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예배가 들어오고 안식의 날이 하나로만 정해질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일만을 예배의 날로 규정해 버린다면, 그것도 한계를 가지게 된다. 자칫하면 주일에 예배드리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배에 참여할 권리 자체를 빼앗아 가는 불의가 될 수도 있다. 지금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교회당에서 드리는 예배에는 정해진 소수만 참여할 수 있는데, 그러면 그 참여자에 들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주일성수가 인정될 수 없는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주일예배는 우리의 신앙 전통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신앙생활에서 제거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면 가장 마지막에 남을 것이 주일예배일 것이다. 특히 한국교회 교인들의 의식 속에서는 주일예배가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다. 한목협의 “2017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에 따르면 교회 출석자 중 약 74%는 매주 주일 낮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 이 수치는 1998년부터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이 조사에서 큰 변화가 없는 부분이다. 이 수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데, 다른 종교와 비교해 보면 확연한 차이를 볼 수 있다. 한국갤럽이 정기적으로 행하는 “한국인의 종교” 조사를 보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성당/교회/절에 가느냐는 질문에 긍정 응답이 불교인은 6%로 가장 낮았고, 천주교인은 59%가 나왔다. 이에 비해 개신교는 80%나 나왔다. 이처럼 한국교회 교인들은 주일예배에 참여하는 것을 신앙의 중요한 척도로 이해하고 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개신교인 중 매주 교회에 가는 사람은 23%이다. 독일의 경우도 독일개신교연합(EKD)의 조사에 따르면 매주 교회에 가는 신자가 20% 정도이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한국교회의 교인들이 얼마나 주일예배를 중시하는지, 그리고 신앙생활에 있어서 주일예배를 얼마나 기본적인 것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한국교회는 주일성수의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다. 신앙의 선배들은 주일성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필자가 아는 한 목사님은 젊을 때 군대에서 주일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모진 박해를 감내했다고 들었다. 한번은 소위 말하는 ‘빠따’를 100대 맞고 ‘독한 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교회에 갔다고 한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는 대한민국 남자치고 이런 전설 한두 가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 그룹 사옥 옥외 광고판에 “주일은 주님과 함께”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현재는 다른 내용으로 교체되었다.

 

고신 교단에 속한 어느 교회에 설교하러 간 적이 있다. 마침 식사 때가 되어 담당하는 부장 집사와 임원들과 함께 중국 식당을 갔다. 밥을 먹는데 이분들이 하는 이야기가 ‘고신이 많이 변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주일에 외식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심지어 주일이면 돈을 쓰면 안 되기 때문에 간식도 못 사 먹고,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가 한번 시작되자 이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일성수와 관련한 다양한 전설들을 쏟아 놓았다. 어디 고신 교단뿐이겠는가. 아마 보수 교단에 속했던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그렇게 주일성수를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전에 손봉호 장로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장로님은 학생 때 주일이면 공부를 안 했다고 한다. 온전한 안식을 누린 것이다. 그런데 시험 때가 되면 불안했다. 그래서 주일에 공부를 안 하고 준비하고 있다가 주일 밤 12시부터 시작해 밤새워 공부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 유학 때도 그렇게 했다고 한다. 아마 손 장로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많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얼마 전에도 다시 나왔던 <불의 전차>라는 영화는 영국 올림픽 육상 국가대표였던 에릭 리델의 이야기를 다룬다. 올림픽 100m 달리기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그가 경기가 주일에 열린다는 이유로 불참했던 일화가 나온다. 국가의 대표로 나와서 온 국민의 열망을 담고 있었던 그가 주일성수를 이유로 경기에 불참한 것은 대단한 용기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100m 경기 대신 400m 경기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땄다. 이 이야기는 주일성수에 관한 감동적인 예화로 한국교회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이와 같이, 우리는 주일성수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또한 수많은 전설도 가지고 있다. 때론 인생을 걸고, 모진 박해를 감당하고, 불편함과 불안함도 이겨야 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신앙의 중요한 덕목이며 또한 절대적 의무로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주일성수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주일성수의 정확한 의미다. 주일에는 두 가지 개념이 들어 있다. 하나는 ‘안식의 날’이고, 하나는 ‘예배의 날’이다. 안식의 날이라는 개념은 구약성경에서 비롯한 유대인의 전통에서 왔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친히 안식의 날을 제정하셨다. 6일간의 창조 후 7일째 되는 날에 쉬시며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하셨다. 이것은 십계명의 제4계명이 되어 오늘날까지 유대인의 표징으로 남아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상징이 되었다.

