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복음이 사회와 종교의 질서를 유지하는 도덕을 앞세우는 자들 앞에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지탄받았던 자들에 대한 우선적인 ‘곁에 있음’이자 ‘편듦’이었음을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혐오를 수단으로 삼는 종교 도덕은 예수에 의해 이미 오래전에 철저하게 해체되었다. 예수 사역의 핵심은, 유대 공동체가 오랫동안 율법을 방패 삼아 역겹거나 부정하다고 취급하며 공동체로부터 축출하거나 차별하였던 이들과 동행하는 일이었다.(본문 중)

이 글은 지난 6월 15일에 있었던 “한국사회의 사회적 차별과 혐오에 대한 시민의식 조사 결과 발표회”를 마치고 쓴 후기입니다. 필자인 김혜령 교수는 연구 책임자로서 4명의 연구진(성신형, 이은아, 이봉석, 송진순)과 함께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2017년부터 이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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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령(이화여자대학교 호크마교양대학 교수)

 

한국사회에 혐오가 심각한 문제이며 그중에서도 교회가 혐오 현상의 중심에 있다고 다들 걱정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우리 연구단도 이 연구를 시작하였다. 혐오와 도덕, 혐오와 종교의 관계를 1,000명의 시민 설문조사를 통해 파악하고자 했던 본 연구를 진행하면서, 개신교 신학자들이 대부분인 우리의 마음은 늘 편치 않았다. 그러나 썩은 살은 도려내야 새살이 돋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교회 내부의 혐오 현상을 직시하고 분석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올해 초 2년간 진행된 연구의 결과가 나왔다.

이 연구 성과를 가장 쓸모 있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한국 개신교의 윤리 회복을 위한 운동을 오래 치열하게 펼쳐온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정병오·배종석·정현구 공동대표) 산하의 기독교윤리연구소(소장 고재길 교수)와 함께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발표회를 개최하였다. 발표회 당일에는 60여 명의 청중이 발표장을 찾았고, 한국 개신교 교회의 혐오 지형에 대해 깊은 우려의 마음으로 진지하게 발표를 듣고 질문도 제기해 주었다. 젊은 연구진으로 구성된 우리 연구단이 교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기관인 기윤실을 통해 연구 성과를 확산·공유할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지난 6월 15일(토)에 개최한 “한국 개신교의 혐오를 분석하다” 세미나 전체토론 및 질의응답 시간. 좌측부터 이은아 교수, 송진순 교수, 성신형 교수, 최현종 교수, 김혜령 교수, 이숙진 교수, 이봉석 교수.

 

우리가 연구 주제로 삼은 ‘혐오’는 특정 대상에 대한 개인적인 미움의 감정과는 구별된다. 혐오란 사회 속에서 특정 집단이나 집단에 속한 개인에 대해 (이미 존재하는) 차별을 고착화시키거나 재생산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미움의 감정이다. 즉 한 사회의 역사, 문화, 정치, 종교 등의 복합적 요소에 근거하여 ‘차별받는 대상’이 되었던 ‘소수자 개인’이나 ‘소수자 집단’을 향한 미움이 혐오이다. 이러한 정의에서 볼 때, 한 사회의 ‘기득권층’이나 ‘다수’에 대한 미움은 그들에 의해 상처받는 취약자들이 품는 ‘분개’하는 미움이거나 혹은 그들이 받는 부당함에 공감하며 함께 분개하는 ‘정의감’에서 나온 감정이기에 개념상 혐오라고 부를 수 없다.

우리는 최근 몇 년간 한국사회를 갈등 국면으로 치닫게 하였던 네 종류의 혐오 현상, 즉 여성, 노인, 난민, 성소수자 혐오에 관련된 시민들의 혐오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총 5개 분야와 42개의 하위 문항을 1년간의 연구 과정을 통해 설계하였고, 전문 여론 설문 조사기관인 ㈜한국리서치를 통해 올해 초 한국사회의 인구 구성 비율에 맞춰 모집된 1,000명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개신교인들의 결과 분석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개신교 응답자를 약간 더 오버샘플링(oversampling)하여 조사하였으나, 이는 성별, 연령, 지역 등의 다른 요소들을 그대로 유지하였기 때문에 통계학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음을 이 지면을 통해 다시금 강조한다. 또한 본 연구단은 단순히 수집된 결과를 양적으로 도표화하는 기초적 방식에서 더 나아가, 사회통계학 일반에서 사용되는 검증 과정을 사후에 모두 거친 자료를 행사 당일에 공개하여 연구 결과의 신뢰도를 높이고자 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된 목적은 단순히 한국의 시민들이나 개신교인들에게 나타나는 혐오의 종류와 정도를 통계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아니었다. 5명의 연구진 중 3명이 개신교 윤리학자였으므로 그 전문성을 살려서, 혐오의 감정이 어떻게 아이러니하게도 시민사회와 교회에서 오히려 도덕적 우월성과 결합되어 혐오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들을 사회와 교회의 질서와 세계관을 위협하는 위험적 인자로 인식하게 만드는지, 나아가 이들의 존재와 기본권을 축소하거나 차별하는 데에 ‘정당하게’ 사용되는 합당한 증오 감정으로 둔갑하는지 그 계보를 밝히고자 노력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우리는 시민사회 안에서 개신교 교인들의 혐오가 지닌 비차별성과 특이성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우선 노인혐오와 관련해서는 개신교인들과 비개신교인들의 차이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난민혐오 부분 역시 두 집단 간에 두드러진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으나, 모두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이슬람 난민과 관련하여서는 비개신교인들에 비해 개신교인들의 혐오가 상당한 수준의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혐오와 관련해서도 개신교인들과 비개신교인들의 차이가 두드러진다고 할 수는 없었으나, 이러한 통계 결과가 보여주는 것이 실제로 개신교인들의 삶 속에서 여성차별과 혐오가 두드러지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성차별에 대한 민감성과 인지능력 자체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조사한 혐오 현상 중 가장 두드러진 수치를 보여주는 것은 성소수자 혐오 영역이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거부 입장을 비윤리적인 혐오로 정의하느냐, 아니면 개신교 복음에 입각한 정당한 비판으로 볼 것이냐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감히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존재를 인정하고 연구를 진행한 이유는, 그것이 혹여나 개신교 교회가 복음의 입장에서 취한 ‘자연스러운’ 거부나 ‘합당한’ 미움이라고 하더라도, 다양성 존중에 기초한 시민사회에서 결국 타자의 존재와 기본권을 제한하는 전통적인 차별의 구도를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함으로써 앞서 언급한 ‘혐오’ 일반의 개념 정의에 정확히 귀속되기 때문이다.

