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J(백투예루살렘)의 프리메이슨에 대한 음모론이 판을 치고 있다. 빌 게이츠가 그 회원이고 코로나 백신 포장지 바코드에 666 사탄의 표가 찍혀 있고, 주사액 안에는 사람의 DNA를 교란시키는 물질이 있어서, 전 세계인이 백신을 맞으면 종말에 사탄이 주는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들로 변화된다는 음모설도 함께 유행하고 있다. 과연 프리메이슨은 세계정부를 꿈꾸는 비밀 단체인가?(본문 중)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

 

BTJ(백투예루살렘)의 프리메이슨에 대한 음모론이 판을 치고 있다. 빌 게이츠가 그 회원이고 코로나 백신 포장지 바코드에 666 사탄의 표가 찍혀 있고, 주사액 안에는 사람의 DNA를 교란시키는 물질이 있어서, 전 세계인이 백신을 맞으면 종말에 사탄이 주는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들로 변화된다는 음모설도 함께 유행하고 있다. 과연 프리메이슨은 세계정부를 꿈꾸는 비밀 단체인가?

한국 프리메이슨은 서양인들의 사교 단체로서 1909년 서울에서 창립되었다. 창립 멤버와 초창기 회원의 상당수는 개신교 미국 선교사들이었다. 참고로 1907년 워싱턴 D.C.에서 조지워싱턴대학교를 졸업한 이승만이 12월에 시카고를 방문했을 때, 프리메이슨 템플(Masonic Temple)에서 개최된 장로교 설교자회(Presbyterian Preachers Meeting)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사실(이승만 일기, 12월 16일자)에서 보듯이, 당시 프리메이슨은 공개적인 사교 단체였고 교회 모임도 아무런 문제없이 그 템플에서 개최되곤 했다.

 

한국 프리메이슨의 설립, 1908-09

한국 프리메이슨 한양 지부(Han Yang Lodge #1048)가 스코틀랜드 본부로부터 설립 허가(chart)를 받은 것은 1908년 11월 5일이다. 한양 지부가 문을 연 날은 1909년 5월 29일이다. 이날 창립 회원 20여 명이 모여서 헌장에 서명했다.

이보다 앞서 1907-08년 한국 지부를 만들기 위해 몇 차례 모임이 있었다. 당시 한국 거주 외국인은 외교관을 제외하면, 상인(merchants), 광산업자(miners), 선교사(missionaries)의 세 부류였다. 자연히 프리메이슨 창립 회원은 이 세 그룹의 외국인 중에서 나왔다. 개신교 선교사들도 참여했다(당시 천주교는 프리메이슨을 비밀 조직으로 여기고 가입 시 출교시켰다). 첫 모임 중 한번은 북감리회 선교회에서 사임한 의사 스크랜턴(William B. Scranton)의 집에서 모였다. 회원들은 본부에 보낼 청원서를 작성했고 서명자를 찾았다. 광산 이사 알브리지(Walter H. Albridge)가 운산 광산 관계자들의 서명을 받았는데, 첫 서명 회원 24명의 1/3이 광산 사업자들이었다. 공주에 부임하여 영명학교를 세운 윌리엄스(Williams) 목사는 창립 모임들에 참석은 했으나 선교 사역에 바빠서 24인 창립 서명자에는 들지 못했다. 청원서는 일본 효고와 오사카 지부에 보내져 배서를 받아 일본 총 마스터인 와이마크(George W. Whymark)가 스코틀랜드 본부에 제출했다.

1909년 서울 사무소를 개소한 자는 요코하마 비단 사업가인 “일본 프리메이슨의 아버지” 그리핀(John Thomas Griffin)이었다. 그리핀은 한양 지부 개소식에 참여하면서 한양 지부의 멤버도 되었다. 한양 지부 첫 사무실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서울의 전차를 개설한 기술자 모리스(James Henry Morris)의 빌딩 2층이라는 설과, 손탁 호텔의 한 방이었다는 설이다. 두 건물은 정동에서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1922년부터 모리스 빌딩 2층을 전용으로 사용하면서 모인 것은 확실하다.

모리스(1871. 6. 26-1942. 2. 16)는 캐나다 출신으로 17세에 미국인이 되어 1899년 콜브란과 보스트윅이 설치한 서울 전차 가설 때 한성전기회사의 기술자로 1899년 8월 30일에 서울에 도착했다. 1905년 일본이 한성 전차 노선을 차지할 때, 모리스는 서울에 남기로 결정하고 부동산과 보험업 회사를 설립하여 존경받는 사업가가 되었다. 1907년 황성기독교청년회 회관 건립 시 실행이사로 활동했는데, 개신교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서울유니온, 한양구락부, 한국왕립아시아학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모리스. ⓒ옥성득.

