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5:10). 바울은 이 구원과 화해의 복음 중심을 구속 또는 대속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다.(본문 중)

윤철호(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조직신학)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선포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원의 복음을 하나님과의 화해의 복음으로 증언한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바울은 이 구원과 화해의 복음 중심을 구속(救贖) 또는 대속(代贖)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성서의 증언에 기초하여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대속의 죽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 교리를 주창했다. 이 교리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 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전가해 주신다. 바르트의 표현을 빌면 심판자(The Judge)가 피심판자(The Judged)가 되어 우리 대신 심판 당함으로써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부여해 주었다.[1] 이 “즐거운 교환”이 십자가에서 일어났다.

“칭의” 또는 “중생”(거듭남)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해 즉각적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실존이 악을 행하는 육신으로부터 즉시 완전히 해방되고 또한 우리 안의 하나님 형상이 즉시 완성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치료를 받으며 회복 가운데 있는 사람으로 비유했다. 우리는 아직 몸이 아프지만 치유가 진행되고 있으며 완전히 건강해질 것이라는 소망 가운데 있다. 루터는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sumul justus et peccator)이란 말로 표현했다. 새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여전히 옛 아담의 영향력이 남아있다. 우리 안에서는 아직도 이기적이고 투쟁적인 생존 본능의 유전자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 안에서는 아직도 불신앙과 교만과 정욕이 완전히 죽지 않고 꿈틀거리고 있다. 우리 안에서는 아직도 날마다 영과 육이 투쟁하고 있으며, 이 투쟁에서 우리는 매우 빈번하게 패배를 경험한다. 여전히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우리의 육신 즉 옛사람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매우 어렵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레네우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한 구원을 “총괄갱신”(recapitulation)이란 개념으로 표현했다. 이 개념은 그리스도가 아담의 타락으로 좌절된 인간 역사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창조의 종말론적 완성을 향한 인간의 전체 역사를 회복시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2] 즉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 이래로 파멸을 향해 나아가던 인간의 역사 전체를 총괄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본래 목표, 즉 하나님 형상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도록 새롭게 갱신했다. 판넨베르크에 따르면 하나님 형상의 종말론적 완성을 선취(先取)한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안에서 세계의 종말론적 미래가 구원으로 도래했으며, 하나님 형상의 종말론적 완성을 향한 인간의 본래적인 역사적 과정이 회복되었다.[3] 종말론적 운명을 향한 역사적 과정 안에 있는 우리 인간 안에는 여전히 선과 악이 공존하며 하나님의 형상과 죄가 함께 있다. 우리는 여전히 수시로 넘어지고 실패를 반복하는 연약한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우리를 늘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고 종말론적인 구원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가르고 애굽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힘들고 험한 광야의 길을 가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고 구원받았지만 종말론적인 미래의 운명 즉 하나님 형상의 완성에 이르기 위해 광야 같은 세상에서의 고되고 힘든 성화의 여정을 지나야 한다. 이 여정에서 우리의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를 끝까지 이루실 것이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신약성서는 종말론적 미래에서의 인간의 운명과 관련하여 죽은 자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최후의 심판, 하나님 나라, 영생 등 여러 가지의 표상들을 보여준다. 이 표상들 가운데 가장 중심적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의 핵심 내용인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역사 속에 선취적으로 도래했으며, 종말론적 미래에 완성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종말에 일어날 보편적 부활의 역사 내적 선취 사건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위한 약속과 보증이 된다.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에서 인간의 하나님 형상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함(벧후 1:4)으로써 완성된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사랑의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4] 안에서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친교적 연합(communion)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의 하나님 형상은 종국적으로 완성될 것이다. 동방정교에서는 이 인간의 하나님 형상의 종국적 완성을 “신화”(deification)란 개념으로 표현한다. 이 신화의 단계에서 자기초월적 개방성 안에서의 믿음, 사랑, 소망이 온전히 성취될 것이며,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고전 13:13).[5]

 

러시아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1360 -1430)가 1410년경에 그린 삼위일체. 러시아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이 성화는 주님께서 세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성경 말씀을 그린 것이다(창 18:1-15). 제일 왼 편 사람이 성부, 중앙의 사람이 성자, 오른쪽 사람이 성령을 나타낸다. 예수의 위에는 참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낙원의 생명나무와 십자가를 동시에 상징하며, 예수의 푸른색 의상은 신성, 적갈색은 인성을 표현한 것이다. 삼위께서는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다.(출처: wikipedia)

 

종말론적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서는 인간의 운명뿐만 아니라 전 창조세계의 운명이 완성될 것이다. 그때에는 옛 하늘과 땅이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이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그리고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충만하게 거하실 것이다.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 그리고 또한 그때에는 인간과 모든 창조세계가 세세토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이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계 7:12).


[1] Karl Barth, Church Dogmatics, IV/1, pp. 256-57.

[2] Irenaeus, Proof of the Apostolic Preaching, trans. Joseph Smith (Westminster, MD: Newman Press, 1952), 32, p. 68; Dai Sil Kim, “Irenaeus of Lyons and Teilhard de Chardin; A Comparative Study of ‘Recapitulation’ and ‘Omega’,” Journal of Ecumenical Studies (13.1, 1976), pp. 69-93.

[3] Pannenberg, Systematic Theology, III, p. 550.

[4] 헬라어로 “주위를 회전함”이라는 의미의 단어인데, 4세기 이후 삼위일체의 신비한 상호 관계를 기술하는 용어가 되었다. 편집자 주.

[5] 심판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며, 지옥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됨으로써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생명 대신 불신과 절망과 미움과 죽음만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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