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학생의 재정 문제는 전적으로 노회의 책임이라고 여긴다. 노회는 신학생들에게 충분한 재정 지원을 함으로써, 그들이 돈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중략)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스코틀랜드 특사로 참석해서 활약하였던 조지 길레스피가 커칼디 노회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신학을 공부하였다는 사실에서 신학생을 위촉한 노회가 그 신학생의 학비를 부담하는 것이 당시 장로회 교회의 원칙이었음을 알 수 있다.(본문 중)

김중락(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말씀동산교회 장로)

 

열정만으로는 안 된다

목회자는 교회의 지도자이다. 목회자가 되려는 이들에게는 내적 소명이 있어야 하고, 교회를 이끌 만한 능력과 인품, 즉 외적 소명도 있어야 한다. 스코틀랜드의 『제1 치리서』는 “경건하고 학식 있는 자”를 목회자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장로회 교회정부』는 목회자가 되려는 이에게 “삶의 거룩”, “학식”, 그리고 “소명”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스코틀랜드의 『제2 치리서』는 목회자에게 “말씀 봉사”와 회중에 대한 “감독”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이처럼 교회에서 중요한 이들이 목회자들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러한 지도자를 세워 왔는지, 그리고 세우고 있는지 묻는다면 그 대답은 너무나 명백하다.

지난 세기 중후반의 한국교회의 상황은 오늘날과 너무나 달랐다. 목회의 길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겠다는 각오 없이는 나서기 어려웠다. 목회자는 절대적으로 모자랐다. 이 상황에서 양극단에 속한 이들이 목회자로 유입되었다. 한 그룹은 정말 헌신되고 유능한 이들로 쉬운 길을 두고 목회라는 어려운 길을 자처한 이들이고, 다른 그룹은 여러 가지 경쟁에서 실패하여 목회 외에는 다른 길을 찾지 못한 이들이다. 통계는 없지만 경험적으로 나는 후자의 그룹이 절대적으로 많다고 믿는다. 연령상 이들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최고 지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각 교단 노회에는 목회의 길을 원하는 이들을 스크린하는 장치가 있었지만 이는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목회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거르고 말고 할 처지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오늘날은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그리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목회자가 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신학교 수는 넘쳐나고 그들은 학생 충원에 혈안이 되어 있다. 당회와 노회의 추천이 없어도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학 교육도 단기 속성 과정이 있으며, 통신 교육도 있어 빠르면 1~2년 내에 마칠 수도 있고, 훈련 과정이 없어도 목사 안수를 주는 교단도 있다고 한다. 교단이 수십 개로 분열되어 있으니 누가 제대로 된 훈련 과정을 거쳤는지 점검할 방법도 없다.

이러한 무분별한 목회자 양성 과정과 무너진 스크린 제도의 결과는 참혹하다. 성경을 모르는 목사도 있고, 논리적으로 설교를 조직하지 못하는 목사도 있으며, 사명감이 없다 보니 물욕만 채우고자 하는 목사도 있다. 목사가 되지 말아야 하는 이들이 목사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이 야기하는 문제는 굳이 열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난맥상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unsplash.

 

당회, 노회의 스크린이 필수적이다

장로회 교회는 좋은 목회 후보자를 찾아내는 좋은 제도를 가지고 있다. 신학을 원하는 이는 소속 교회의 당회 추천을 받아야 한다. 당회원들은 그를 잘 아는 이들이니 그가 목회자로 적합한지 여부를 잘 알고 있다. 당회는 그가 목회자로 적합하다고 판단하면 노회로 이관한다. 노회는 노회 내 필요한 인원을 고려하여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고, 그의 훈련을 교단의 신학교에 위탁한다. 신학교 재학 중 노회는 그의 학업에 대해 감독하고 재정을 지원한다. 그리고 학업이 끝나면 노회는 그를 다시 검증하여, 노회 소속 목회자로 세운다. 좋은 목회자를 만들기 위해 삼중 사중의 거름 장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제도에서도 노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장로회 교회에서 이러한 좋은 제도는 유명무실이다. 한 단계도 제대로 지켜지는 곳이 없다. 우선 당회 단계를 살펴보자. 한 회중에서 장로들은 교인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다. 장로들은 목회자가 되고자 하는 이를 어린 시절부터 잘 아는 이들일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바른 판단을 한다면 첫 단계에서 대부분 준비된 이들만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회에서는 거의 100% 추천이 이루어진다. 당회는 무자격자가 있어도 지원자나 그 부모와의 안면 때문에, 또는 그들이 노하여 교회를 떠날까 봐 우려하여 그를 추천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첫 단계에서부터 우리는 실패해 왔다.

다음 단계는 노회의 검증이다. 노회는 지원자의 성경 이해, 목회자로서의 자질과 지능, 그리고 열정이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신학교를 졸업할 무렵 노회 내 사역지가 얼마나 비게 될 것인지도 고려하여 적당한 수를 선정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 노회 검증은 매우 형식적이다. 대부분의 경우 노회는 지원자가 당회의 추천을 받았다는 핑계를 대고 이를 통과시킨다. 노회가 지원하고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인가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다. 나는 아직 노회의 추천을 받지 못해 목회의 길을 포기했다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나는 영국유학 시절 PAE(Presbyterian Association of England) 교단의 한 회중에 속했는데, 그때 교인 중에는 장로회 교회의 목회자가 되고 싶어 하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이미 학자로서도 크게 성공한 인물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목회자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가 노회(노회의 이름은 밝힐 수 없다)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당시 노회가 그를 탈락시킨 이유는 그가 지금 목회자가 된다면 교만해지기 쉽다는 것이었다. 워낙 학문적으로 뛰어난 이었기에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청년의 반응이었다. 그는 노회의 결정을 존중하며, 내년에 한 번 더 지원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가 지금 어찌되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당시 그 노회의 결정과 그 청년의 반응은 내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당신은 안 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소리를 듣고 싶다. 노회가 목회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NO”를 외치지 못해 한국교회의 타락을 가져왔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신학생에 대한 재정 지원과 학업 감독도 노회의 몫이다

한국교회에서 대부분의 노회는 그들이 추천하고 위탁한 신학생에 대해 기록 이상의 관심은 없다. 그 신학생들에게 학비 문제가 없는지, 생활비는 있는지, 학업 성적은 어떠한지에 대하여는 누구도 관심이 없다. 이는 노회의 직무 유기라고밖에 할 수 없다.

