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의 노래에서 사랑과 하나님은 일종의 동의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은 기독교의 신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반복해서 쓰이고 있다. 보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성경을 통해 이해하는 바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 분의 삶은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중략) 나 자신이 그 사랑으로 변화되고 그 사랑 안에서 행동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삶이 복잡하고 힘들어질 때마다 나는 그 사랑의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본문 중)
윤영훈(성결대학교 신학부 교수, 『윤영훈의 명곡 묵상』 저자)
U2가 묘사한 현대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공동체 해체로 인한 개인주의와 그로 인한 인간 소외였다. 다양한 개인들이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 혼돈과 무질서를 극복하고 하나 됨을 이룬다는 것은 포스트모던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U2의 명곡 “One”은 가사에 담긴 문학적 미학과 정신이 돋보이는 90년대를 대표하는 노래다. 영국의 음악 채널 VH1이 기획한 “가장 위대한 노랫말 100”(100 Greatest Lyrics)[1] 설문조사와 음악 잡지 Q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1001”(1001 Greatest Songs of All-time) 차트에서도 “One”은 1위에 올랐다.[2] 이 노래의 어떤 점이 이러한 평단과 팬들의 찬사를 이끌어냈는가? 그 이유는 아마도 이 노래가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담아냄으로써 현 시대 ‘다원주의’ 담론의 고민과 나아갈 방향을 선명하게 제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갈등과 반목의 분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One”은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와 하나 됨의 가치를 일깨워 주며 “시대의 노래”가 되었다. 한국의 취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보노는 오랜 분단의 아픔을 겪은 아일랜드인으로서 자신은 한국의 분단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며, U2의 한국 공연이 성사된다면 가장 부르고 싶은 노래가 바로 “One”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노래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는 걸까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쉽겠죠.
당신은 비난할 누군가를 찾았으니까요.
당신은 말합니다. 한 사랑, 한 생명.
오늘밤 우리게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라고
한 사랑. 우린 함께 나누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곧 사라집니다.
물질적 풍요와 개인주의적 이기심에 물든, 우리 시대 다수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 됨”이라는 말이 비현실적인 구호가 되어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는 누군가를 비난하고 소외시킨 결과물일 수도 있다. U2는 바로 이 점을 비판적으로 가리키며 이러한 차가운 현실을 솔직하게 직면하라고 요청한다.
우리가 보통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공동체’ 개념 속에는 사실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역사상 강한 공동체주의를 표방하는 집단은 그 외부의 이질적 요소들에 대해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또한 공동체 내부에서도 이질적 요소들을 늘 추방과 처단의 대상으로 삼아 희생시키며 동질성을 유지해 왔다.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그의 저서 『폭력과 성스러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폭력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화해의 희생양 하나를 뺀 모든 사람의 일치다.”[3]
역사 속에서 평화와 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일종의 문명사적 방법론이 바로 개인에게 가하는 공동체의 집단적 따돌림이었다. 즉, 타자 또는 소수자로 존재한 약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공격함으로써 다수자들은 인위적인 화해와 평화를 만들 수 있었다. 솔직하게 보면 한국사회에서도 이런 폭력적 제의의 사례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만일 그런 희생자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 공동체는 하나 됨을 위해 또 다른 모난 사람들, ‘비난할 누군가’를 찾아 공격할 것이다. U2는 공동체가 “한 사랑, 한 생명”을 외친다면, 그것은 단지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되고 이런 현실적 인식과 반성도 함께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하나 됨을 위한 방법을 후렴구는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는 하나지만 똑같은 것은 아니죠. 단지 함께 보듬고 가는 겁니다.
We are one, but we are not the same. We get to carry each other.
하나 됨이란 모두가 똑 같아지는 획일성(sameness)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는(togetherness) 삶의 방식이다. 이 노래의 2절에서 화자는 주류 집단의 위선적인 포용과 다원주의 담론에 대해 철저히 조롱하며 비판한다.
당신은 누군가를 용서하러 오셨나요?
아니면 죽은 자를 살려내려고 하십니까?
당신은 예수 흉내를 내고 싶은 건가요?
마치 나를 당신 앞의 문둥이로 보면서
…
당신은 내게 들어오라 하지만, 나를 기어서 가게 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남은 것은 상처입니다.
언론 앞이나 공식 발언대에서는 성적, 인종적, 신체적, 문화적 소수자들을 포용한다는 선전을 늘어놓지만 실제로는 두터운 편견을 지니고 그들을 진정한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폭로한다. 그 포용이라는 것도 기껏해야 ‘값싼 동정심’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들에게 이 공동체에 머물러도 좋지만 대신 모난 행동들은 자제하고 게토로 들어가라고 요구한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보여준 사랑과 포용의 실제 모습이다. 이러한 사례는 시공을 넘어 어느 곳에서든지 얼마든지 발견된다.
이 노래는 성경의 에베소서 4장의 구절들을 인용하며 진정한 기독교적 사랑을 실행하라고 호소한다.
당신은 말합니다. 사랑이 바로 성전이며, 최고의 율법이라고.
…
한 사랑, 한 피, 한 생명,
당신이 말한 대로 당신은 행해야 합니다.
자매와 형제들, 모두 함께
(그리스도의) 한 생명을 나누었으니까요.
그리스도는 이 보편적 사랑과 화해를 위해 배타적 폭력의 희생 제물이 되었다. 이 하나 됨의 원리는 성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나누며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눈 형제이며 한 몸임을 선포할 때 분명하고 강력하게 드러난다.
U2의 노래에서 사랑과 하나님은 일종의 동의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은 기독교의 신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반복해서 쓰이고 있다. 보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성경을 통해 이해하는 바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 분의 삶은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나 자신이 그 사랑으로 변화되고 그 사랑 안에서 행동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삶이 복잡하고 힘들어질 때마다 나는 그 사랑의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1993년 발표한 “The First Time”에는 이런 실천적 사랑의 본질과 부와 힘을 지향하는 왜곡된 신앙에 대한 비판이 함께 나타난다.
나에겐 연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내게 노래하는 법을 가르쳐줬어요.
믿음을 잃었을 때 희망을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난 사랑을 느꼈습니다.
나에겐 형제가 있습니다.
내가 헐떡이며 달려갈 때, 내 옆에서 항상 함께 달려주었지요
내가 낙심하여 절망할 때에, 늘 내 곁에 있어주었지요.
처음으로 난 사랑을 느꼈습니다.
내 아버지는 아주 부자십니다.
내게 그의 나라의 열쇠와 한 컵 가득 황금을 주셨습니다.
대궐 같은 저택도 내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난 뒷문으로 나와 그 열쇠를 버렸습니다.
처음으로 나는 사랑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U2는 포스트모던 소비사회의 어지러운 파티 가운데서 공동체를 상실하고 분쟁과 갈등이 심화된 우리의 상황을 자조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런 가운데 그들이 호소한 것은 하나 됨의 가치이다. 하지만 이는 결코 일치와 동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 가운데 공존하는 삶, 더 나아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업하는 ‘함께’의 삶이다.
기독교적 가치관 속에서 U2는 늘 사랑을 노래한다. 그 사랑은 사람들의 감상적이고 순간적인 ‘버블 껌’ 사랑도 아니고, ‘조건 없는’(unconditional) ‘이타적인’(unselfish) 등의 관념적 수사어로 숭고화한 실체 없는 사랑도 아니다. U2에게 신의 사랑은 “The First Time”의 노랫말이 말하듯, 때론 연인처럼 때론 친구처럼 일상에 성육한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행동은 신이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이 땅에 찾아온 것과 같이 ‘함께 함’으로 나타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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