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U2의 앨범 발표되던 시기는 9.11 테러로 인해 서구 사회에 거대한 상심과 갈등이 있었던 때였고, 또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전쟁이 진행되던 때였다. 앨범의 제목은 <어떻게 원자폭탄을 제거할 수 있을까?>였다. … 이 앨범에는 … 날카로운 표현이나 반전이나 반핵에 대한 직접적인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곡은 인생의 성숙과 사랑을 위한, 경건한 종교적 언어로 가득한 메시지와 1인칭의 기도문으로 이루어져 있다.(본문 중)

윤영훈(성결대학교 신학부 교수, 『윤영훈의 명곡 묵상』 저자)

 

2004년 U2의 앨범 발표되던 시기는 9/11 테러로 인해 서구 사회에 거대한 상심과 갈등이 있었던 때였고, 또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전쟁이 진행되던 때였다. 앨범의 제목은 <어떻게 원자폭탄을 제거할 수 있을까?>(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였다. 사람들은 이 앨범에서 U2가 이전과 같이, 특히 3집 <War>(1983)처럼, 정치적인 비판의 날을 세워 반전과 평화를 노래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하지만 이 앨범에는 그런 날카로운 표현이나 반전이나 반핵에 대한 직접적인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곡은 인생의 성숙과 사랑을 위한, 경건한 종교적 언어로 가득한 메시지와 1인칭의 기도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대체 어떻게 원자폭탄을 제거할 수 있단 말인가?

 

U2의 앨범 <어떻게 원자폭탄을 제거할 수 있을까?>(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커버 사진.(출처: wikipedia)

 

이 물음에 대한 U2의 답변은 기독교적 사랑을 통한 화해와 “무릎 꿇음”이 그 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테러에 대항해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행보에 대한 분명한 비판이기도 하다. <War>의 메시지처럼 U2는 폭력은 폭력을 지속시키는 원인이 될 뿐이며, 어느 한편이 그 폭력과 보복의 사슬을 끊는 것이 바로 평화의 길임을 지적한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므로, 이를 위해 무릎 꿇은 법을 배우는 영적인 수련이 필요하다. 이 앨범의 타이틀곡, “Vertigo”에서 U2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헬로, 헬로, 우리는 ‘현기증’(vertigo)이라 불리는 곳에 있어요.

불빛은 가라앉고 이제 나는 알게 되었어요.

당신이 내게 특별한 것을 주리라는 것을.

당신의 사랑은 내게 가르쳐 주고 있어요.

바로 무릎을 꿇는 방법을 말이죠.

평화를 이루는 무릎 꿇음의 가치는 U2의 다음 앨범인 <No Line on Horizon>(2009)의 수록곡 “Moment of Surrender”의 가사에도 잘 나타나 있다.

오 하느님, 나를 받아주세요.

내가 사랑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나를 믿어준다면…,

오 하나님 저를 믿어주세요.

항복의 순간! 나는 내 무릎을 감싸 안았지.

또한 4번째 트랙 “Love and Peace, or Else”에서는 종교 간의 갈등과 충돌을 염려하며 종교 간의 ‘공존’(Coexist)과 평화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내려놓아요. 당신들의 총을 내려놓아요.

당신들은 모두 시온의 딸이며, 아브라함의 자손들이죠.

난 장담하긴 어려워요. 무릎을 꿇는 것은 쉽지 않죠.

여기 내 마음이 있어요. 당신이 부술 수 있도록 내어 놓았어요.

나를 풀어주세요, 풀어주세요. 우리는 사랑과 평화가 필요해요.

멕시코시티에서 진행된 U2의 ‘Vertigo 투어’ . “Sunday Bloody Sunday”재생 중.(2006년 2월 16일)(출처: wikipedia)

 

2005년 콘서트 투어에서 보노는 유대교의 다윗의 별, 기독교의 십자가, 이슬람교의 초승달 문양이 함께 그려진 머리띠를 두르고 “우리는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외치기도 하였다. U2의 이 퍼포먼스는 종교 뿐 아니라 사회적 이견으로 인한 갈등과 분쟁의 종식과 평화를 촉구하기 위한 예술적 표현이었다.

