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성수’를 위해 주일에는 일정 거리 이상 이동하지도 않고 시험공부도 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보수 교단에서도, 주일날 교회에서 여성이 부단히 노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 늘 의아했다. 우리가 주일날 제대로 된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면, 여자 성도들 역시 그 안식에 제대로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더 나은 성경적인 길은, 주일날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봉사의 강도를 다 낮추고, 성 역할의 구별을 철폐하고, 보다 온전히 안식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리라.(본문 중)

변수연(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교육학)

 

내가 기억하는 주일날의 교회에는 늘 밥이 있었다. 여전도회 성도들은 언제나 자기 부엌인양 교회 주방을 활보하며, 잔치국수부터 삼계탕까지 뚝딱 끓여 내셨다. 주일이든 수요일이든 예배가 있는 날이면, 사람들은 먼저 교회에 모여 여자 집사님과 권사님들이 해 주시는 저녁을 먹고 예배를 드렸고, 예배가 끝난 후에도 아쉬워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은 교회 김치로 김치전을 부쳐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진실로 내 어릴 적 교회는 따뜻한 음식과 정겨운 이야기가 항상 넘치던 고향 같은 곳이었다.

 

유학 후에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야 나는, 이런 나의 기억이 마치 일 년 열두 달 끊임없이 제사가 돌아가는 종갓집의 철없는 종손의 기억 같은 것임을 깨달았다.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으로서, 교회에 등록하자마자 나는 촘촘히 짜인 교회 내 ‘식당 봉사’ 네트워크에 편입되었다. 주일 예배 후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오후 모임을 가지는 한국교회에서 식당 봉사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 있었다. 아이가 어린 경우는 좀 면제도 되었지만, 서로의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여자 성도들에게 일을 분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 15년간 교회에서 식당 봉사를 요구받는 기혼 여성으로 지내며 내가 경험한 문화는, 종가집 제사 문화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50대 이상의 고연령층 여성 성도들이 가정에서 하던 가사 노동을 그대로 교회로 옮겨 놓고, 여성은 음식을 준비하고 남성과 아이들은 모여서 음식을 기다리기만 하는 가부장적 문화를 답습해 왔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는, 식당 봉사를 주도하는 노권사님이 마치 종갓집 종부처럼, 풍성한 음식에 대한 목회자와 성도들의 칭송을 듣기 위해 엄청난 양의 반찬을 만들도록 하고, 예배가 끝난 후에는 마치 마음에 드는 며느리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듯 남은 음식을 배분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나는 예전부터, ‘주일 성수’를 위해 주일에는 일정 거리 이상 이동하지도 않고 시험공부도 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보수 교단에서도, 주일날 교회에서 여성이 부단히 노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 늘 의아했다. 우리가 주일날 제대로 된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면, 여자 성도들 역시 그 안식에 제대로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남자 성도들도 주일에 주차 관리나, 청소, 시설 설치 등 교회의 예배를 위해 다양한 노동을 한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주일마다 모든 이를 대접할 따뜻한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노동과는 강도 면에서 비교할 수 없다. 더 나은 성경적인 길은, 주일날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봉사의 강도를 다 낮추고, 성 역할의 구별을 철폐하고, 보다 온전히 안식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리라.

 

내 인생에서 그런 교회를 딱 한 번 다녀본 적이 있다. 벨기에에서 지낼 때 다녔던 외국인 교회였다. 대학 건물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라 점심 식사 자체가 어려웠지만, 예배 후에 교인들과 식사를 만들어 먹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대신, 예배 후 성도들의 교제를 위해 간단한 비스킷과 빵, 커피 등이 제공되었다. 봉사를 자원한 벨기에인 부부가 헌금으로 구입한 다과와 플라스틱 접시들을 매주 교회로 가져왔고, 우리는 예배 후 30여 분간 서서 그것을 먹으면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은 무리 지어 근처 학생 식당에 가서 더치페이로 점심을 먹었고, 대다수는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점심 식사를 했다. 일 년에 단 한 번, 크리스마스 예배 후에는 각자 만들어 온 음식들을 가지고 크리스마스 뷔페를 열어 함께 식사했다. 주일을 5년간 그렇게 보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니, 더 많은 사람들과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목사의 딸로 살아온 내가, 토요일 저녁에 다음 날 교회 가는 것이 기다려졌던 유일한 교회였다. 내게 아무것도 당연하게 요구하지 않는 교회였으며, 진실로 안식할 수 있는 공동체요 예배였다.

 

성경에 나오는 교회의 식사 모습도 한국식 식당 봉사는 ‘지양’하는 듯 보인다. 산상수훈을 마친 예수님은, 그 시절에는 공식 인구 집계에도 포함되지 못하던 여성들에게 밥을 하라 하지 않으시고, 어린아이가 가져온 소박한 도시락으로 사람들을 먹이셨다. 또한, 예수님 자신을 위한 식사 준비에 분주했던 마르다를 책망하시고, 자신의 말씀을 열심히 듣기만 했던 마리아를 칭찬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성경적 안식을 위해, 여성들에게 당연하게 부여되던 식사 노동을 멈추고 그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40대 이하의 젊은 세대는 성차별적인 교회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은 한국교회에 이와 관련한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교회도 이제 다시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고된 노동으로 이루어진 교회의 풍성한 식탁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방법이 아님을 이제는 모두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서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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