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용 휴대전화는 1990년대부터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30년이 채 못 된 지금 거의 모든 사람이 한 대 이상의 전화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초등학생만 되면 스마트폰을 갖습니다. 내 전화기를 갖는 순간 나는 우주로 통하는 나만의 통로를 가진 우주의 중심이 됩니다. 그와 동시에 내 전화기는 가장 은밀한 영역까지 포함한 내 사생활의 중심에 자리를 잡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중시하는 것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핵심 특징입니다.(본문 중)
권수경(고려신학대학원 초빙교수)
온 세상이 내 손 안에
옛 중국의 노자는 “집 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1]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소우주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만 잘 성찰하면 우주의 모든 원리를 터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도 노자처럼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온 세상을 한눈에 파악합니다. 내가 ‘소우주’인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온 세상과 통하는 스마트폰이라는 기계의 ‘소유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손에 쥔 이 조그만 기계 덕분에 우리 각자는 온 세상과 소통하는 주역이 되어 소통의 때와 방법, 대상과 내용을 직접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용 휴대전화는 1990년대부터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30년이 채 못 된 지금 거의 모든 사람이 한 대 이상의 전화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초등학생만 되면 스마트폰을 갖습니다. 내 전화기를 갖는 순간 나는 우주로 통하는 나만의 통로를 가진 우주의 중심이 됩니다. 그와 동시에 내 전화기는 가장 은밀한 영역까지 포함한 내 사생활의 중심에 자리를 잡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중시하는 것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핵심 특징입니다. 절대적 진리나 객관적 지식 대신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최고의 가치를 갖는 시대인 만큼 내가 주역이 되어 세상과 교섭할 수 있게 해 주는 스마트폰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스마트폰은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전화기인 만큼 소통이 기본인데 목소리 외에 문자 및 화상 대화도 되고 그룹 대화도 가능합니다.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검색하고 SNS로 사람들과 교제를 합니다. 이메일도 주고받고, 음악도 듣고,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기도 보기도 합니다. 시계, 달력, 메모장, 계산기도 들었고 일정관리, 건강관리, 은행관리, 카드 결제, 차표 구입, 음식 주문, 상품 구매, 신원 확인 등도 폰으로 합니다. 제4차 산업혁명의 급속한 발전으로 스마트폰의 쓰임새는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습니다.
중독인가 변화인가
전철을 타면 대부분의 사람이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매일 수십 회 이상 사용하고 시간으로 따지면 하루 서너 시간 정도를 전화기를 보며 보낸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 중독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학생들이 폰에 시간을 뺏겨 공부를 안 한다면 부모로서 걱정이 되겠지요. 음란물이나 게임 중독도 있고 SNS나 유튜브에 과도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독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중독이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정말 많은 일들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폰에 많은 시간을 쓰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모두가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하는 일은 소통, 연구, 송금, 장보기, 차표 구입, 독서 등으로 다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사용 빈도나 시간을 근거로 중독이라는 범주에 넣기에는 스마트폰이 우리 삶에 너무나 깊이 들어와 버렸습니다. 쉽게 말해 술이나 담배처럼 없어도 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이제는 밥과 물처럼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어떤 것으로 변모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신발을 신고 있고 안경을 쓰고 있어도 중독이라 부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스마트폰에 문제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과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스마트폰은 도구입니다. 돌도끼를 만들던 구석기 시대부터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였습니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엄청나게 많은 도구를 하나의 기계에 담아 둔 일종의 만능 도구상자입니다. 돌도끼든 계산기든 도구는 모두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도구를 있는 대로 모아 한 기계에 담았으니 사람이 그 기계에 의존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사용하면 할수록 사람의 능력은, 이를테면 암기력 같은 능력은 줄어들겠지만 폰이 이미 나의 일부가 되었음을 감안한다면 그 또한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달라진 삶의 양태
스마트폰은 양면성을 갖습니다. 직접 대하던 세상을 폰을 통해 간접적으로 대하게 됩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면 앞뒤좌우가 온통 사람인데 우리는 폰을 통과한 세상과만 소통을 합니다. 아이들 발표회에 가서 비디오를 찍느라 발표는 못 보고 나중에 그 비디오도 안 보는 어리석음을 우리가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이층에 있는 아들에게 밥 먹으라고 고함치는 대신 문자를 보냅니다. 식사 후 소파에 나란히 앉은 부부도 폰과 텔레비전만 번갈아 바라봅니다.
스마트폰 때문에 인격적인 관계가 줄어든다고 걱정입니다. 직접 나누는 대화가 줄어들었다는 말인데 그 대신 간접적인 대화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스마트폰은 나와 세상을 차단하는 벽도 되지만 오히려 더 큰 세상으로 이어 주는 마술 통로 역할을 더 많이 합니다. 시간과 장소의 제한도 넘을 수 있으니 공유하는 삶의 범위도 더 넓어진 셈입니다. 이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과 이전보다 훨씬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게 다 스마트폰 덕분입니다. 말없이 건네주던 정겨운 편지 대신, 신속 정확한 이메일을 이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볍고 옅은 관계가 많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가족의 사랑이나 친구의 우정이 약해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소통의 방식이 달라진 것이라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옛날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성세대의 경우 더욱 그렇겠지요. 하지만 인류는 스마트폰을 손에 쥔 순간 루비콘 강을 건너 버렸습니다. 스마트폰이 개인 중심의 포스트모던 가치관을 실현하고 있기에 더 힘이 있습니다. 문제점은 보완해야 되겠지만 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세상에 빨리 적응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보다 나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끝이 없는 숙제
스마트폰 덕분에 자녀 양육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어린 나이에 폰 소유주가 되다 보니 정서나 인지 발달에 영향을 받습니다. 갖가지 중독에 빠질 가능성도 당연히 큽니다. 늦기 전에 부모가 개입해야 할 영역이지만 사실상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어른들도 스마트폰에 파묻혀 살면서 아이들에게만 중독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방법에 있어서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폰을 뺏는 일은 후유증이 너무나 큽니다. 따라서 폰 사용 자체를 통제하기보다 삶의 전반적인 영역을 고루 살펴 내실 및 성취도를 기준으로 하여 지도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실제 적용은 물론 훨씬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이므로 오랜 기간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향한 신뢰를 쌓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것만을 중시하는 시대인 만큼, 부모자녀 관계나 자녀들의 인격성숙도 오랜 기간 인내하며 노력해야 할 영역일 것입니다.
심리적인 불안을 중독의 증거로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폰이 곁에 없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우리 삶의 워낙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그 불안은 중독의 증거라기보다 스마트폰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는 우리 삶에 대한 긴장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긴장의 뿌리를 파 내려간다면 결국 인간 실존의 문제를 만날 것이므로, 스마트폰 때문에 느끼는 긴장은 인간 실존에 내재한 두려움의 포스트모던적 표현일 것입니다.
손에 쥔 스마트폰은 포스트모던 시대를 대변하지만 어쩌면 아직은 초기 형태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직 이에 대한 연구나 성찰이 부족하여 스마트폰의 올바른 사용법도 배우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자기를 성찰함으로써 온 우주를 이해하던 옛사람과 달리 온 세상을 파악하면서도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것이 오늘의 세태인 만큼, 사람을 기능적인 측면으로만 바라보고 사람됨의 본질은 등한히 할 가능성도 큽니다. 우리는 시대와 무관하게 사람 된 목적을 계속 구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살면서 체득한 사람됨에 관한 작은 지혜들을 부지런히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 『노자』47장, 不出戶 知天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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