하지만 이 공연의 피날레는 앨범의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된 곡 “Yahweh”였다. 이 노래의 제목이 “God”이 아닌 “Yahweh”인 이유는 U2가 공존의 가치를 표방하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드러려고 한 것이다. U2의 기독교 신앙에서 신은 정의를 위해 불의를 심판하는 존재가 아니라, 낮은 곳으로 내려와 십자가를 지는, 사랑과 은혜를 통해 구원을 이루는 존재이다. 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는 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올랐습니다. 나는 ‘속죄의 어린양’(Sacrificial Lamb) 사상을 사랑합니다. 그리스도가 죽으신 그 자리가 바로 세상의 죄를 짊어진 자리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응보(karma)가 아니라 은혜(grace)입니다.[1]

2009년 발표한 다음 앨범 <No Line on Horizon>에도 이런 기독교적 사랑을 바탕으로 각성과 행동을 촉구하는 서사들이 채워져 있다. 특히 앨범의 표지 디자인은 일본의 사진작가 스키모토 히로시의 작품 “Boden Sea, Uttwil”을 차용하였다. 이 사진은 정확하게 양분된 수평선을 통해 평등과 공존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구분선은 없다. 이처럼 2000년대 U2의 삼부작은 기독교적 은혜와 사랑 안에서 만난 새로운 희망과 평화의 길을 경건하고 온건하게 표현하고 있다.

 

U2가 2009년 발표한 앨범 의 커버 사진.(출처: wikipedia)

 

어떻게 원자폭탄을 제거하고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 U2가 발견한 평화의 길이 이기심과 탐욕으로 가득한 인간 사회에서 현실적인 것일까? U2의 사회적 메시지는 세속주의와 휴머니즘에 기초한 사회비판과 달리 예언자적 분노와 함께 복음이 전하는 은총의 가치를 강조하였다. U2는 앨범의 마지막 곡 “Yahweh”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기도문을 통해 평화를 위한 수도의 길을 제안하였다.

나의 손을 취하셔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세요.

나의 손을 취하셔서 주먹을 쥐지 않게 하소서.

나의 입을 취하소서. 너무 쉽게 남을 비판해 왔어요.

나의 입을 취하소서. 그리고 내게 키스해주세요.

 

여호와여, 여호와여, 생명이 태어날 때에는 늘 고통이 따르죠.

여호와여, 내게 말해주세요. 새벽 직전에는 늘 어둠이 있죠.

나는 여전히 아침을 기다리고 있어요. 태양이 곧 올라오겠죠.

 

이 도시를 취하셔서 ‘언덕 위의 도시’(City on a Hill)가 되게 하소서.

이 도시를 취하셔서 당신의 나라가 되게 하소서.

어떤 사람도 이 땅에서 그 소유를 주장하지 않게 하소서.

내 마음을 취하소서. 내 마음을 취하셔서 부서지게 하소서.

U2는 2019년 12월 8일에 있을 내한공연의 오프닝 곡으로 “Sunday bloody Sunday”(1983)를 선택했다. 이 노래는 1972년 북아일랜드에서 평화적 시위대를 향한 영국의 공수부대의 발포로 28명의 사상자가 난 비극적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그들은 ‘피의 일요일’이 아일랜드 뿐 아니라 한국인의 상처이기도 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피의 일요일! 그 날의 아픈 상처는 우리들의 가슴과 기억 속에 깊게 새겨져 있다. U2의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언제까지 이 노래를 불러야 할까?”(How long must we sing this song?).

