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에는 로쟈가 추구했던 이상을 구현한 캐릭터가 나온다. 로쟈의 발목을 잡았던 ‘한계’가 없는 캐릭터가 바로 스비드리가일로프다. 그는 법과 도덕에 전혀 매이지 않는 인간이다. 로쟈의 철학이 일관성 있게 육화한 인물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얼마든지 위장하고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들 수 있으며, 일반적인 선악의 기준에 개의치 않고 자기 뜻에 방해되는 사람은 손쉽게 제거하며, 그러고도 아무런 가책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로쟈를 보고 자기와 ‘같은 과’라는 것을 알아본다.(본문 중)

홍종락(작가, 번역가)

 

그가 원했던 것

여기 한 법대생이 있다. 머리가 좋아서 무엇이든 쉽게 깨치고 기억도 잘한다. 자기 생각이 분명하고 그것을 유려하게 표현할 줄도 알아서 마음잡고 쓴 논문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가난한 집안 형편이 발목을 잡는다. 돈이 없어서 휴학을 해야 했다. 여기저기 아르바이트를 해 봤지만, 돈도 안 되면서 자존심만 상하게 해 때려치운 지 오래다. 어머니가 쥐꼬리만 한 연금을 담보로 생활비를 보냈고, 가정교사로 험한 일을 겪었던 여동생은 오빠를 어떻게든 도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며 늙수그레한 구두쇠와 결혼하겠단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방구석에 처박혀 집주인 눈치나 보고 있어야 하는 그에게, 인근의 전당포를 운영하는 노파가 눈에 들어온다.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노파는 가난한 사람들의 물건을 전당 잡아 큰 재산을 모았다. 사람들의 곤궁한 처지를 악용해 그들의 고혈을 짜내는 악당. 만약 그런 노파의 재산을 빼앗아 전도유망한 가난한 청년들에게 나눠준다면 얼마나 좋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을 가로막는 것이 있으니, 법과 도덕이다. 부당하고 불공평한 현실이 버젓이 펼쳐지고 있는데 법과 도덕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자신을 옥죄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궁리를 한다. 그리고 법과 도덕을 넘어설 논리를 떠올린다.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아주 판을 키워버리면 죄인이 아니라 영웅이라는 말을 듣지 않는가. 나폴레옹 같은 사람을 생각해 보라. 결국 일반적인 선악의 기준에 매이는 대부분의 사람과 그것을 뛰어넘는 극소수의 사람이 있는 것 아닐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로쟈는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인간들에게나 해당할 선악의 기준, 그러니까 법, 도덕 따위는 자신의 발아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고자 악덕 전당포 주인 노파를 살해한다. 법과 도덕을 깨뜨리는 방식으로 자신이 초인임을 입증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주체적이거나 영웅적으로 집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외부적 자극과 수많은 우연의 일치와 충동적인 선택, 요행으로 점철되어 있다. 더욱이 살인을 저지른 후, 그는 자신의 논리나 생각과 달리 죄책감과 살인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사람을 죽이는 죄를 지어 국법과 도덕법을 어김으로 비로소 자신이 법 아래에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에 따른 충격과 자책과 괴로움을 통해 ‘인간성’을 잃지 않은 존재임을 확인하게 된다.

로쟈는 사람을 죽이고 그로 인한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리고 괴로워하는, 나약한 보통 사람이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범죄 이전부터 아주 특별한 연민과 감수성의 소유자였다. 그는 다른 사람, 특히 약자의 고통과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앞뒤 가리지 않고 다 내어준다. 이 두 가지 면모가 초인이 되려는 로쟈의 발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가 만약 그런 보통 사람, 아니, 약자에게 깊이 공감하는 감수성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과연 초인이 될 수 있었을까?

 

영화 <죄와 벌> 중.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실체

『죄와 벌』에는 로쟈가 추구했던 이상을 구현한 캐릭터가 나온다. 로쟈의 발목을 잡았던 ‘한계’가 없는 캐릭터가 바로 스비드리가일로프다. 그는 법과 도덕에 전혀 매이지 않는 인간이다. 로쟈의 철학이 일관성 있게 육화한 인물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얼마든지 위장하고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들 수 있으며, 일반적인 선악의 기준에 개의치 않고 자기 뜻에 방해되는 사람은 손쉽게 제거하며, 그러고도 아무런 가책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로쟈를 보고 자기와 ‘같은 과’라는 것을 알아본다.

그러면 로쟈가 추구한 모습의 이상형이라 할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과연 그는 영웅, 선악을 넘어선 초인이었을까? 로쟈가 머릿속에서 떠올린 초인은 아마 근사하고 멋진 모습이었을 것이다. 감탄과 탄성이 절로 나올 만한 존재였으리라. 그러나 로쟈의 눈앞에 나타난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모습은 로쟈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인간의 법과 도덕을 뛰어넘는 초인, 슈퍼맨이 아니었다. 선과 악을 넘어선 초인이 아니라 뻔뻔한 악인이었다. 인간 이상이 아니라 인간 이하의 존재, 초인이 아니라 인간이기를 포기한 추악한 존재, 어떤 면에서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존재(ex-man)였다.

