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그루밍 성폭력에 적용될 수 있는 법률 중 하나인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7조 제5항은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아동·청소년을 간음하거나 아동·청소년을 추행한 자”를 처벌한다. 그루밍을 법률 용어로 바꾸면 ‘위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위력’의 정의와 ‘위력을 행사하는 방법’에 대하여, 판례는 “위력이라 함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으므로 폭행·협박뿐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라고 한다.(본문 중)
김승혜·목지선 (변호사, 기독법률가회 여성위원회)
그루밍 성폭력 구속영장 기각 결정에 대하여
2020년 4월 14일, 인천의 한 교회의 목사(이하 ‘김 목사’라고 한다)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김 목사는 장기간에 걸쳐 자신이 지도하던 교회 여학생들 4명에 대하여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간음 등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으며, 김 목사의 이러한 행위는 ‘그루밍 성폭력’으로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법원은 김 목사에 대한 구속 영장을 기각하였는데, 그 이유는 “범죄 사실에 의문”이 있고,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1) 물론 구속 영장 기각 결정이 피의자의 무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법원이 구속 영장을 기각한 이유 중 “방어권 행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방어권 보장이 헌법상 권리라는 점에서 일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범죄 사실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판단한 부분은 법원이 그루밍 성폭력 범죄의 특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면에서 큰 아쉬움을 남긴다.
그루밍 성폭력의 의미와 단계적 진행
‘그루밍 성폭력’이란, “가해자가 신뢰 및 안정감을 바탕으로 피해자를 길들여 상대의 심리를 이용해 성폭력을 행사하고, 상대를 통제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2) 그루밍 성폭력 가해자는 단계적으로 피해자의 의사를 점령해 간다. 그루밍 성폭력 가해자의 전형적인 수법을 보자면, 가해자는 주로 고립된 아동·청소년에 대한 범행을 계획한다. 그 후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모으며 피해자의 신뢰를 얻는다. 그리고 선물이나 피해자가 받지 못했던 애정 등을 제공하면서, 자신과 피해자와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가르침, 여행 등의 명목으로 피해자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킨 뒤, 관계를 성적인 것으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가해자는 비밀을 유지시키기 위해 협박하는 등, 피해자를 통제한다.3)
이처럼 그루밍 성폭력은 피해자를 성 착취 수단으로 만들기 위해,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간교한 범죄다. 또한 범죄가 1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 성 착취가 발생하며, 피해자의 신뢰를 이용한 학대이므로 피해자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준다.4)
그루밍 성폭력의 심각성에 비해, 법원이 “범죄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라고 판단해 온 이유
현행법상 그루밍 성폭력에 적용될 수 있는 법률 중 하나인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7조 제5항은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아동·청소년을 간음하거나 아동·청소년을 추행한 자”를 처벌한다. 그루밍을 법률 용어로 바꾸면 ‘위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위력’의 정의와 ‘위력을 행사하는 방법’에 대하여, 판례는 “위력이라 함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으므로 폭행·협박뿐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라고 한다.5)
그루밍 성폭력은 가해자가 장기간 피해자의 정신을 지배하면서 이뤄지는 성폭력이므로 그 피해는 일반 성폭력과 다름없이 매우 심각하다. 이러한 피해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법원에서 “범죄 사실이 증명되었다”라고 판단하는 데 인색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위력’ 즉, “가해자의 피해자에 대한 자유의사 제압” 여부가 증명되었다고 보는 데 인색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아니라, 동의하에 이뤄진 성관계라고 보아온 경향이 있었다. 이는 그루밍 성폭력 가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비판 없이 수용한 입장으로서, 법원이 그루밍 성폭력 사건에서 “위력이 있었다”는 점을 거의 인정하지 않아 온 이유는 다소 거부하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 성관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래도 피해자가 어느 정도는 동의하였다는 그릇된 전제’6)에서 판결을 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원의 태도는 그루밍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행사해 온 위력에 대하여 과소평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루밍 성폭력 가해자는 피해자가 동의(또는 복종)하도록 피해자를 길들여 왔다. 그리하여 그루밍 성폭력 당시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위력 상태가 조성된 것이다. 즉,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는 가해자의 범죄에 동의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간교한 수법에 의하여 오랜 시간 자유의사를 제압” 당한 상태에서 성폭력을 당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법원이 피해자 진술로 성관계 사실을 인정하는 데 인색한 경향이 있어 왔다는 점이다. 그루밍 성폭력 가해자들의 전형적인 변명은 성관계 증거가 있냐는 것이다. 그루밍 성폭력은 범죄 특성상 범죄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 피해자가 이것이 범죄임을 인지한 때는 범행 시로부터 시간이 흘러 피해자 진술 외의 다른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진술이라는 증거는 명백하다. 또한 섬세한 감수성으로 피해자 진술을 듣는 것이 마땅하다.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와의 권력관계에서 잃을 것이 많은 약한 존재인 경우가 많은데도, 피해자가 이를 감수하면서 피해 진술을 하기 때문이다.