 

노인혐오의 요소 중 하나인 태극기 부대의 집회 장면.(출처: Youtube 캡쳐)

 

본 연구에서는 성소수자 혐오가 전통적인 관점에서 도덕성이 높을수록 일반적으로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특정 종교와 상관없이 비종교인들보다 종교인들이 전반적으로 더 높은 비율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지니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종교들 중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비율은 개신교인들에게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이는 종교인들 중 가장 낮게 나타난 가톨릭 교인들과는 매우 상반된 결과이다. 연구 분석에서 유의 깊게 봐야 할 것은 개신교인들 중 교회에 열심히 나가거나, 교회의 도덕이 사회적 영향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성소수자 혐오가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또한 복음을 예배나 성직자에게서 배웠다고 하는 개신교인일수록, 담임 목회자의 설교가 복음에 잘 부합한다고 응답한 사람일수록 성소수자 혐오 정도도 함께 상승한다는 점이다. 또한 개신교인 응답자 중 63%가 동성애는 성경에서 금지한 죄라는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종합하자면, 성소수자 혐오는 한국교회의 근본주의적 성향과 정치적 보수주의, 교권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통계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보수 개신교계에서 이끌고 있는 퀴어 반대 집회 (출처: 뉴스앤조이)

 

우리의 연구단의 조사 의도와 목적, 결과에 여전히 불편하거나 의심을 품은 개신교인들이 있을 수 있다. 기존의 인간관, 세계관, 복음관에 따르면 혐오 대상으로 지목된 이들이 여전히 미움 받거나 차별받아 마땅한 자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움이 오히려 그들을 복음으로 선도하는 일이며, 그래서 사랑이라고 주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혐오가 바로 그런 것이다. 혐오는 혐오하는 자가 잘 알 수 없다. 혐오는 늘 정당해 보이는 위치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복음이 사회와 종교의 질서를 유지하는 도덕을 앞세우는 자들 앞에서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지탄받았던 자들에 대한 우선적인 ‘곁에 있음’이자 ‘편듦’이었음을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혐오를 수단으로 삼는 종교 도덕은 예수에 의해 이미 오래전에 철저하게 해체되었다. 예수 사역의 핵심은, 유대 공동체가 오랫동안 율법을 방패 삼아 역겹거나 부정하다고 취급하며 공동체로부터 축출하거나 차별하였던 이들과 동행하는 일이었다. 그는 유대 사회에서 거룩한 유대인라면 접촉을 금했던 한센병자, 창녀(이하 성매매 여성), 그리고 사마리아인들과 거침없이 함께 먹고 마시며 복음을 전하였다. 유대 공동체는 한센병의 원인을 하나님 앞에서 그 부모나 그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한센병자에 대한 혐오를 그들의 죄에 대한 정당한 분노라 확신해 왔다. 한센병자에 대한 예수의 치유 사역은 무지와 미신에 사로잡혀 죄 아닌 것을 죄로 둔갑시켜 차별하였던 이들의 혐오의 도덕을 해체시켰다. 예수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과 침묵으로써(요 8:6-8), 남편이 아닌 자와 살다가 끌려온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던 유대인들의 손에서 결국 돌을 내려놓게 만들었고, 보살펴 주는 이 하나 없는 가난한 여인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르게 된 성매매의 죄를 혐오로 대하지 않고, 그를 오히려 제자가 되는 새 삶으로 부르심으로써 용서와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종교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제국으로 끌려갈 때 이스라엘 땅에 버려졌던 사람들의 혼종적 후손인 사마리아인에게, 예수는 이스라엘 하나님을 잘못 믿고 있다고 꾸짖거나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기보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새로운 때가 왔다고 선언하며 사마리아인을 있는 그대로 새 시대로 초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게 예수는 소수자를 배척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던 혐오의 종교 도덕을 완전히 해체하며, 하나님 나라의 새 도덕은 차별받는 자들에 대한 개방과 환대의 도덕, 즉 사랑의 도덕에만 기초함을 선포하였다.

 

예수는 항상 병든 이들과 약자의 곁에 있었고 그들의 편이 되는 삶을 살았다.(출처: 영화 ‘Son of God’ 스틸컷)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결국 개신교의 윤리성은 오늘날 가장 차별받고 결국 미움까지 받게 된 약자들과 함께 있어 주고 그들을 편들어 주는 데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서 또 중요한 점은, 사회적 약자들이 결국 한 사회의 시대적인 상황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예수 시대의 약자는 과부였고, 한센병자였고, 사마리아인이었다. 교회는, 그리고 개신교인은 전통적인 약자들뿐만 아니라, 역사의 흐름과 함께 사회의 새로운 지배구조 안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부류의 약자들을 찾아내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이 연구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한국교회가 빠지기 쉬운 나태함과 무지를 일깨우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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