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는 계속 광고가 쏟아진다. 새로운 기능의 전자 제품이 나왔으니 지금 것은 그만 쓰고 새것을 사라한다. 새로운 디자인의 옷이 나왔으니 새 옷을 입으라 한다. 새로운 것을 가진다는 것은 사용하던 것을 버린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 버려져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집, 인테리어, 전자 제품, 자동차, 옷, 가정용품 등 어느 하나 예외가 없다. 그런데 새것을 사고 이전 것을 쓰레기로 만드는 것을 멈추면 경제에 문제가 발생하니 멈출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니 끝없이 쓰레기를 양산하는 활동을 장려하고 또 장려한다. 그 결과 개인이 만드는 쓰레기가 1년 반마다 2배가 된다는 통계도 있다.(본문 중)

성영은(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현대인은 손대는 모든 것을 쓰레기로 바꾸는 신기한 재주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 한 명은 매일 1kg의 쓰레기를 만든다. 한 가정이 1년에 최소 1톤의 쓰레기를 배출한다는 말이다.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들은 쓰레기를 더 많이 배출하고 못사는 나라들은 덜 배출한다. 이처럼 쓰레기는 그 나라의 경제 규모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때로는, 많이 버리는 것이 부와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더 잘 살겠다는 인간의 욕심이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이 세상을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현대 문명이 만든 쓰레기가 없는 곳은 없다. 아프리카 오지나 히말라야 깊은 산 속에도 플라스틱이나 비닐 쓰레기가 널려 있다.

TV에서는 계속 광고가 쏟아진다. 새로운 기능의 전자 제품이 나왔으니 지금 것은 그만 쓰고 새것을 사라고 한다. 새로운 디자인의 옷이 나왔으니 새 옷을 입으라 한다. 새로운 것을 가진다는 것은 사용하던 것을 버린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 버려져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집, 인테리어, 전자 제품, 자동차, 옷, 가정용품 등 어느 하나 예외가 없다. 그런데 새것을 사고 이전 것을 쓰레기로 만드는 것을 멈추면 경제에 문제가 발생하니 멈출 수가 없다. 그러니 끝없이 쓰레기를 양산하는 활동을 장려하고 또 장려한다. 그 결과 개인이 만드는 쓰레기가 1년 반마다 2배가 된다는 통계도 있다. 현대의 이런 산업구조에서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더 잘 살려면 더 많이 버려야 하는 아이러니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 엄청나게 증가하는 쓰레기는 과학기술로 친환경 쓰레기 처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해결하자 한다. 재활용(recycling) 기술을 통해 쓰레기를 다시 처음의 원료 상태로 돌리고 그 과정에서 재생에너지까지 확보하여 경제 성장과 환경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자는 것이다. 달콤해 보이는 해결책이지만, 사실 이것은 기술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며, 또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이 말을 믿고, 당장 내 집, 내 아파트에 쓰레기가 보이지 않게 수거되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잊어버린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부터 문제가 시작되고 결국 그 문제는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분리수거가 안 되는 쓰레기도 문제지만 분리수거가 된 쓰레기의 처리도 보통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인 논리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재활용되는 원료는 품질이 떨어지고 오히려 비싼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산업현장에서는 새 원료로 생산하는 것을 선호하지 재활용하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이런 쓰레기를 돈을 주고 아시아나 아프리카로 팔아버렸는데, 최근 이 국가들도 더 이상 쓰레기를 받지 않겠다고 하니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외국으로 보내지 못한 쓰레기는 국내 여기저기에 쌓여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렇게 엄청나게 배출되는 쓰레기들은 매립할 곳이 부족하므로 주로 소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태우면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가 발생하므로 이것도 이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온실가스를 ‘인류가 만든 가장 위험한 쓰레기’라고 부른다. 기후나 환경을 변화시켜 결국 지구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태워버리면 쓰레기가 공기 중으로 사라져버리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온 하늘에 쓰레기를 버리고 있었던 셈이다. 더욱이, 쓰레기 속에 있는 각종 정체불명의 화학 물질들이 타서 다이옥신 같은 유독한 가스를 배출하는 것도 문제다. 쓰레기를 소각하여 만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라고 부르며 친환경 이미지를 만들려고 애쓰지만, 사실 쓰레기 소각장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다. 소각 후 남은 재를 매립하거나 비료로 농가에 공급하려고도 하지만 그 안에 중금속이나 어떤 유해물질이 있을지 몰라 선뜻 사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재를 다시 물로 씻겠다고 하지만, 그 물도 유해물질을 품고 있기에 다시 처리를 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는 아무리 첨단 과학기술로 처리한다고 해도, 어떤 식으로든 공기와 물과 땅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쓰레기를 재활용하여 원래대로 되돌리는 일은 어떤 첨단기술로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이면 다 될 거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음식물 쓰레기, 전자 제품 폐기물, 플라스틱이나 비닐, 종이, 옷 같은 것뿐 아니라 방사성 폐기물, 미세먼지, 온실가스까지도 결국 인간이 버린 쓰레기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자연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쓰레기 문제와 관련해서 자연의 자원 순환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사실 자연 속 식물과 동물도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생산한다. 풀은 죽어 흩어지고 나뭇잎은 떨어져 낙엽으로 수북하게 쌓인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쓰레기라 부르지 않는다. 자연에는 쓰레기라는 말이 없다. 그 이유는 다 재활용되어 또 다른 생명의 원료가 되기 때문이다.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또 다른 식물이 자랄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동물이 내는 배설물이나 사체도 다 분해되어 식물의 영양분이 되고 재료가 된다. 식물이나 동물도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식물의 광합성을 통해 공기 중의 온실가스를 흡수하여 다시 탄수화물 같은 먹거리를 만든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생태계는 이렇게 자원을 재활용하면서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까지 공존하도록 되어 있다. 즉, 자연을 이루는 물질은 하나도 낭비 없이 재사용된다. 생명이든 무생물이든 세상의 모든 창조물은, 그것을 이루는 재료가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창조물의 일부였던 원소를 재사용하여 만들어지게 되어 있다. 물과 공기, 식물이 만들거나 땅에서 흡수한 영양분이 동물과 인간의 몸을 이루고, 동물과 인간의 몸이 다시 분해되어 또 다른 생명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버린 쓰레기도 이 생태계의 순환 속으로 들어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또, 결국 우리 몸을 이루게 된다.