 

개신교 선교사들의 참여

모리스는 1909년 12월 11일부터 한양 지부 총무-회계로서 실질적인 리더로 활동했다. 창립 때부터 참여한 유명 인사로는 첫 총무인 스크랜턴 의사, 대한매일신보 사장 영국인 베델(Ernest Thomas Bethell), 세브란스병원 원장 에비슨(Oliver R. Avison), 해밀턴(Alexander S. Hamilton), 데쉴러(David W. Deshler), 프램트턴(George R. Frampton), 치과의사 한(David E. Han), 고샬크(Albert Goshalk) 등이 있다. 공주의 윌리엄스(Frank Earl Cranston Williams, 禹利岩, 1883-1962) 목사도 1909년 12월 모임 때 하비(William R. Harvey)와 함께 회원이 되었다.

 

한국 프리메이슨 초창기 멤버였던 스크랜턴 의사, 베델 기자, 윌리엄스 목사. ⓒ옥성득.

 

일본 총독부는 비밀 결사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리메이슨 한양 지부(Free Masonary Han Yang Lodge)는 서울 구락부(Seoul Club) 형태로 존재했다. 또한 회원은 외국인만 허용되었고, 한국인은 회원이 될 수 없었다. (이 시기에 몇 명의 한국인이 외국에서 프리메이슨 회원이 되었다.) 경찰이 몇 차례 사무실을 조사하며 한국인의 참석 여부를 조사한 적도 있었지만 그런 사례를 적발할 수 없었다.

 

운산광산 사업가들 회원으로

그리핀과 스크랜턴 의사가 운산 광산에 한 달 간 머물면서 사업가들을 회원으로 받았다. 에반스(Harry J. Evans) 등이 회원이 되었다. 이로써 1911년에는 회원이 30명이 넘었다. 회합을 이끈 것은 모리스와 프램프턴 두 사람이었다. 프램트턴(George R. Frampton)은 육영공원의 교장으로 봉직하기 위해 1900년 12월 29일 서울에 도착한 인물로, 1931년 5월 서거할 때까지 한국의 청년들을 교육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그와 그의 부인은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매장되었다). 광산 회원들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서울 회합에 오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1912년 체이스(Frank Chase)는 다라골에서 신의주역 기차를 타기 위해 조랑말을 타고 80마일을 와야 했다.

1922년 한양 지부는 정동 미국 영사관 지역 바로 옆에 위치한, 전에 외교클럽이었던 서울클럽으로 이전했다. 1925년 화재로 서울 클럽이 전소되면서, 한양 지부는 설립 헌장과 많은 서류를 잃었다. 그래서 초기 역사의 많은 기록을 소실했다. 1920년대 클럽 재건에는 영국성서공회 조선지부 부총무 홉즈(Thomas Hobbs)가 공헌했다. 그는 1911년 구세군 선교사로 내한하여 1913년 영국성서공회 서울 지부 부총무로 채용되었다. 밀러 총무와 함께 일하다가 그가 은퇴하자, 1937년 총무가 되어 1940년 추방될 때까지 총무로 봉사했다.

 

첫 한국인 회원 윤인식과 백낙준

한국인으로서 프리메이슨 회원이 된 첫 인물은 서울 미국총영사관에 오래 근무한 윤인식이다. 그는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 와중에서 협회의 자료를 보관한 공을 인정받아 1957년 정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곧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두 번째 인물은 연세대 총장 백낙준 박사로 1958년 회원이 되었다. 이로써 연세대는 해방 이전 에비슨 학장, 해방 이후 백낙준 총장이 프리메이슨 회원이 됨으로써, 그와 연관된 언더우드 가문도 프리메이슨과 연관이 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언더우드 1세는 회원이 아니었고, 2세도 회원이었다는 증거는 아직 보지 못했다. 백낙준 박사와 관련이 있는 영국왕립협회아시아학회 한국 지부나 연세대가 직접 프리메이슨과 연관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일부 극우 음모 신봉자들이 주장하듯 프리메이슨이 사탄 숭배자들도 아니다.

양화진외국인묘지에 일부 프리메이슨 회원들이 묻혀 있는데, 이들은 1920년대 이후 출생으로, 선교사들과 직접 연관이 없다. 해방 이후 미군의 급증과 함께 한국의 프리메이슨 회원이 300명을 넘어가게 되는데, 미군 장교나 외국인 사업가들 다수가 회원이 되었다. 양화진 유니언교회는 외국인들에게도 매장지를 주었기 때문에 누구나 묻힐 수 있었다. 그들이 사탄 숭배자는 아니다. 일부 한국인들이 빠져 있는 프리메이슨 음모론은 근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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