이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특별히 쉬는 날이 없었던 고대 사회에서 7일마다 쉴 수 있는 날을 만들었다는 것은 혁명적인 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 안식의 명령 때문에 유대인 성인(成人)뿐 아니라 그 자녀들까지, 그리고 그 집안의 종들과 한마을에 사는 외국인들까지도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심지어 가축에게까지도 안식의 혜택을 누리게 했다. 안식은 그저 권고 사항이 아니라, 절대적 가치였으며 신적 권위로 보장된 권리였다. 쉴 수 있는 날이 아니라 반드시 쉬어야 하는 날이었다.

1주일 단위로 살고, 그 가운데 쉬는 날을 가지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하지만 그렇게 당연한 일은 아니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매 주일 쉰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 일반적이지 않았다. 조선 시대로 올라가면 물론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농경문화에서 살던 우리는 명절이나 되어야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고대로부터, 창조의 때부터 7일마다 안식일을 가졌다. 이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한 사회가 이런 쉼을 제도화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큰 배려인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절대적 계명으로 여겼다는 점이다. 이들은 촘촘하게 안식일 규정을 만들어 놓고 안식일에는 사람뿐 아니라 심지어 가축까지도 어떤 노동도 할 수 없도록 했다. 안식일 계명은 지금까지도 유대 전통 안에서 절대적이다. 아니, 너무 과도하게 엄밀하여 인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정도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수님도 그러한 폐해를 지적하며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씀하셨다(막 2:27). 하지만 이러한 폐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현대 이스라엘에서도 놀라운 모습으로 발견되곤 한다.

기독교는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았다. 주일(Lord’s day)이라고 명칭도 바뀌고, 그 지키는 날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지만, ‘안식’의 전통은 이어져서 노동에서 해방된 날로 여긴다. 기독교 국가인 유럽의 나라들은 아직도 이런 전통에 따라 주일이면 상행위가 중지되고, 심지어 상용 트럭의 고속도로 운행을 금하고 있다(적어도 독일에서는 그렇게 지켜지고 있다). 한국교회도 그러한 전통에 따라 주일을 안식의 날로 여겼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노동을 금하고, 상거래도 중지하고, 심지어 학생들은 공부도 멈추었다. 특히, 청교도의 전통을 따라 주일이면 오락행위도 멈추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주일을 ‘안식의 날’로 지킨다는 의미이다.

주일에 포함된 두 번째 개념은 ‘예배의 날’이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종교 의례를 행하는 날로 보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나 가정에서 행하는 안식일 의례는 있었지만, 사람들이 참여하는 집합적 의미의 종교 의례는 없었다. 물론 성전에서는 안식일마다 제사를 드렸다. 하지만 그것은 제사장들이 행하는 종교 의례였지, 모든 유대인이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제사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것이 회당 시대1)가 되며 바뀌었다. 회당이 생기면서 유대인들은 매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말씀을 읽고 기도를 드렸다.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매 주일마다 기독교인들이 모였고, 처음에는 함께 모여 식사하고 말씀을 나누는 모임에서 점차 의례로 발전해 나갔다. 이러한 전통에서 발전하여 주일이 ‘예배를 드리는 날’로 정착된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에게 ‘주일성수’는 무엇보다도 교회당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이다. 특히 개신교인들은 자신이 속한 교회에 가서 담임 목사가 설교하는 예배에 참석하는 일로 이해한다. 바로 그것이 특별히 한국교회 교인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주일성수 표징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말하는 주일성수에는 이 두 가지 개념, 안식의 날과 예배의 날이 함께 들어 있다. 둘이 분리 가능한가라고 질문할 수 있지만, 엄밀히 보면 이 둘은 구분될 수 있고, 구분되어야 한다. 오늘날 현대 사회가 7번째 날의 안식일 이상의 쉼을 누리는 상황에서 안식의 개념은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일요일뿐 아니라 토요일까지도 휴일로 보내는 상황에서 주일만 안식일로 간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주일을 안식의 날, 노동에서 해방되는 날로만 본다면, 그 의미를 모두 담을 수 없다.

