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와 대화를 시작할 때, 힘들어하는 문제가 무엇이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하거나 뭔가 조심스러워하는 눈치가 보이면, “괜찮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셔도 상관없어요. 이야기가 두서없고 앞뒤가  맞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얘기해보세요”라고 안심시키며 격려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대개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화의 첫 부분에서 교인이 말을 안 한다고 목회자가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 것은 썩 바람직하지 못하다.(본문 중)

최의헌(목사, 연세로뎀정신과 원장)

 

이번 글에서는 몇 가지 병리적인 증상에 대해 질문하는 법과 정신과 진료를 의뢰할 때 유념해야 할 점을 안내하겠다. 지난번 글에서 지금 겪는 어려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지금의 현상 자체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과정을 고려하는 것이다. 오늘은 내담자의 어려움을 들으면서 어떻게 추가 질문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드릴 텐데, 모든 내용을 다룰 수는 없기에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질문과, 자주 나타나는 문제들을 위주로 언급할 것이다.

정신질환은 심각성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수준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수준은 ‘정신증’ 수준으로서 현실성이 결여되는 단계이다. 세 번째 수준은 ‘신경증’ 수준으로서 보통의 사람들이 종종 겪는 수준의 어려움 단계이다. 두 번째 수준은 첫 번째와 세 번째의 중간 수준으로서 “경계”(borderline)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질환으로는 성격장애, 우울증, 강박증, 식이장애가 있다. 정신증 증상은 보통 사람들은 거의 경험한 적이 없는 증상들이다. 대표적으로 환각과 망상이 있다. 신경증 증상은 보통의 사람이 다 한 번쯤은 경험해본 증상들이다. 가벼운 우울감, 불안감, 신체 증상 등이다. 중간 단계는 일견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본 것 같지만, 그 정도를 제대로 알아보면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수준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있다.

내담자와 대화를 시작할 때, 힘들어하는 문제가 무엇이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하거나 뭔가 조심스러워하는 눈치가 보이면, “괜찮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셔도 상관없어요. 이야기가 두서없고 앞뒤가  맞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얘기해보세요”라고 안심시키며 격려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대개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화의 첫 부분에서 교인이 말을 안 한다고 목회자가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 것은 썩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 안 되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웬만하면 내담자가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해나가도록 자발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래야 보다 정확하게 사안을 파악할 수 있다.

 

 

첫 번째 수준, 즉 정신증에 관해 질문하는 법을 먼저 이야기해보자. 내담자가 현재의 어려움이나 어려움이 시작된 후의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뭔가 비현실적이거나, 지나친 의심과 경계의 태도가 보이거나, 무언가에 지배된 듯한 뉘앙스를 준다면, 목회자는 그 교인에게 정신증의 특성이 있지 않을까 추정을 하여 대화의 흐름에 어울리는 몇 가지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환각의 경우는 “남들이 못 듣는 나만 듣는 소리가 있습니까?”, “주변에 사람이 없는데 들리는 목소리가 있습니까?”, “나에게만 보이는 어떤 이미지나 대상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자기 주변이 무언가 미묘한 영향력에 의해 움직인다고 느끼는 비현실적인 생각과 느낌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관계사고, 피해사고, 과대사고와 관련된 질문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혹시 내 주변에서 나를 중심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그것이 나에게 위협적입니까,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주변에서 나에 대해 무언가 알아채고 수군거린다는 느낌을 받습니까?”,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기 위해 CCTV나 도청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누군가 내 생각과 감정을 읽어 내거나 나를 조종하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정신증을 겪는 교인은 자기가 보고 듣는 게 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을 별로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고 싶었던 동화 주인공처럼, 자신이 뭔가 특이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맞장구쳐줄 사람을 만나면 안심할 수 있다고 여기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두 번째 수준과 세 번째 수준의 경우는 현상에 관한 질문은 비슷한데, 심각성 정도를 파악하면서 수준의 차이를 구별한다. 우울감과 불안감에 대한 질문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평소에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매사 의욕이 없고 그런가요?” “사소한 일에도 불안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겠고 초조하거나, 조급하고 안 좋은 미래나 결과에 대한 걱정이 심한가요?” 또는 내담자가 보여주는 모습을 언급하면서 관련된 이야기를 더 하도록 격려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의욕이 없고 우울해 보이시네요. 지금 어떤 마음인지 좀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라고 할 수 있다. 우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자살에 대한 질문이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그렇게 힘든 사람들은 간혹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혹시 자살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하나요?” 불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강박사고가 같이 있는지 묻는 것이 좋다. “혹시 원치 않는 생각이 억지로 머릿속에 들어오기도 하나요? 생각을 떨치려고 해도 쑤시고 들어오는 생각이 있나요?” 이와 같은 질문들은 두 번째 수준과 세 번째 수준에 모두 해당하는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을 한 다음에는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수준을 구분하기 위한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러한 증상들이 극단성을 갖는지 질문하는 것이다. 극단성의 두 가지 기준은 두 가지다. 첫째로, 모든 상황에서 비슷하게 문제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 그러한지를 판별하기 위해 “어려운 상황에서만 그런 건가요? 아니면 매사에 그런가요?” 혹은, “어느 시점에서만 그런 건가요? 아니면 계속 그런가요?”라고 질문한다. 둘째로, 문제가 항상 극적이다. 극적이란 것은 중간 상태가 없다는 말이다. 점수로 따지면 30점, 50점 이런 정도가 아니라 0점이다. 극적인지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중간중간 조금 괜찮아지기도 하나요?” 혹은 “조금 나아진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항상 바닥을 치는 셈인가요?”라고 질문한다.

 

 

이러한 질문들은 훈수보다는 추임새에 가까워야 한다. 훈수는 ‘내가’ 상대에게 무슨 말을 해주는 것이라면, 추임새는 ‘상대가’ 무슨 말이든 쉽게 하도록 돕는 것이다. 즉, 질문의 목적이 내가 내담자를 판단하고자 하는 취지가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자기 어려움을 포괄적으로 표현하고, 드러나지 않은 어려움도 스스로 꼼꼼히 확인하여 보여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내담자의 자발성을 유도하고 유지하는 것은 대화 초기에서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중요하다. 자발성이 치료의 동기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교인과 대화한 결과 정신과 진료와 약물치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우선은 교인에게 이러한 문제로 정신과 진료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지, 있으면 어떠했는지 묻는 것이 좋다. 어떤 이들은 진료와 치료약물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 목회자가 그의 부정적인 경험을 듣고 공감해주면 많은 경우 치료에 협조적인 태도로 돌아서게 된다.

목회자는 그냥 ‘병원에 가 보라’고 하기보다는 특정 병원이나 의사를 소개하는 것이 좋다. 그럴 때 종종 교인들은 그 의사가 목사님과 아주 친밀한 관계라고 짐작하거나, 의사가 장시간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문제를 충분히 들어줄 것이며 자신을 특별히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데, 의사의 진료가 항상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의사를 소개하고 진료를 권하면서 이런 말을 해 주는 것이 좋다.

“제가 소개했다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의사 선생님은 제 소개를 마음으로는 생각하더라도 다른 분들과 동일하게 진료할 거예요. 제가 알기로는 정신과 진료 시간이 마냥 길지는 않아요. 처음에 못다 한 이야기를 다음 진료 시간에 계속 이야기 할 수 있을 테니 처음에 모든 것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실 필요는 없어요. 다른 내·외과 진료가 딱 의료적인 부분에만 초첨을 맞추는 것처럼, 정신과 진료도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아 두세요.”

이렇게 사전 안내를 주면 현실적인 진료 환경을 보다 쉽게 수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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