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일부 보수적인 교회들이 그 적정성을 비판하고는 있지만,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예배는 이미 지난 수개월 동안 진행되어 오고 있다. 비대면 예배로 주일을 성수하는 기간이 장기화하면서, 교회는 예배의 위기를 인식하게 되었고, 올바른 예배 참여 방식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필자는 아래에서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예배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하여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본문 중)

박해정(감리교신학대학교 예배학)

 

2019년 12월 31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 지역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 환자 27명이 발생했다고 보고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큰 공포를 날마다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약칭 코로나19)로 인해서 지난 1월 9일 첫 사망자가 나온 이후 92일 만에 1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고, 9월 중순 현재에는 감염자가 3천만이 넘었고 사망자는 백만에 육박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기독교 공동체들 안에서 온라인 예배에 대한 논란이 생겨나고 있다. 온라인 예배의 적정성에 관한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온라인이라는 공간 자체가 가상의 공간이기에 그 공간을 통한 예배가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타당하냐는 것이다. 기독교는 예배라는 공동체적 행위를 통해서 발전해 왔다. 물리적 공간 안에서 정한 시간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예배에 대한 기본적 명제를 고수하는 교회들은 온라인 예배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기로 선택한 예배 공동체의 경우도, 그것을 잠정적인 대안으로 여기고 온라인 예배의 방법과 기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한편,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고 국가적 비상사태를 맞이하게 되면서, 정부는 교회의 공예배에 대해 행정력을 행사하게 되어 국가가 종교에 간섭하는 모양새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비록 일부 보수적인 교회들이 그 적정성을 비판하고는 있지만,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예배는 이미 지난 수개월 동안 진행되어 오고 있다.1) 비대면 예배로 주일을 성수하는 기간이 장기화하면서, 교회는 예배의 위기를 인식하게 되었고, 올바른 예배 참여 방식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필자는 아래에서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예배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하여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예배는 공동체성 위에서 존재해야 한다. 예배의 주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예배를 드림으로써 예배 공동체로서의 공동체성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근거를 얻게 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한국교회 영향도 조사”2)를 살펴보면서, 필자는 온라인 예배를 지속할수록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자들이 더욱 늘어나리라는 불안감을 갖게 되었다. 비록 응답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현장 예배를 더 사모하며, 온라인 예배도 자신의 교회에서 현장 예배를 드리듯이 참여하고 있지만, 교회 직분자들과 봉사자들 가운데도 개인적인 이유로 온라인 예배를 게을리하거나, 또는 온라인 예배를 현장 예배보다 더 선호하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온라인 예배를 선호하는 이들은 다분히 예배를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현장 예배를 드릴 때는 볼 수 없는 모습으로 예배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는 사적인 공간에서 사적인 행위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고가 발전하면, 결국 신자 개인이 예배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의식은 사라지고, 각자 기호에 따라 온라인 예배를 드리거나 설교를 듣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고 믿게 될 것이다.

교회는 온라인 예배 때문에 예배 공동체로서의 의식이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비록 온라인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있다 하더라도, 교회가 예배 공동체임을 기억하도록 돕고, 이와 같은 공동체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온라인 예배는 자칫하면 신자들을 수동적 예배자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로 인한 한국교회 영향도 조사”를 보면 설교만 듣는 것으로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고, 예배를 드리는 동안 현장 예배에서와는 달리 계속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또한, 이와 같은 예배는 예배를 인도하는 집례자와 예배자가 일대일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특히 성찬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성찬을 온라인으로 실행하는 경우라도 그것은 반드시 공동체의 행위로 이루어져야 한다. 성찬은 주님의 몸인 교회가 신자들 간의 친밀한 지체됨을 경험하게 하는 은혜의 수단임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예배에서는 소외된 자들이 없어야 된다. 공고한 예배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교회는 예배에서 소외된 자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을 포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초대교회 때부터 이러한 노력들이 계속 존재했다. 질병으로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을 찾아가서 성찬에서 나누었던 빵을 전하는 전통이 있었으며, 지금도 이 전통은 계승되고 있다. 또, 예배의 자리에 함께하고 싶지만 개인적, 사회적, 물리적 이유로 자신이 속한 예배 공동체와 함께 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온라인 예배는 이와 같은 상황 속에 있는 이들이 예배의 자리에 나올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이들이 온라인 속에만 갇혀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이들이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됨을 지속적으로 확인해 주어야 한다.