 

 

또한, 온라인 예배가 들어오고 안식의 날이 하나로만 정해질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일만을 예배의 날로 규정해 버린다면, 그것도 한계를 가지게 된다. 자칫하면 주일에 예배드리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배에 참여할 권리 자체를 빼앗아 가는 불의가 될 수도 있다. 지금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교회당에서 드리는 예배에는 정해진 소수만 참여할 수 있는데, 그러면 그 참여자에 들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주일성수가 인정될 수 없는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주일성수는 새롭게 정의될 필요가 있다. 안식과 예배의 두 개념을 함께 지켜내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되었다. 앞으로의 연재에서는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다루기 위해, 성서와 교회사를 돌아보며 안식일과 주일, 그리고 예배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부록

아래는 2020년 3월 13일에 개인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당시 온라인 예배가 시작되면서 적지 않은 분들이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 포기 입장을 옹호하다가 너무 과하게 대처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우리에게 예배당으로서 교회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예배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나누었다.

예전에 제가 알고 지내던 한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정말 여장부셨고 교회에서 열심이었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장수의 복은 없으셔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남편은 항상 교회에 오시면 맨 앞자리, 전에 권사님이 앉으시던 그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배 전에 난리가 났습니다. 그 자리에 누군가 먼저 앉은 겁니다. 그 교회 오래 다니신 분들은 그 자리가 돌아가신 그 권사님의 자리이고, 이제는 그 아내를 그리워하는 그 남편의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그 남편이 그 자리는 “우리 0권사의 자리”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화를 낸 것입니다.

교회당 자리에 누구 이름이 붙은 것도 아니고, 그 권사님 돌아가신 지도 몇 년이 되었는데 어떻게 그분의 자리겠습니까? 그런데 남편인 그분에게는 분명 그 권사님의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드렸던 권사님의 기도를 그분은 아셨던 거겠죠.

역사 있는 교회에 부임하면 몇 년 동안 교회 물품을 치우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못 하나에도 사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은 나무로 된 무거운 강대상을 치우고 크리스털로 된 세련된 강대상을 놓았다가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많은 성도가 그 강대상에서 울려 나는 말씀으로 신앙생활을 했던 것이죠. 거기서 나온 말씀에 감동하고, 결단했던 기억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강대상에 몇십 년 서셨던 원로 목사님도 있고, 그걸 헌물하셨던 분도 있는 것이죠.

요즘 교회당에 모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별수 없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하며 예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되니 여러분들이 정당화에 나섰습니다. 신학적으로 예배당은 큰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초대교회에 예배당이 어디 있었느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들의 신앙이 우리보다 더 좋았다고 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공동체라고도 합니다. 실은 어디 하나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건 아닙니다. 예배당에는 우리의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굴곡 가운데 그 예배당에 엎드려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했던 자리가 있습니다. 내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세례를 받은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유아세례를 받고, 성탄절에 주일학교 장기자랑도 했던 자리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삶의 매 순간이 이 예배당과 얽혀 있습니다. 저는 교역자 생활을 하며 여러 교회를 옮겨 다녔습니다. 그래서 딱히 인생의 모든 순간이 담겨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학 가기 전까지, 그러니까 예수 믿은 중학교 1학년부터 대학 3년까지 다닌 교회가 있습니다. 제겐 그 교회, 영은교회가 모교회이고 신앙의 뿌리이고, 삶의 정착지입니다. 이제는 현대식 건물로 대체되어 아쉬움이 있지만 얼마 전까지 있었던 빨간 벽돌의 예배당은 볼 때마다 내 신앙을 일깨워주곤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처음 설교자로 그 예배당에 섰을 때를 기억합니다. 강단에 서니 내가 항상 앉았던 바로 그 자리가 제일 먼저 보였습니다. 그리고 절로 눈물이 나서 설교 전에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기가 전에 내 자리였다고’고 말입니다. 내가 눈물이 났던 건 그 자리를 보며 내가 쌓았던 예배와 기도를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요즘 바벨론 포로기를 지나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시온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교회당에서 예배드리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가 된 중에 예루살렘 성전에 다 함께 모여 주님께 제사 드리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처럼, 예배당에서 예배드리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습니다.

예배당이 구약의 성전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과 신앙이 쌓여 있는 귀한 삶의 자리임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 어려움이 지나면 다시 그 교회당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교회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1) 회당이 처음 생긴 시기가 언제인지는 불분명하다.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유물은 주전 3세기 것이며, 회당이 예배의 중심이 된 것은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된 이후이다. Wikipedia, “Synagogue”(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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