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는 미디어와 자본주의가 어떻게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또한 탐욕과 이기심이 사회와 문화에 얼마나 깊이 파고들어 일상화되었는지를 자신의 음악과 공연에 복제된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려 했다. 그런 현대 사회를 U2는 “Zooropa”라는 가상 사회로 명명하고, 문명화된 바벨론 “Zooropa”의 세계관을 담아냈다. U2가 그려낸 그 도시는 “희망 대신 상업주의가, 평화 대신 맹신이, 생명 대신 무감각이, 진리 대신 불확실성이, 공동체 대신 익명성이” 지배하는 신 없는 디스토피아이다.(본문 중)
윤영훈(성결대학교 신학부 교수, 『윤영훈의 명곡 묵상』 저자)
<The Joshua Tree> 앨범의 대성공 이후 U2는 매우 심각한 균열과 전환의 기로에 서게 된다. 멤버들 간의 음악적 방향에 대한 의견 충돌과 모든 것을 이룬 뒤의 목표 상실로 이전의 몰락한 슈퍼 밴드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그때 마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암울했던 이념적 대립이 해체되는 해빙 무드가 찾아왔고, 이것이 이들이 다시 한번 서로를 존중하며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91년 발표된 앨범 <Achtung Baby>는 일부러 화해의 상징이 된 도시 베를린에서 작업을 했는데, 그들에게 새로운 돌파구이자 변화의 시발점이 되어 주었다.
이 앨범이 발표되자 팬들과 평론가들은 그들의 예상치 못한 과감한 변화에 경악했다. 스트레이트한 창법이 돋보였던 보노의 보컬은 감정 없이 낮고 건조하게 그리고 때론 뒤틀리고 찌그러진 읊조림을 반복했고, 과도한 이펙트를 통한 변화무쌍한 사운드와 펑키한 그루브를 주도하는 에지의 기타는 분명 전작의 심플한 매력과는 달랐다. 그들은 당시 급부상한 테크노 유로댄스 리듬과 인더스트리얼 음악 트렌드를 수용한 전혀 다른 밴드로 돌아왔던 것이다. 가사 역시 이전의 진솔한 영적 순례와 사랑 주제를 담기보다는 암울하고 냉소적인 어법을 사용하여 그들의 경건한(?) 팬들을 당황하게 했고, 앨범의 이미지도 여러 모습으로 분장한 보노의 얼굴들과 요상한 소품들의 모자이크로 디자인되어 차갑고 뒤틀린 자아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러한 그들의 파격은 그 다음 해에 진행된 “Zoo TV 투어”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이 월드 투어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무대 세트와 다양한 카메라 효과들을 극대화한 영상 테크놀로지의 극치였다. 수없이 쏟아내는 모호한 이미지 컷들이 스크린을 통해 현란하고 어지럽게 난무하더니, 보노는 공연 중반 “맥피스토”라 명명한 악마의 캐릭터로 변신해 연기하듯 노래하는 충격적인 비주얼을 보여줬던 것이다. 이제 U2는 이전의 진지한 양심을 뒤로한 채 화려한 슈퍼 엔터테이너의 길을 걸어가는 것인가?
하지만 첫 인상의 충격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다시 이 앨범을 돌아본다면 우리는 이내 이전부터 일관된 U2의 진정성이 이 파격적 앨범에도 그대로 녹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앨범에도 여전히 풍부한 기독교적 사랑과 정의에 대한 수사가 시종일관 넘쳐나고, 전형적인 U2의 선명한 멜로디 라인이 여러 트랙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과거와 현재, 연속성과 불연속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U2는 당대 급부상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현란한 이미지와 ‘소비사회’의 정신적 방황과 회의를 사운드 조작과 과장된 테크놀로지로 비판하는 이중적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즉, 이미지와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가치가 소멸되어 가는 현실을, 이전의 진지함과는 다른 자조적인 기지로 표현하며 청중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질문하게 한다. 다음은 U2의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의 가사이다.
내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면 당신을 만족시키겠어.
내게 마지막 기회를 줘. 우린 사물의 표면 위로 미끄러질 거야.
오 이제 그녀가 온다. 나를 더 높이 데려가 줘, 더 높은 곳으로.
당신은 진짜야. 당신은 진짜야. 아니 진짜보다 더 좋아.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 <Achtung Baby> (1991)
또한 1997년 앨범 <Pop>의 타이틀 곡 “Discotheque”에서는 소비적 욕망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판타지를 클럽과 파티에 비유해 노래한다.
