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으면서도 이웃사촌으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두 나라는 식민지 지배·피지배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데다 무엇보다 그 아픈 과거를 말끔하게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가깝지만 먼 나라’라는 형용모순적인 관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간 한국은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끊임없이 요구했고 일본은 국교 정상화 당시 체결한 한·일 기본조약과 4개 협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는 입장만 고수했다.(본문 중)

조용래(광주대 초빙교수, 전 국민일보 편집인·대기자)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으면서도 이웃사촌으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 두 나라는 식민지 지배·피지배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데다 무엇보다 그 아픈 과거를 말끔하게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가깝지만 먼 나라’라는 형용모순적인 관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간 한국은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끊임없이 요구했고 일본은 국교 정상화 당시 체결한 한·일 기본조약과 4개 협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는 입장만 고수했다.

 

과거사 청산 미흡했던 1965년 한·일 협정

1965년의 한·일 기본조약과 4개의 부속 협정은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 조약은 1910년 한·일 합병의 불법성과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이 한국의 자본 부족 해소와 대일 경제협력 등 눈앞의 성과를 우선한 결과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셈인데, 조약 체결 이후 양국 간 교류와 협력은 꾸준히 확대돼 왔음 또한 사실이다.

조약은 한·일 간 체결된 것이기에 일방적으로 수정할 수 없다. 더구나 한국 정부는 지난 50여 년 동안 조약의 수정을 제기한 바 없다. 한국이 과거사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일본은 한·일 기본조약을 앞세울 뿐이었다. 여기에 뜻밖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한국의 사법부였다.

 

1965년 12월 17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일조약 비준서에 서명하는 것을 정일권 국무총리, 이동원 외무 장관, 김동조 한일회담 수석 대표가 지켜보고 있다.

 

2011년 8월 헌법재판소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서 뒷짐만 지고 있던 정부를 문제 삼았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것(不作爲·부작위)을 들어 이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뒤늦게 등 떠밀리게 된 정부는 부랴부랴 일본 정부에 협의를 요청했고 그 결과는 졸속으로 나타났다. 바로 2015년 12월 위안부 한·일 합의였다.

징용자 건에서는 대법원이 나섰다. 2018년 10월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일본 전범기업이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본은 예상대로 크게 반발한 반면 한국 정부는 사법부 뒤에 숨어버린 듯했다.

 

역사문제에 대한 사법부 판결은 또 다른 불씨

한국 정부는 소극적이었다. 작년 10월 대법원 징용피해자 배상판결 후 1주일 만에 나온 이낙연 국무총리의 성명이 사실상 대응의 전부다. 성명은 “사법의 판단에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며 “일본 정부 지도자들의 현명한 대처를 요망한다”고 했다.

오래 끌어온 한·일 간 역사문제 공방에 대해 한국 사법부가 속 시원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다만 민주국가에서 요청되는 사법부 존중 태도는 일본에서도 똑같다. 한국의 징용 피해자들은 1990년대 이후 총 12건의 소송을 일본 법정에 제기했지만 단 한 건의 중재합의를 빼면 모두 원고 패소로 끝났다. 물론 일본 사법부의 판결은 용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일본 정부도 사법부 존중 프레임으로 나온다면 어찌하나. 일본의 사법부는 틀렸고 한국의 사법부만 옳다고 할 텐가. 결국 역사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개입은 또 다른 한·일 양국 간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간 소통 흔들리면서 대립 사태 키워

올 5월 일본 정부는 제3국 인사가 참여하는 중재위원회를 열자고 한국에 통보했다. 1월 한국 정부에 관련 협의를 요청했지만 4개월이 넘도록 응답이 없어서 그 방법밖에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 사이 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지난해 11월 한국 정부의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결정과 일본의 비난, 12월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의 저공 위협비행으로 촉발된 양국의 갈등 등.

대법원 판결에 따른 배상 차원에서 일본 전범기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 강행시기가 7월 중으로 다가오면서 일본의 반발 수위는 더욱 고조됐다. 특히 6월 27-28일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일본은 한국에 관련 해법을 강하게 요구했다. 침묵하던 한국 정부는 배상 판결을 받은 일본 기업과 과거 청구권 자금으로 설립된 한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기금을 마련해 문제를 풀자고 대응했다. 여기에 일본 정부는 난색을 표했고, G20 개최국이면서도 한국과의 정상회담마저 기피했다. 한·일 정부 간 대화는 정말로 단절 상황이다.

급기야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는 7월 4일 대한(對韓) 수출규제 조치를 선포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될 일본의 첨단 화학소재 3품목에 대해 포괄수출허가방식에서 개별허가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다. 포괄허가방식은 한 번 신고로 3년 동안 신고 없이 자유롭게 수출이 가능하도록 하는 일종의 우대조치인데 일본은 2004년부터 한국에 적용해왔다.

