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사회가 아이를 환영하는 공동체이길 소망한다. 아이가 결혼관계 안에서 태어났느냐, 결혼 제도 밖에서 태어났느냐를 따지지 말고 아이를 낳은 사람이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였음 좋겠다. 미혼모와 미혼부, 특히 청소년 부모들에게 정부가 지금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재정적 지원을 해주길 바란다. 또한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는데 격려하고 지지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본문 중)

김경아(『너라는 우주를 만나』 저자)

 

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두 딸을 낳고 막내를 입양했다. 더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아이가 더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셋째 아이는 입양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왔다. 또 아이를 갖자고 한 말은 단칼에 거절 했는데, 입양을 하자는 제안에는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하나님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얼마나 관심이 많으신지, 얼마나 그들 편이 되어주셨는지 잘 알고 있었고, 아이는 보호시설이 아닌 가족 품에서 지내야 한다는게 평소의 내 생각이었다. 그러니 입양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꼭 필요한 일로 여겼다. 하지만 그 일을 내가 해야 하는지는 고민이 되었다. 나는 하지 않아도 되는, 혹은 내가 하지 않아야 할 이유들은 차고 넘쳤다. 고민이 되었으니 기도했다.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달라고. 결론이 어떻게 났을까? 2004년,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난 ‘서 현’은 우리 집 막내 ‘김 희은’이 되었다.

 

김경아 작가의 가족사진. 좌측부터 아빠 김종호, 막내 희은, 엄마 김경아, 둘째 희수, 첫째 희연. (제공: 김경아)

 

우리 가족은 희은이와 입양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입양을 소재로 한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입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이가 친생모(낳아준 엄마)에 대해 궁금해 할 때면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쉽고 정직하게 이야기해 주는 식이다. 희은이는 아직 친생모를 만나본 적이 없으나, 그리고 당장은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으나, 언젠가 만날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입양이 그저 일상이 되어버린 공개입양 가족들과는 달리 주변 사람들은 입양과 입양아들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을 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니 결국 제 부모를 찾아갈 거다, 버려진 아이다, 근본이 없는 아이다, 남의 아이를 어떻게 키우나, 등등 대부분 입양가족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입양을 ‘가족이 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인식하게 되기를 바랐다.

내가 회원으로 있던 <한국입양홍보회>에서는 입양부모들을 강사로 양성해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입양교육을 해오고 있다. 이 단체는 공개입양이라는 개념조차 몰랐던 한국사회에 공개입양을 정착시킨 단체이다. 나는 5년간 이 단체 소속의 입양교육 강사로 일했다. 또한 서울지역의 자조모임 대표로 10년 동안 활동했다. 이런 경험으로 얻은 정보와 통찰을 모아 『너라는 우주를 만나』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나의 활동은 전적으로 희은이가 살아가기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엄마로서의 책임감에 근거했다. 그런데 아이 하나 입양했을 뿐이었는데 나의 세상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장되었고 그만큼 복잡해지기도 했다.

 

김경아 작가의 저작 『너라는 우주를 만나』 표지. ⓒIVP.

 

우리나라 안에서 입양되는(국내입양) 아이들의 대부분은 미혼부모의 아이라고 한다. 희은이 역시 십대 미혼모의 아이로 영아일시보호소에서 돌봄을 받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내가 낳은 두 아이와 마찬가지로 희은이를 애지중지 키웠다. 두 아이처럼 희은이는 자기만의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었다. 모든 아이가 그러하듯 개성 있는 존재였다. 또한 모든 인간이 그런 것처럼 죄된 본성과 내면의 상처로 씨름하며 살고 있다.

우리가 공개입양으로 아이를 키우는 동안 희은이의 친생모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공기처럼 우리 가족의 삶에 존재했다. 희은이의 존재와 친생모의 부재는 동전의 앞뒷면 같았다. 전쟁 같은 초기 육아가 끝나자 나는 자기가 낳은 아기를 입양 보내기까지 아기를 낳은 10대의 어린 엄마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살필 여유가 생겼다. 게다가 희은이가 7살 때 했던 말이 결정적이었다. “엄마, 나는 입양돼서 행복한데요, 나를 떠나보낼 때 낳아준 엄마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희은이는 자기가 낳은 아이를 떠나보내는 여성의 아픔을 상기시켜 주었다.