 

 

인간은 자연의 자원 순환을 모방하여 소위 ‘순환 경제’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현대문명이 만들어 낸 각종 제품들을 사용 후 다시 원료로 재사용하자는 것이다. 자연처럼 낭비 없이 모든 자원을 다시 사용하자는 말이다. 그러면 경제도 지금처럼 유지되고 쓰레기도 쌓일 일이 없다는 논리다. 긴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간이 이룩한 경제는 재활용에 필요한 긴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쉬지 않고 상품을 쏟아내고, 끝없이 쓰레기를 쌓으면서 그것들이 재활용될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최선의 방법은 쓰레기양을 줄이고, 가능하면 물건을 재사용하여 재활용 과정과 같은 소각이나 매립으로 분해시키는 양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쓰레기라고 배출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 잘 살피고 관리하면 계속 쓸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쓰레기 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과학기술은 우리가 쓰레기를 엄청나게 배출하는 이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지 못한다. ‘내가 버리는 것이 곧 나’다. 내가 무슨 쓰레기를 버렸고, 얼마나 버렸고 하는 것이 곧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내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 사람인지를 말해 준다. 많이 쓰고 많이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절제와 공유 등을 통해 적게 쓰고, 재사용하고, 적게 버리는 사람이 바람직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새로운 법이나 규제를 만드는 것보다도 적게 버리는 것이 선한 것이라는 새로운 윤리가 정착되면 좋겠다. ‘재활용’은 누구나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이렇게 물질이 풍부하고, 좋은 물건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을 유혹하고 경쟁하듯 편리를 부추기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쓰레기를 줄이고, 물건을 오래 사용하고 재사용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 세계를 사랑으로 돌보고 내 세대에서 다 써 버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 후손들도 누릴 수 있게 잘 보존해야 한다는 ‘믿음’이 없이는 사실 어려운 일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일에 앞장서서 우리 사회에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이것이 21세기를 사는 신자가 문화명령(창 1:28)에 순종하는 한 모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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