 

반도체 핵심 품목 수출 규제 조치를 하루 앞두고 열린 일본 여야의 당수 토론회에서 아베 총리는 이번 조치가 양국 역사 문제 등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고 부정했다. (출처: KBS1 Youtube 캡쳐)

 

수출규제 도발, 대응은 단호하되 신중하게

아베 정부는 대한 수출규제가 단지 우대조치를 없애는 것이므로 세계무역기구(WTO) 차별규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WTO에서 다툼의 여지는 크다. 아베 총리는 한국이 북한 경제제재에 소홀할 가능성이 크다는 엉뚱한 이유를 거론하는 등 우대조치 폐지 이유가 정치적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지난해부터 격화되기 시작한 한·일 간 갈등요인에서 비롯된 경제보복이며,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우파 표를 의식한 의도된 도발이다.

아베 총리의 선택은 그야말로 퇴행적이다. 과거 한국의 보수정권이 코너에 몰렸을 때 반일감정을 부추겨 이를 회피하려는 악습을 재현하는 모양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 정부로서는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이나 신중해야 한다. 일부에서 거론되는 일본 상품 불매운동 등은 효과도 낮고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한 수출규제에 대해 일본의 시민사회를 비롯해, 보수 매체를 포함한 대부분의 일본 미디어는 비판적인 입장이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의 정부와 시민사회는 자유무역주의를 훼손하려는 도발을 단호하게 고발하는 데 초점을 두고 그 이상의 불필요한 적대적 반응은 자제해야 한다. 당장의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양국의 미래까지 내다보는 차분함이 요청된다.

 

적대관계의 또 다른 원인은 상호 이해 부족

WTO 제소, 첨단 핵심소재 자립 노력 등도 필요하다. 그 이상으로 이번 기회를 통해 일본에 대한 한국 사회의 감정적이고 막연한 인식부터 점검해야 한다. 우리의 일본과 일본인, 일본 사회와 한·일 관계에 대한 이해는 상투적이며 감정적이다. 일본 역시 한국 이해가 대단히 부족하고 특히 식민지로 지배당했던 한국의 아픔에 둔감하다.

흔히 한국에서는 일본에 대해 과거사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이 없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담은 ‘고노 담화’(1993),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1995), 일본의 조선 병합이 강제적으로 이뤄졌다고 고백한 ‘간 담화’(2010) 등엔 나름 반성과 사죄가 담겼다. 한국의 잣대로는 한참이나 미흡하지만 일본 정부의 결정이기에 의의가 있다.

물론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우익 정치가들이 일본 정부담화를 부정하는 발언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국회에서 추궁을 당하면, 심지어 아베 총리까지도 담화를 계승한다고 답한다. 내각 결의를 통해 나온 일본 정부담화들은 앞으로도 부정될 수 없다. 반성과 사과를 막연히 말하기 전에 그간 일본 정부가 내놓은 담화 내용에 입각해 따지고 요구해야 한다.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대해서도 주의가 필요하다. 일본국헌법 9조는 ‘전쟁 포기와 전력 불보유’를 선언하고 있어 평화헌법으로 불린다. 47년 시행 이래 지금까지 건재하다. 아베 총리가 9조 개정을 노리고 있지만 일본 시민사회의 반발 또한 여전하다. 양국의 협력적 미래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도모한다면 일본 시민사회의 노력을 평가하고 그들과의 연대도 필요하다.

 

한·일 관계 회복 불가능하지 않다

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선포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하 공동선언)’을 보자. 공동선언은 전후 일본의 평화 노력, 한국의 민주화․산업화 성과 등을 평가하는 한편 양국의 협력적 미래와 역내의 평화를 21세기 비전으로 내세웠다. 안타깝게도 공동선언은 오래 계승되지 못했으나 협력의 기억마저 지워진 것은 아니다. 서로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팽배한 지금 공동선언 정신은 더욱 절실해졌다.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조인식을 진행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내각총리(출처: 대통령기록관)

 

정부는 정부대로 대일 관계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65년 조약에 대해서도 치밀하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 폐기하고 새로 짤 것인지. 과연 그게 가능하겠는지. 부분적으로 수정할 것인지. 수정보다 운용 차원에서 보완할 것인지. 애매한 태도로는 곤란하다. 식민지 지배, 사과, 반성 등의 용어로 일관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대일 외교로는 문제해결은커녕 불신만 확산시킬 뿐이다.

한국의 시민사회, 특히 기독시민사회도 일본 문제와 관련해서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감정에 맡기기보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이해를 전제로 대응해야 한다. 서로가 전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배려의 감정이 생기고 갈등의 치유도 가능하다.

 

(이 원고는 2019. 7. 8에 기고된 원고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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