 

미국 어느 교회에서 온라인으로 성찬을 진행하는 장면.(출처: 미국 세인트 존스 요크 밀스 성공회 교회)

 

셋째, 예배는 노동이다. 필자가 자주 강조하는 예배의 중요한 특성이다. 모든 노동이 예배가 될 수는 없지만, 참된 예배는 노동이 필요하다. 이 노동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예배를 경험하기 위한 예배자들의 노력을 의미한다. 이것이 ‘레이트루기아’3)의 의미이다. 온라인 예배에서는 노동이 생략될 소지가 많다. 특별히 예배자들의 노동이 전혀 없이 예배가 이루어질 소지가 많다. 아무 기대감이나 준비 없이, 자신이 편리한 시간에 그저 ‘주일을 지킨다’는 의무감으로 예배를 드릴 수가 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을 보듯이 그냥 ‘예배를 봐 버릴’ 소지가 있다. 온라인 예배가 예배로서의 온전한 자리매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그 자리에서 예배자들의 노동이 필요하다. 이 노동은 예배를 사모함에서 시작된다. 예배의 노동은 육체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 노동도 필요하다.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는 예배자들은 현장 예배를 기대하는 것과 동일한 마음으로, 기대감을 가지고 기도하며 참예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예배하는 공간이 거룩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노동해야 한다. 예배를 준비하며 일상의 공간을 거룩한 예배의 공간으로 전환하는 노동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예배 공동체를 세심하게 돌봐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는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19세기 말, 세균 이론이 등장하면서 성찬 시에 한 잔을 사용하던 전통이 개인별 잔을 사용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던 것처럼, 이번 코로나19로 인해서도 세계 교회에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모든 것이 정상화되면 예전처럼 찬양대원들이 촘촘히 앉아서 찬양을 드리고, 웨슬리의 가르침처럼 열성적으로 찬송을 부르며, 한국교회는 전통적인 ‘주여 삼창’을 하며 통성 기도를 드리는 때가 다시 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성찬의 자리에 나와서 집례자가 떼어 주는 주님의 몸인 빵을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먹기 어려운 날이 올 수도 있다. 예배 중에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성도들끼리 가볍게 포옹하는 전통도 이제 어찌 변할지 모른다. 삶의 패턴 전체에 이미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니 신앙생활의 양태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며 예배를 드리는 상황 언제 끝날지 모를 뿐더러, 이후에 다시 예배 모임이 제한될지도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예배 공동체인 교회는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 나타날 새로운 삶의 규범이 우리의 예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계속 면밀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예배를 통해 구원의 기쁨이 예배 공동체 안에서 늘 경험되게 할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필자의 논문,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온라인 예배에 관한 고찰”(『신학과 세계』, 2020 여름호)의 내용을 일부 발췌, 수정한 글이다.


1) 필자는 코로나 19사태로 인해 예배를 ‘대면 예배’와 ‘비대면 예배’로 구분하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온라인 예배 역시 대면 예배의 한 형식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비대면 예배’에 대한 이해가 보편화 되어 있고, 좋은나무의 원고 요청서에도 ‘비대면 예배’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기에 그 용어를 수용하며 글을 쓴다.

2) 교갱협, “코로나19로 인한 한국교회 영향도 조사 보고서 발표”, 교갱뉴스 2020.4.10.

3) ‘레이투르기아’는 헬라어로 ‘예배’, ‘예전’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봉사’(service)라는 의미도 지닌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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