손을 뻗을 수 있지만 붙잡을 수는 없어.
머물게 할 수도, 조정할 수도 없어. 자루에 담을 수도 없지.
너는 풍선껌을 씹으며, 그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좀 더 원하지.
저 사랑스럽고 귀여운 것은 너에게 늘 부족해.
너는 혼란스럽게 뭔가를 위해 고통 받고 그것을 위해 일하지.
가자, 가자, 디스코텍으로. 가자, 가자. 디스코텍으로 날 보내줘.
너는 신을 찾고 있지. 그럼에도 너는 다른 곳에 있잖아.
“Discotheque”, <Pop> (1997)
U2는 미디어와 자본주의가 어떻게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또한 탐욕과 이기심이 사회와 문화에 얼마나 깊이 파고들어 일상화되었는지를 자신의 음악과 공연에 복제된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려 했다. 그런 현대 사회를 U2는 “Zooropa”라는 가상 사회로 명명하고, 문명화된 바벨론 “Zooropa”의 세계관을 담아냈다. U2가 그려낸 그 도시는 “희망 대신 상업주의가, 평화 대신 맹신이, 생명 대신 무감각이, 진리 대신 불확실성이, 공동체 대신 익명성이” 지배하는 신 없는 디스토피아이다.[1]
내겐 나침반이 없어. 내겐 지도도 없어.
내겐 이유도 없어. 되돌아갈 이유 말이야.
내겐 종교도 없어. 뭐가 뭔지 모르겠어.
난 한계를 몰라. 우리 소유의 한계 말이야.
주로파, 걱정하지마 그대. 다 괜찮아질거야.
주로파, 불확실성이 우릴 인도할거야.
그녀는 꿈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세상을 떠올릴 거야.
“Zooropa” <Zooropa> (1993)
U2의 90년대 삼부작 <Achtung Baby>, <Zooropa>, <Pop>은 “복제된 것에 의해 진정한 것들이 소외된” 현대 문명 비판을 담고 있는 장 보드리야르의 이론에 대한 재해석이자 오마주로 보인다. 보드리야르는 자신의 명저 『시뮬라시옹』(Simularque et Simulation)에서 욕망을 부추기는 복제기술(simulation)은 복제된 문화를 만들고 실재보다 더 생생한 과잉실재(hyper-reality)에 실재가 오히려 밀려나는 복제사회(simularque)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즉 복제 문화로 말미암아 진정한 예술과 진정한 삶이 복제된 것에 밀려나는 사태를 예고한 것이다.[2]
1980년대 U2의 노래들이 광야를 순례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담아냈다면, 1990년대의 노래들은 포스트모던 소비사회 안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였다. 여기에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존재한다. 이전의 순례에서는 사막에서 자라는 ‘조슈아 트리’의 생명력이 상징하듯, 갈등과 욕망으로 황폐해진 사회 안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강조했다면, 포스트모던 삼부작에서는 묵시적 과잉실재의 디스토피아 속에서 길을 잃은 불안을 보다 염세적으로 표현해냈다. 하지만 구도의 여정이 멈춘 것은 아니다. 보드리야르의 결론과는 달리 U2는 지도와 목표를 잃고 방황할지라도 진정한 삶의 가치와 신의 나라를 향한 여정은 계속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Zooropa> 앨범의 마지막 곡 “The Wonderer”는 그 절망과 희망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밖에 나가 걸었다.
금으로 포장된 거리에서 영혼 없는 도시의 뼈와 살을 보았지.
나는 어느 교회 앞에서 멈췄다.
사람들은 신의 나라를 원한다지만 신은 원치 않는다.
나는 밖에서 찾아다녔다, 한 명의 선인을 찾아서,
그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을 한 영혼을.
나는 성경 한 권과 총 한 자루를 들고 있다.
신의 말씀이 내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예수여, 기다리지 말고 주무세요.
예수여, 저 곧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래요, 나는 여전히 당신을 찾아 계속 떠돌아다닙니다.
“The Wonderer” <Zooropa> (1993)
[1] Robert Vagacs, Religious Nuts, Political Fanatics: U2 in Theological Perspective (Eugene, OR: Cascade Books, 2005), 49, 53.
[2] 장 보드리야르,『시뮬라시옹: 포스트모던 사회문화론』(서울: 민음사, 1992),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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