존 레논(John Lennon)이 우리를 천국과 종교 없는 세상을 ‘상상’(imagine)하게 한다면, 보노는 천국으로서의 세상을 상상하도록 초대한다. 한 인터뷰에서 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천국이 우리가 죽으면 가는 하늘 위의 어떤 곳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나는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 우리 삶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라도 말이죠.[2]

그들은 진지한 영적 묵상을 통해 세상을 향한 신의 소명을 발견했다. 여기에 기독교 문화의 진정한 방향성이 있다. 성경은 타락한 세상의 실상에 대해 정직하게 증언하며 비판한다. 따라서 기독교 문화는 시대 문화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그 안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의 아픔과 고민을 담아야 한다. 우리는 정답이 아닌 질문을 노래하고 “승전가만큼이나 애가도 절실하다.” 팀 휴즈(Tim Hughes)는 다음과 같이 요청한다. “예수님을 향한 경배와 사모함이 우리를 거리의 고통받는 자들에게로 이끌지 않는다면, 이것은 진정 방종이다.”[3]

아일랜드 출신 신학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는 그의 저서 『하나님 백성의 선교』에서 ‘선교’(mission)는 그 언어적 의미가 내포하듯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밖으로 향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선교’라는 단어는 종종 ‘선교지’라는 개념과 함께 사용된다. … 그러나 삶의 남은 부분은 어떠한가? 세계의 남은 부분(일의 세계, 공적 영역, 사업, 교육, 정치, 의료, 세계 등)은 어떠한가? 그 세계는 어떤 점에서 하나님 백성의 선교무대인가? 그러므로 ‘온 세상’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온갖 종류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지리적이지만 또한 생태적이며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4]

이 말처럼 그리스도인의 선교적 소명의 주 무대는 교회 안이 아니라 밖이다. U2의 멤버들은 초창기에는 샬롬 공동체의 순수성에 몰입했고, 그 폐쇄적 이원론으로 인해 공동체와 결별했다. 이것은 오늘날 복음주의 청년 공동체들의 가능성과 한계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명이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야 함을 깨달았다. 그곳 역시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내어주신 ‘세상’(요 3:16)이다. 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바라보는 모든 곳에서 창조주의 임재를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특정 종교의 한 부분이 아닙니다. 나에게 신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곳을 채우는 그분의 사랑입니다.”[5]

초창기에 록큰롤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했던 더블린의 소년들은 이 양자의 긴장으로 고민했고 마침내 조화로운 길을 찾아 갔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 안에 자신들이 발견한 영적인 가치와 세상을 향한 소명을 담아냈다. U2의 음악과 삶의 여정은 세속 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신의 소명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오늘의 기독청년들에게도 좋은 모범이 되어줄 것이다.

이제 U2는 그들이 비판하고 거부했던 주류의 한 복판에 있다. 음악 평론가 소승근의 평가는 U2의 다음 발걸음을 위한 매우 중요한 질문을 제공한다.

50대에 접어든 멤버들의 관록과 포용력 그리고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가 그들의 음악에서 뿜어져 나지만 얼핏 타인들에게 훈계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위험한 계몽성도 있다. … 보노의 정치적 활동 때문인지 어느새 U2의 음악도 그들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권력’이 되었다.[6]

U2 역시 이제 이러한 자신들의 위치를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주류를 비판하는 주류” 밴드이며,[7] 자기의 유명세와 힘을 소외된 자들과 공존하는 평화를 위해 사용하는 법을 터득해 갔다. U2는 지금도 사랑의 가치와 이상향을 추구하는 순례를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1] Bono and Assayas Michk, Bono (New York and London: Penguine Books, 2006), 204.

[2] Jason Boyett, Spiritual Journeys: How Faith Has Influenced Twelve Music Icons (Lake Mary, FL: Relevant Books, 2003), 241-242.

[3] 팀 휴즈, 『열정의 예배자』, 홍순원 옮김(서울: 조이 선교회, 2005), 31.

[4] 크리스토퍼 라이트, 『하나님 백성의 선교』, 한화룡 옮김(서울: IVP, 2012), 23-24.

[5] Susan Blank, Bono in His Own Words (London: Omnibus Press, 1997). 29.

[6] 소승근, “No Line On The Horizon”, 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0076&bigcateidx=1&subcateidx=2&view_tp=1 (2009/03).

[7] 신현준, 『얼트 문화와 록음악』 (서울: 한나래, 1996),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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