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모든 연령과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탁월한 이야기꾼이셨다. 공중의 새와 들에 핀 백합도 그에게서는 예술적 언어가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사물과 상황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며 그 안에 깃든 하나님의 언어를 전해 주신다. 성경은 하늘의 언어이다. 하지만 그 하늘의 언어를 일상의 말로 표현할 때 더 많은 이해와 공감이 일어남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친히 본으로 보여주신다.(본문 중)

[문화 안의 어떤 세상⑤]

지금까지 이런 말씀은 없었다: 우리 감성을 사로잡는 말맛

 

윤영훈(성결대학교 신학부 교수)

 

영화 <극한직업>은 2019년 겨울 엄청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 코미디 영화에서 극한 환경을 살아내고 있는 현대인들의 페이소스에 공감하며 한바탕 웃었다고 말한다. 통통 튀는 이병헌 감독의 재기 발랄한 상황 연출과 대사가 시종일관 관객을 사로잡는다. 이 영화의 성공은 이병헌 감독 특유의 말맛에서 기인한다.

 

 

그가 연출을 맞은 전작들을 보자 <스물>, <바람 바람 바람>에서도 이병헌 감독은 캐릭터들을 삶의 아이러니에 빠뜨리고 그 속에서 인물들이 서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대사들을 통해 ‘간지’를 느끼게 한다. 이런 특징은 그가 각본에 참여한 <과속 스캔들>, <써니>, <위대한 소원>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이제 한국 영화 최고의 언어 스타일리스트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이런 그의 ‘포텐’이 <극한직업>에서 그야말로 ‘빵’ 터졌다.

영화는 시종일관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 인물들 상호 간에 호흡이 긴밀하게 작동하며 웃음을 극대화한다. 모든 캐릭터들이 심지어 단역들까지도 그 호흡과 말맛의 진수를 보여준다. 조금이라도 그 호흡이 어긋나면 영화의 해학은 썰렁하고 어색해질 텐데, 감독과 배우는 그 절묘한 줄타기에 성공한다. 참 오랜만에 맘껏 웃었다.

시와 소설 속에, 영화 속에, 드라마 속에, 노랫말 속에 말의 감성은 관객을 사로잡는 필수요소이다. 말에 담긴 메시지의 심오함을 넘어 언어가 간직한 미학적이며 감성적인 매력을 담아내는 것은 실로 부러운 재능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김훈, <남한산성> 첫 문장)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god, “어머님께”)

내가 좋아하는 문화 콘텐츠 속의 맛있는 말들이다. 단 한마디에 사람들의 감수성과 호기심을 극대화하는 이 말의 성찬에 정서적 포만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의 언어의 식감을 가장 자극하는 한 이야기꾼이 있다. 그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청중들은 먹먹한 감동과 충격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의 언어를 들었던 한 사람은 이렇게 목격담을 전한다.

“지금까지 이런 말씀은 없었다.”

마태복음 7장 28-29절에서 마태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의 말씀이 끝났을 때 청중들은 예수의 말에서 경의를 표했다. 이전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고매한, 그러나 진부한 설교에선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던 정서적 충격을 느낀 때문이다.

예수님은 모든 연령과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탁월한 이야기꾼이셨다. 공중의 새와 들에 핀 백합도 그에게서는 예술적 언어가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사물과 상황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며 그 안에 깃든 하나님의 언어를 전해 주신다. 성경은 하늘의 언어이다. 하지만 그 하늘의 언어를 일상의 말로 표현할 때 더 많은 이해와 공감이 일어남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친히 본으로 보여주신다.

그분이 전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씨 뿌리는 농부와 고기 잡는 어부의 일상으로, 또한 집나간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와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이야기로 드러난다. 세상 모든 만물이 그 분의 언어로 표현되면 달라진다. 들의 꽃은 그저 스쳐 지나갈 꽃이 아니고 공중의 새도 그냥 날아 가버릴 새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감하시려고 성경을 통해,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통해 늘 말을 걸어오신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는 세속 나라의 탐욕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민중을 향한 따뜻한 은총이 넘친다.

 

 

또한 산상수훈을 주의 깊게 읽어보자. 그분의 메시지는 율법과 경건과 인생의 의미를 이전의 고정관념과 절묘하게 대비하며 새롭게 재해석한다. 박자를 따라 운율을 맞추며 그분의 말씀은 반복하여 우리의 가슴 속을 파고든다. 예수님의 설교는 분명 당대의 설교자들과 달랐다. 오늘날 교회의 설교는 예수님의 말씀에 가까운가 아니면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의 말과 유사한가?

“Papa, don’t preach.” 팝스타 마돈나가 1988년 발표해 크게 히트한 노래 제목이다. 이 제목처럼 현대인들은 듣기 싫은 잔소리를 들을 때 “설교하지 마”라고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설교’는 이처럼 부정적인 말로 통용되고 있다. 이는 설교가 형식 면에서 지루하고 그 내용 면에서는 고압적이며 진부한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야기 듣기에 열광한다. 많은 방송 프로그램이 말 그대로 스타 강사들의 ‘세속 설교’를 전면에 내세우며 시청자들의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똑똑하고 말 잘하는 많은 사람들이 일명 ‘뇌섹남’이란 칭호와 함께 전성기의 인기를 누리는 걸 보면 사람들은 여전히 좋은 말에 굶주려 있는 것 같다.

일부 지식인들은 이런 상품화된 인문학이나 대중 강연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청중이 원하는 것은 정보보다는 공감이다. 아무리 심오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듣는 이들의 마음에 공명되지 않는다면 그 권위자의 말은 ‘설교’가 되어 버린다.

 

 

교회에서도 설교는 양면성을 갖는다. 과거 기독교 부흥운동은 언제나 뛰어난 설교자들을 배출하며 발전하였다. 이들은 대중적인 구술 언어 속에 일상을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을 담았다. 청중을 울리고 웃길 수 있는 감정적 언어의 달인들이었다. 오늘날도 여전히 교회 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목사의 설교이며 사람들은 좋은 설교 듣기를 열망한다. 그러나 또한 교회에서조차 설교는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짧게 하는 설교에 대놓고 환호하기도 한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생각한다. 언어는 두 인격 사이의 소통의 도구이며 내용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는 수많은 언어들과 만나게 된다. 언어를 통해 인간은 정체성과 자존감, 그리고 자아를 형성해 간다. 우리를 향해 들려오는 언어와 교감하면서 우리의 사유는 치밀해지고 감성은 풍부해진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어를 만나 변화되었고 이후에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님 말씀을 얕은 지식으로 상투적으로 해석하는 짓을 멈추고, 인문적 상상력을 동원해 다시 읽어보자. 이를 위해, 말씀을 우리 삶에 가져와 일상의 언어로 다시 이야기하는 문학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일상의 언어 안에 담긴 하나님의 언어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드러내고 내가 속한 현실의 의미를 정직하게 대면하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삶의 가치들의 혁명을 이룰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 안에서 또한 교회 밖을 향해 감흥 있는 말들이 살아나길 기대한다. 그것이 교회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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