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제69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관료주의와 복지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인간 존엄성 훼손의 실태를 고발하면서 묵직한 감동과 울림을 주었다면, <미안해요, 리키>는 첨단 과학기술과 풍요와 행복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협력으로 탄생한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임시직 위주로 돌아가는 경제), 그리고 그 안에서 소외되는 노동자들의 척박한 현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낸다.(본문 중)

김지혜(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

감독: 켄 로치, 주연: 크리스 히친, 데비 허니우드

2019.12.19. 개봉, 101분, 12세 이상 관람가

 

지난 14일 새벽, 경북의 한 고속도로에서 차량 연쇄 추돌 사고가 있었다. 그 사고로 7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화물차 등 차량 8대가 전소되고 수십 대가 파손됐다. 며칠이 지난 후에 다시 그 사고 관련 후속 기사를 보게 되었다. 심각한 피해 규모에 관한 기사도 아니었고, ‘블랙 아이스’로 추정되는 사고 원인을 심층적으로 다룬 기사도 아니었다. 전소된 차량 중 하나가 2,000여 개의 상품을 실은 택배 차량이었다는 소식이었다. 적잖은 수량의 택배 물품들이 불에 타버리면서, 소실된 물품에 대해 보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생명을 건지고 치료 중이라던 택배 차량 운전사에 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이 없었다.[1] 왜 기사는 그 부분을 다루지 않았을까?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지점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리키(크리스 히친)가 택배회사 PDA에서 면접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2008년 영국의 노던록 은행이 파산하면서, 실업자가 된 그는 각종 건설 현장을 다니며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이제는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임한 면접에서, 관리자 멀로니(로스 브루스터)는 리키에게 “당신은 우리와 ‘함께’ 일하는 것”이라며 리키가 온전히 스스로 책임지는 자영업자임을 강조한다. 2년만 열심히 일하면 전셋집을 탈출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리키는 아내 애비의 차를 팔아 고가의 택배 차량을 구입하고 배달원 일을 시작하게 된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첫날이라 우왕좌왕하기도 하지만, 친절하게, 그리고 열심히 택배를 배송하던 리키는 잠시 택배 물품을 전달하고 오는 사이에 주차 딱지를 떼이고 만다. 2분 이상 움직임이 없으면 배송추적 기계가 ‘삑삑’ 소리를 내고, 정해진 시간 내에 모든 물품을 전달하도록 독촉한다. 새벽에 출근해 주 6일, 하루 14시간씩 일하지만, 식사를 할 시간도 화장실에 갈 여유도 없다. 모든 것이 리키에게 달려 있다는 말처럼, 물품이 분실되거나 파손되면 변상은 당연히 그의 몫이다. 어떤 상황이든 한두 시간이라도 자리를 비우려면 대체할 배송 기사를 구하거나 벌금을 내야 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페널티가 쌓여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고생해서 버는 돈은 200만 원 남짓. 벌금이나 차량 수리비를 제하면 더 줄어든다. 택배 차량 구할 여력이 없는 이는 하청이나 차량 대여 등의 비용이 들므로 더더욱 손에 쥐는 수입이 적다.

애비(데비 허니우드)는 요양보호사다. 노인, 치매 환자,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돌보느라 하루 14시간 가까이 일한다. 제 가족을 대하는 것처럼 정성과 애정을 다하고, 정해진 시간을 초과해서 돌보기도 한다. 그러나 건마다 임금이 산정되기 때문에 추가 근무수당은 받을 수 없다. 리키의 새 일자리 때문에 차를 팔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했더니 집집마다 제시간에 맞춰 방문하기가 너무도 어렵다.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고 주말엔 가족과 함께 지내려 하지만, 환자에게 호출이 오면 대체 인력이 없으니 그것도 쉽지 않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리키의 아내 애비.(출처: 영화사 진진)

 

