, 의사에게는 임신 산전 진찰비, 분만 관련 수가 증가로 임신 유지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는 낙태 수술의 증가를 막아야 하고, 낙태가 필요한 여성의 건강권을 보호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낙태 수술의 건강 보험 급여화를 통해 여성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의사에게는 임신 유지 관련 인센티브 제도를 강화하여 임신 출산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10여년전부터 저출산 문제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이슈이다. 2018년 4분기에는 드디어 사망인구가 출생인구를 앞지르는 시대가 되었고, 2018년 합계 출산율 0.98로 드디어 여성 한명이 1명의 아이도 안 낳는 사회가 되었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줄 것인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출산 육아에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인가 아니면, 자유롭게 낙태하는 사회인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도 존중되어야 하고, 불필요한 낙태를 줄이고 저출산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성숙해 가고 있다.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의 설문조사의 ‘여성 중 낙태죄 처벌조항 개정을 원하는 여성이 75.4%’라는 결과는 모든 낙태의 허용이나 처벌조항 폐지의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존중받는 합리적인 사회로 넘어가느냐 마느냐 하는 시험대에 선 것이다. 이것이 낙태의 증가로 이어진다면 우리 사회의 실험은 실패라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낙태죄 처벌조항에 대한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난 만큼, 앞으로의 사회적 주제는 ‘낙태’가 아니라 ‘생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사라져가는 생명을 보호하고, 태아의 생명권을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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