많은 경우 오늘날 신학생들이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경제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은 신학대학원에 등록금도 내야 하고, 생활비도 있어야 하고, 책도 사야 한다. 결국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교회 봉사(그저 아르바이트의 다른 이름)뿐이다. 촌각을 다투어 공부를 해야 하는 이들이 경제적 이유로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교육전도사로 봉사하는 것의 순기능을 무시할 순 없다. 일종의 실습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마지막 학기 정도가 아니라 재학 중 내내 한다면 그가 제대로 된 공부를 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신학생의 재정 문제는 전적으로 노회의 책임이라고 여긴다. 노회는 신학생들에게 충분한 재정 지원을 함으로써, 그들이 돈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제2 치리서』와 『장로회 교회정부』는 특별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스코틀랜드 특사로 참석해서 활약하였던 조지 길레스피(George Gillespie)가 커칼디(Kirkaldy) 노회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신학을 공부하였다는 사실에서 신학생을 위촉한 노회가 그 신학생의 학비를 부담하는 것이 당시 장로회 교회의 원칙이었음을 알 수 있다. 노회가 전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면 그 신학생을 추천한 회중과 비용 부담을 나누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도 초창기에는 노회가 이러한 기능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회는 위탁한 신학생이 제대로 교육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 노회는 정기적으로 노회 소속 신학생들을 면담하여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주고, 매 학기마다 그들의 성적을 점검하여야 한다. 태만한 신학생에 대해서는 장학금을 중단하거나 심한 경우는 신학교 추천 자체를 철회해야 할 것이다. 노회는 신학생들이 재학 중 교회 봉사를 하고자 할 때, 노회의 허락하에서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무분별하고 노회와 무관한 교회 봉사는 중지되어야 한다.

교단 소속 신학대학원도 이러한 원칙에 협조해야 한다.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수년 전에 한국의 어느 쟁쟁한 교단의 신학대학원 학생 모집에서 지원 서류에 “노회장 추천서”가 포함되었는데 “추후 제출가능”이라는 사족이 달린 것을 본 적이 있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교단의 신학대학원은 세미너리(Seminary), 즉, 그 교단의 목사 후보생들을 위탁받아 교육하는 기관이다. 신학대학원은 고백 공동체로서 교회의 일부인 것이다. 그런 신학대학원이 노회장의 추천서를 경시하는 것은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이러고도 우리가 장로회 교회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신학교는 학점이나 학위 관리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수년을 가르친 제자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졸업생이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된다는 점을 인식하면 인정에 끌릴 일이 아니다.

신학대학원 졸업자들은 경우 소정의 의무와 목사고시를 통해 목사 안수를 받게 된다. 목사고시 역시 형식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로회 교회정부』는 노회가 주관하는 목사고시에 대해서도 엄격한 규정을 제시하고 있다. 노회는 대학에서의 전공과 성적도 파악해야 하고,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을 읽을 수 있는지, 그리고 라틴어도 일부 알고 있는지를 조사해야만 했다. 또한, 노회는 후보생이 어떤 신학 저서를 읽었는지, 정통 교리를 알고 있는지, 성경의 장소나 연대기 그리고 교회사를 알고 있는지도 조사해야 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옛 전통을 지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충분한 지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정신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

 

ⓒpixabay.

 

사역지 배분도 노회의 책임이다

오늘날 신학대학원 졸업자들은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각자가 알아서 사역지를 찾아야 한다. 그들을 신학교에 추천한 노회도 이 부분에 대해 아무런 입장이 없다. 각자도생의 냉혹한 현실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도 사역지를 찾지 못해 강제 휴식을 당하고 있는 젊은 사역자들이 많은 현실이다. 이 역시 노회의 책무 유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노회가 신학생을 추천한다는 것은 그들을 해당 노회의 사역자로 쓰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회는 해당 노회의 목회자 수급을 정확히 판단해서 적정한 수의 신학생을 추천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새로운 목회자를 구하는 회중들이 노회의 지도를 따른다는 전제하에서 실행 가능한 것이다. 지금처럼 노회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상황에서 이를 실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교단 내에서 모든 노회가 각자의 필요한 인원수만큼만 신학교에 추천한다면, 교단 전체로 보아도 수요와 공급이 적절하게 조절될 것이라 여겨진다.

중언하자면, 교회에서 목회자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좋은 목회자 없이 좋은 교회는 불가능하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어지러움은 이 부분에서 실패한 탓이다. 장로회 교회는 좋은 목회자 후보를 찾아내는 좋은 제도를 가지고 있다. 좋은 목회자를 위한 여러 단계의 장치를 갖추고 있는 제도이다. 모든 단계마다 노회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개혁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인가, 아니면 지금과 같은 혼란을 유지할 것인가는 노회가 신학생의 선정과 교육 그리고 사역지 배분에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이느냐에 달려 있다.

 

*바로잡음- 이 전의 글에서 사용된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장로회 교회정치』는 『장로회 교회정부』로 바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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