엑스맨(ex-man, 마블 영화에 나오는 돌연변이 초능력자 X-MEN과 혼동하면 안 된다)이라는 표현은 C. 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에 등장한다. 그는 지옥에 들어가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엑스맨(ex-man), 즉, 한때 인간이었던 존재라고 말한다. 루이스는 지옥이 멀쩡한 인간이 들어가서 괴로움을 당하는 곳, 천국은 멀쩡한 사람이 호의호식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이 진정으로 있어야 할 곳, 그의 진정한 고향, 본향이 천국이라면, 지옥은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지옥에 던져지는, 또는 스스로 뛰어 들어가는 존재.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잔해’.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열정을 의지에 순종시키며 그 의지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 전에 인간이었던 것-전(前) 인간(ex-man) 내지는 저주받은 혼령-이란 전적으로 자아에 집중된 의지와, 의지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 열정으로 구성된 존재라는 뜻 … 죄인이라고 하기보다는 상극의 죄들이 성기게 뭉쳐 있는 덩어리.1)

엑스맨의 핵심은 두 가지다. 전적으로 자아에 집중된 의지와, 의지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 열정. 지옥에서는 이것이 극단적인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여기에 상당히 근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의 뜻을 관철하는 데만 관심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열정과 욕망에 휘둘려 살아간다. 대단한 것 같은 그의 의지를 이끄는 유일한 동기는 놀랍게도 “쾌락”과 “감정적 강도가 높은 충동”이다.2)

결국 로쟈가 자기 생각에 충실하지 못해서 초인이 못된 것이 아니었음을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잘 보여준 셈이다. 도덕과 법을 어기는 식으로는 초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다른 길은 없을까? 『죄와 벌』의 다른 등장인물 몇이 그런 길을 보여준다. 이 얘기를 하려면 로쟈와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차이점을 하나 짚어야 한다.

 

그 사람의 곁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결국 사람 자체보다도 ‘곁’에 있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았다. 그를 사랑하는 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모두가 본인의 매력을 발휘하여 이용할 도구에 불과했다. 그래서 결국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고 결국 그것이 그를 견딜 수 없게 했다.

그러나 로쟈의 곁에는 친구와 동생과 연인이 있다. 로쟈는 철저히 혼자이고 싶어 하면서도 또 언제나 주위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살인을 저지르고 훔친 물건들을 숨긴 다음에, 자기도 모르게 친구 라주미힌을 찾아간다. 로쟈는 친구의 집에서 곧장 튀어나오긴 하지만, 그 방문은 라주미힌이 그를 다시 찾아가 돌볼 수 있는 틈을 열어주었다. 이와 비슷하게, 로쟈는 거듭해서 친구와 동생과 연인 소냐가 내미는 손을 뿌리치다가도 다시 그들에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그에게 너무나 소중한 그들 모두는, 있는 모습 그대로 로쟈를 사랑하고, 그에게 죄에 대한 벌을 받으라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키라고 말한다. 악당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오히려 그에게 빠져나갈 길을 주겠다고, 살길을 열어주겠다고 ‘유혹’하지만, 진정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죗값을 받으라고,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으라고, 그 과정에 함께하겠다고 말한다. 이 사랑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장면을 둘만 꼽아보자.

 

장면1. 로쟈가 아무 말 없이 라주미힌과 바라보는 것만으로 라주미힌은 사태를 파악했고, 로쟈는 친구에게 어머니와 여동생을 부탁한다. 이후 정말 라주미힌에게 그들은 어머니와 여동생과 같은 존재가 된다. 우정, 사랑, 신뢰, 이런 단어들은 때로는 진부하게 들리지만, 그 단어들이 구현하는 실체는 언제나 놀랍고 감동을 안겨준다. 작가는 그런 실체를 두 사람의 이심전심의 장면으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장면 2. 소냐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은 로쟈가 결국 소냐의 간청에 못 이겨 경찰서로 자수하러 간다. 로쟈는 경찰서로 들어갔다가 대화가 잘 풀리지 않고 해서 어찌어찌 경찰서에서 다시 나오고 마는데, 그때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냐가 두 손을 마주 잡고 간청하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본다. 여기서 로쟈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들어가서 자신이 범인임을 자백한다.

 

법과 도덕은 계율을 어기는 방식으로, 이를테면 거기에 매이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방식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주미힌과 로쟈의 동생과 연인 소냐는 한목소리로 법과 도덕을 뛰어넘는 다른 길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랑의 길이다. 그 사랑은 그의 죄를 덮어주는 불법한 사랑이 아니다. 오히려 죄지은 로쟈에게 벌을 받으라고 촉구하고, 책임을 지게 만드는 의로운 사랑이다. 동시에 그것은 그 수준을 뛰어넘어 끝까지 함께하는 사랑이다.

로쟈는 그 사랑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사랑에 힘입어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을 받음으로써,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점차로 소생되어 가는 이야기,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이야기, 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다.3)


1) 『고통의 문제』(홍성사, 2002), 191.

2) C. S. 루이스는 스스로가 일체의 가치판단 바깥에, 모든 윤리 도덕(道) 위에 있다고 여기고 다른 모든 사람을 지배하고 조작하는 이들이 오직 ‘쾌락’과 ‘감정적 강도가 높은 충동’의 지배를 받을 뿐임을 지적한 바 있다. C. S. 루이스, 『인간 폐지』(홍성사), 78-79.

3) 『죄와 벌』(하)(열린책들, 2015),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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