그루밍 성폭력에 대한 2014년 판례의 태도
“21세기 가장 폭력적인 판결”7)이라고까지 불릴 정도인 사건인 소위 ‘연예 기획사 사장’ 사건은 그루밍 성폭력에 대한 이해 부족이 가져온 최악의 결과물이다. 이는 연예인을 시켜준다며 접근하여, 기혼 상태에서 자신보다 27세 어린 중학생을 강간, 출산케 한 40대 남성의 그루밍 성폭력 사건이었다. 대법원은 2014년 가해자에 대한 1심(12년 형)과 2심(9년 형) 판단을 모두 뒤집고 무죄 취지의 파기 환송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보낸 우호적인 서신 등이 이유였다. 그러나 이 판결은 피고인이 경제적, 정서적으로 취약한 15살의 중학생에게 지속적으로 서신 쓰기를 강요했고, 피해자는 범죄 피해와 그루밍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는 점을 간과한 매우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최근의 긍정적인 변화
- 의제 강간8) 연령을 상향하는 형법 개정안(‘위력’이 없어도 유죄)
그루밍 성폭력의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법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 예로, 의제 강간 연령을 13세 미만에서 16세 미만으로 상향하는 형법 개정안이 2020. 4. 29.에 통과되었다. 즉, 개정법은 범행 당시 만 16세 미만의 피해자에 대한 간음은, 설사 그루밍으로 인해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처럼 보이더라도(가해자가 ‘위력’이 없다고 주장하더라도) 형법상 강간죄로 처벌한다.
-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긍정한 안희정 사건
법원은 2019년도에 안희정 전 충남 도지사 사건9)에서 성 인지 감수성을 적극 도입하여,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등 피해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였다. 성 인지 감수성이란, ‘피해자가 처한 상황과 맥락에서 사건을 이해하는 감수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10) 피고인 안희정은 1심에서 전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2심에서는 일부 강제 추행 행위를 제외하고 나머지 행위 전부에 대하여 징역 3년 6월의 유죄 판단을 받았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성 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라고 적시하며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에 대해,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고 판시한 것이다. 이는 그루밍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를 판단할 때,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상황(예로,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진술했을 때 사회적으로 잃을 것이 많은 경우)을 고려하여 세심히 판단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교회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교회 스스로가 주도하는 그루밍 성폭력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교회 구조의 특성상, 신도들에 대한 교육에 앞서 목회자들에 대한 교육을 우선하는 것이 급선무이다.11) 구조적으로, 교회에서는 목회자 또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권위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건강하지 못한 목회자 또는 교회 지도자들은 마치 본인이 신인 것처럼 ‘신적 권위’를 주장하는 때도 있으며, 그러한 경우 신도들 역시 목회자 또는 교회 지도자들의 언행을 ‘하나님의 요청’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구조에서 ‘그루밍’, 즉 ‘자유의사 제압’은 교회 바깥의 사회에 비해 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목회자들에 대한 그루밍 성폭력 예방 교육을 우선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12)
아울러, 인간의 죄성을 인정하고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에, 처음에는 선하고 거룩한 의도로 친밀해진다고 하더라도 어느새 그루밍이라는 탈선을 하기 쉽다. 따라서 교회는 인간의 죄성을 인정하고 그루밍을 막기 위해 성폭력 범행 발생 이전에 이루어지는 행위인 그루밍 행위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인지해야 한다.
1) https://news.v.daum.net/v/20200415113422221
2)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그루밍(Grooming, 길들이기) 판례 분석, 한숙희, 정희진, 조아미, 청소년문화포럼, 2020
3) 정신의학자 마이클 웰너(Michael Welner) 의 설명에 따름(http://www.oprah.com/oprahshow/child-sexual-abuse-6-stages-of-grooming/all)
4)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5672
5) 대법원 2005. 7. 29 선고 2004도5868 판결
6) 전통적인 성 개념에 입각한 잘못된 전제
7) 이현숙,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 특성, 그루밍(grooming: 길들이기), 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청소녀 성폭력사건 토론회 자료집』, 2017.
8) 강간과 동일하게 간주되는 성행위(편집자 주).
9) 대법원 2019. 9. 9. 선고 2019도2562 판결
10) 대법원은 2018년 대학교수가 학생을 성희롱한 사건에서,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 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라고 판시하면서, 성폭력 사건을 판단할 때 ‘성 인지 감수성’이 필요함을 밝혔다.
11)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5856
12)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5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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