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기술이 밝힌 큰 성과 중 하나는, 이 지구상에서 인간만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인간과 다른 생명체, 나아가 자연환경이 서로 깊이 연결되어 거대한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를 생태계 혹은 더 크게 생태권이라 부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른 피조물을 희생시키고 인간만 잘 살게 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햇빛, 공기, 물, 천연자원과 같은 무생물이든, 식물, 동물, 심지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 같은 미물조차도 다 서로를 필요로 하고 공존하면서 살아가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본문 중)
성영은(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사람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구에는 오랜만에 휴식이 찾아왔다. 쉴 새 없이 오고 가던 항공기와 자동차, 24시간 쉬지 않고 돌던 공장이 멈춰 선 덕분이다. 나라마다 미세 먼지가 줄어들고, 맑은 하늘 덕분에 잘 보이지 않던 별들이 나타났다는 얘기도 들린다. 심각한 대기오염을 겪던 인도에서도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히말라야 산들이 보인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개나리, 벚꽃, 목련이 피고 진 뒤로 이제는 철쭉이나 조팝 같은 봄꽃들이 언제 이렇게 선명하게 제 색을 드러내며 핀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산이나 숲의 출입이 줄어들어 식물들뿐 아니라 동물들도 조용히 쉴 수 있게 되었다. 언제 서식지를 잃고 쫓겨날지, 또 언제 잡아먹힐지 몰라 불안에 떨던 야생동물들에게도 잠깐의 휴식이 찾아왔다. 가축들도 거의 해마다 조류독감(AI)이나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로 집단 매장되던 수난을 잠깐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줄고 공원이나 식당이 문을 닫아, 도시들도 오랜만에 소음과 불빛 없는 조용한 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으로서는 지역에 따라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만에 찾아온 달콤한 휴식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생명체도 아닌 코로나바이러스 덕분에 지구가 잠시 숨을 돌리게 된 것이다. 어느 환경 운동가들도 또 생태학자들도 하지 못한 일을 이 코로나바이러스가 해냈다. 그것도 전 세계적 규모로 말이다. 지인의 말대로 사람이 멈추니 자연이 숨을 쉰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원인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하지만 박쥐와 같은 야생동물과의 접촉이 직접적인 감염의 시작이었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아프리카 침팬지와의 접촉으로 시작되었다는 에이즈, 그리고 비슷한 경로로 시작된 에볼라, 사스, 메르스, 철새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조류독감,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20세기 후반 시작된 바이러스성 전염병들의 원인은 대체로 다 비슷하다. 그러나 좀 더 큰 틀에서 보면 각종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야생 동물이 서식지를 잃으면서부터, 원래는 야생동물 안에 서는 별문제 없이 살아가던 바이러스들이 생존을 위해 인간 세계로 눈을 돌리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과 처절한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동물이나 식물, 나아가 바이러스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물들은 과학기술로 무장한 인간을 상대로 싸워 이기기가 어렵다.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다. 뒤늦게 산업화에 뛰어든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개발과 환경오염, 그로 인한 생태계 파괴의 결과는 처참하다. 이미 개발에서 앞선 소위 선진국이라는 미국이나 유럽도 겉과 달리 그 내막을 보면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의 번영과 풍요는 결국 다른 모든 피조물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자로서 이런 사실을 알고 이 세상을 보면 피조물의 탄식(신음)과 고통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롬 8:22). 우리와 마찬가지로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롬 8:19).
물론, 지금 당장 할 일은 수많은 사람들을 극심한 고통에 빠트리고 심지어 죽게 하는 이 무서운 코로나19 사태를 이겨내는 것이다. 전례 없이 대다수의 국가들에서 이 사태를 이기기 위해 정치, 외교, 의료, 과학기술 등 민관 모든 분야가 다 힘을 합치고, 또 인류 대부분이 일상을 멈추고 협력하고 있으니, 이 일은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해결될 것이다. 백신이나 항바이러스제도 전 세계가 협력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개발될 것이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이 사태를 이겨낸 그 이후, 즉,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각종 예측과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아직도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가장 큰 관심사가 경제적 성장과 물질적 풍요이라는 데는 마음이 착잡하다. 대다수가 어떻게 하면 코로나 때문에 멈추었던 경제를 다시 살리고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에 초미의 관심을 보인다. 그러니 다시 이전처럼 무생물이든 생명체든 이 지구상에 있는 피조물들이 인간의 욕망을 위해 혹사당하고 희생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필자는 이 짧은 글에서 경제적 성장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전과 다른 대안은 없을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신자들 역시 이번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전 지구적 재난을 생생히 목격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와 우리에게 맡기신 이 땅과 피조물들에 대한 책임을 아는 우리로서는 이 사태를 통해 세상과 다른 것을 보고, 세상과 다른 대안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다가올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각자의 영역에서 신자로서의 소명을 인식하며 능동적 신앙의 삶을 사는 길을 찾고 논의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현대 과학기술이 밝힌 큰 성과 중 하나는, 이 지구상에서 인간만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인간과 다른 생명체, 나아가 자연환경이 서로 깊이 연결되어 거대한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를 생태계 혹은 더 크게 생태권이라 부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른 피조물을 희생시키고 인간만 잘 살게 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햇빛, 공기, 물, 천연자원과 같은 무생물이든, 식물, 동물, 심지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 같은 미물조차도 다 서로를 필요로 하고 공존하면서 살아가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특별히 인간에게는 이 모든 피조물을 지키고 돌보는 역할을 맡기셨다(창 1:26, 28, 2:15). 이번 일을 통해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우리에게 맡기신 막중한 책임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우리 인간이 잘 살겠다고 다른 피조물들을 희생시킴으로써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기후 변화, 미세 먼지, 미세 플라스틱 등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의 결과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이번 바이러스 사태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 중 모처럼 찾아온 생태계의 휴식을 보면서, 우리는 다같이 우리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돌아보면서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 사태로, 어느 생태학자가 제안한 것처럼, 이런 바이러스의 공격은 시시때때로 있을 것인데, 그럴 때마다 전력질주하던 경제를 멈추는 것이 더 나은지 좀 천천히 가더라도 생태계를 보존하면서 가는 것 이 더 나은지 계산해 볼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에게 맡겨진 피조물을 돌볼 책임과 의무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그것이 피조물이 우리 인간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이자, 하나님이 이번에 이 코로나 사태를 허락하신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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