나는 우리 사회가 아이를 환영하는 공동체이길 소망한다. 아이가 결혼관계 안에서 태어났느냐, 결혼 제도 밖에서 태어났느냐를 따지지 말고 아이를 낳은 사람이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였음 좋겠다. 미혼모와 미혼부, 특히 청소년 부모들에게 정부가 지금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재정적 지원을 해주길 바란다. 또한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는데 격려하고 지지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나는 친생부모가 경제적 여건이나 사회적 편견 때문에 아이를 포기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3년 전부터 성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자기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려면 책임 있는 성관계를 해야 할 것이고 준비된 부모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과 청년들을 만날 때마다 간절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희은이를 비롯한 모든 입양아가 자기를 낳아 준 부모와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희은이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보육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에게도 그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키울 의지가 없고 형편이 어려운 부모를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혹은 미혼모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 줄 날만 기다리면서 아이가 보호시설에서 지내는 것, 나는 그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시설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반대하는 게 아니다. 그곳에도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어른들이 있다. 그러나 시설보다는 가정이 아이에게 나은 환경이라는 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있다. 미혼부모를 비롯한 원가정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입양을 까다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관점은 해외입양을 중단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장기적인 관점 없이 아이들을 해외입양 보내기 시작했다.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에 대해 정부는 사실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셈이다. 그 오래된 역사 속에서 고통 받은 입양인들이 실재한다.

 

유튜버 ‘희철리즘’이 한국계 미국인 입양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입양 중 겪었던 고충에 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출처: 희철리즘Heechulism Youtube 캡쳐)

 

그러나 해외입양을 중단하고 국내입양을 어렵게 만든다고 원가정이 지켜지는 것일까? 미혼모 문제가 전적으로 해결되지 않았으니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을 입양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나는 미혼모 문제와 입양을 같은 범주에 놓고 선후 관계를 따지며 갑론을박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혼모의 문제는 그것대로 풀어야 할 과제이고, 지금 당장 가족의 울타리가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가족이 되어 줄 누군가의 손길이 절실하다. 미혼모를 위한 제도적 지원 구조를 만들어가면서 시설 아동들을 위해 국내입양을 활성화하는 정책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꾸준히 입양을 알리고 권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입양에 관한 웬만한 정보는 알 수 있다. 입양을 결정하기 전에 입양부모들이 활동하는 단체의 카페나 밴드 등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들을 얻고, 오프라인 모임에 찾아오기도 한다. 앞서 내가 언급한 지역모임에도 찾아갈 수 있고, 입양기관마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입양부모 모임도 있다.

부부가 입양하기로 합의를 했다면 가장 먼저 입양기관을 방문해서 상담을 받아야 한다. 이 상담을 받으면서 자신들이 왜 입양을 하려고 하는지 동기 점검을 할 수 있다. 입양을 하려면 어느 정도 자격이 되어야 하는데, 25세 이상으로 입양할 아동과의 나이 차이가 60세 이내여야 한다. 또 아이를 키울 만큼의 재산도 있어야 하고, 아이를 키우기에 적합한 생활환경도 갖추어야 한다. 이런 자격 요건을 입증할 만한 서류들을 기관에서 요청할 텐데 잘 준비해서 제출해야 한다. 예비 입양부모 교육과 가정조사도 받아야 한다. 상담결과와 서류를 잘 검토한 기관은 부부와 입양아동을 연결해 준다. 마지막 절차로 가정법원에서 허가를 받는 과정을 거쳐 확정 판결이 나면 입양 과정이 끝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아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한다. 모름지기 부모는 아이가 건강한 성인이 될 때까지 잘 양육할 사명을 받은 청지기들이다. 입양부모는 남의 자식을 키우는 게 아니다. 입양은 아이를 법적으로 내 자식이 되게 하는 과정이다. 넓게 보자면, 내가 낳은 아이나 입양한 아이나 결국은 내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하나님이 새겨놓으신 자기만의 개성을 지니고 세상에 온다. 부모란 그저 하나님의 아이들을 위탁 받은 “무익한 종”(눅 17:10)일 뿐이다. 가족은 아이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 그 안에서 아이가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면 된다. 입양은 그런 가족이 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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