리키와 애비는 몸이 부서져라 일하지만 빚은 늘고 가정의 평화는 깨어진다. 고강도 업무의 배송 노선을 맡으면서 리키는 점점 기대하던 미래와 멀어지는 악순환에 빠져버린다. 지치고 힘들어하는 부모를 보며 사춘기 큰아들 세브(리스 스톤)는 엇나가기만 한다. 애비와 리키는 세브가 더 나은 삶을 위해 대학에 가기를 바라지만, 정작 세브는 사회경제적 격차를 교육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데 회의적이다. 학교에 다니면서는 등록금 빚을 갚느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졸업 후에는 변변치 않은 직장을 다니면서 현실을 잊기 위해 주말마다 술에 취할 것이 뻔하다. 그런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싶지는 않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막내딸 라이자(케이티 포록터)는 심리적으로 불안하다. 아무리 ‘노오오오력’해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변화할수록 인간은 행복해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인간 소외의 현상은 매번 다시, 익숙한 모습으로 등장하곤 한다. 오히려 더 복잡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1936년생인 켄 로치 감독은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후 은퇴를 선언했었다. <미안해요, 리키>에는 그 은퇴 선언을 번복하면서까지 꼭 해야만 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다. 2016년 제69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관료주의와 복지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인간 존엄성 훼손의 실태를 고발하면서 묵직한 감동과 울림을 주었다면, <미안해요, 리키>는 첨단 과학기술과 풍요와 행복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협력으로 탄생한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임시직 위주로 돌아가는 경제), 그리고 그 안에서 소외되는 노동자들의 척박한 현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낸다. 이번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기생충>과 함께 경쟁 부문에 올랐고, 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전석 매진된 화제작이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스틸컷

 

긱 워커(GIG worker)는 임시적인 필요에 따라 단기 계약을 맺고 시간제로 일하는 자영업자나 프리랜서를 말한다. 단순 용역과 다른 점은 이들이 가진 전문성이다. 그러나 업무의 자율성과 독립성, 업무 시간의 유연성이 보장된다는 달콤한 말 이면에는, 고용 안정이나 최저 수준의 처우, 보험, 안전과 휴식 등의 권리도 보장받기 어려운 현실이 있다. 한국의 상황도 별로 다르지 않다. 2017년 서울노동권익센터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4시간이다. 주 6일 근무로도 매일 12시간 넘게 일하는 꼴이다. 최근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나 산재가 늘어나는 이유다. 배달 대행 기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더욱 빨리’, ‘더욱 저렴하게’, ‘더욱 편리하게’를 외치는 소비자들과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가 사이에서 택배나 요식업 배달 기사들은 임금 대신 건당 몇백 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가 적다 보니 최저임금 이상의 소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고 사고 등에 대한 피해도 고스란히 자신이 떠안아야 한다. 요양보호사의 노동 환경 역시 가혹하다. 법적으로 2.5명을 담당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9~10명까지 맡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면서도 돌봄에 대한 책임은 요양보호사 개인이 오롯이 져야 한다. 비단 이들뿐일까.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읊조리는 리키와 오버랩되는 것은 배송 추적 기계를 대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이 기계가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는지 결정하니까”(리키). “이 바코드 기계를 행복하게 하세요”(멀로니). 기술의 힘을 얻은 자본, 그리고 그에 편승하는 사람들은 더욱 냉혹하게 누군가의 고단한 삶을 흔들고 있다. ‘블루칼라의 시인’이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켄 로치 감독은 이들을 대변하며 현대사회가 잃어버린 누군가들의 행복을 묻는다.

무엇이 행복 대신 소외를 야기하고, 사람을 끝없는 빈곤으로 추락하게 하는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끝없는 악순환의 경로를 질주하는 리키를 멈춰 세우고, 그의 가족 모두를 행복하게 웃음 짓게 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원제는 “Sorry, We missed you”(미안해요, 우리가 당신을 놓쳤군요)이다. 영국에서 택배 수신인이 부재중일 때 남기는 쪽지에 적힌 문구다. 이 문구가 적힌 쪽지는 영화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사실 수신인이 부재해서 택배를 받지 못하는 것은 택배 기사가 미안해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약자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영화의 제목이 말하는 듯하다. 예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듯이 우리 주변의 수많은 리키와 애비들이 있으며, 그들이 우리의 이웃이고 우리가 ‘놓친’(missed) 사람들이므로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미안해 할 일이라는 메시지가 영화와 제목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성탄의 계절이다. 이천 년 전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 그리스도 역시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모두가 놓쳐 버린 이들 중 하나였다. 그분을 따르는 제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시선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우리는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며, 그분이 다시 오실 때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기쁨으로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날을 위해 주의 오실 길을 곧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세상이 놓치고 있는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평강의 왕이요 사랑의 왕이신 그분의 희망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2]


[1] 정혜민·김정현, “CJ대한통운, ‘블랙 아이스’로 소실 상품 “고객 보상 조치할 것”, <뉴스1> [게시 2019.12.19.] http://news1.kr/articles/?3797743

[2] 켄 로치, 69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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