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끝나는 보름이 오면 유대인 풍습처럼 한국인도 죄와 액을 청산하기 위해 희생양에 해당하는 제웅을 버렸다. 또한, 정월 보름에 평안도에서는, 유대인의 유월절처럼, 단고기(개고기)를 먹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고난을 기억하는 쓴 나물을 먹었으며, 금기인 발효 음식(김치, 동치미)은 먹지 않았다. 교회는 이런 정월 기간에 사경회를 열고 회개 운동, 전도 운동을 전개했다. 도시의 큰 교회 교인들은 도사경회 기간에 지방에서 올라온 교인들을 대접하며 교회 공동체 의식을 강화했다.(본문 중)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

 

설은 낯선 시간을 경건하게 맞이하기 위하여 조심하면서 말을 아끼고 금기를 지키는 기간이다. ‘설’의 어원은 ‘설다’와 ‘사린다’인데, 아직 오지 않은 새해의 시간은 낯설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맞이해야 한다는 뜻이다. 제액초복(除厄招福)하기 위해서 근신하고 경거망동을 삼가기 때문에 설날을 ‘신일’(愼日)이라고 불렀다. 설날 보름 기간은 묵은해를 반성하며 새해를 계획하고, 조상과 친척에게 인사하며 신에게 기도하면서 자신을 가다듬는 거룩한 시간이었다. 진일(辰日: 용 날)에는 비가 알맞게 내리기를 빌고, 자일(子日: 쥐 날)과 해일(亥日: 돼지 날)에는 쥐와 돼지가 곡식을 해치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정월 보름 기간을 하나님을 섬기고 성경을 공부하면서 새해를 준비하는 거룩한 안식 주간으로 삼았다.

설이 끝나는 보름이 오면 유대인 풍습처럼 한국인도 죄와 액을 청산하기 위해 희생양에 해당하는 제웅을 버렸다. 또한, 정월 보름에 평안도에서는, 유대인의 유월절처럼, 단고기(개고기)를 먹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고난을 기억하는 쓴 나물을 먹었으며, 금기인 발효 음식(김치, 동치미)은 먹지 않았다. 교회는 이런 정월 기간에 사경회를 열고 회개 운동, 전도 운동을 전개했다. 도시의 큰 교회 교인들은 도사경회 기간에 지방에서 올라온 교인들을 대접하며 교회 공동체 의식을 강화했다.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기독교화하자는 논의와 더불어 이런 정월의 절기를 성경의 절기와 초대 한국교회 사경회 전통과 연결시키는 작업은 기독교 토착화와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에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pixabay.

 

제웅치기와 연날리기에서 사경회로

제웅은 짚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든 것으로 추령(芻靈), 또는 처용(處容)이라고도 했다. 사람의 나이가 나후직성(제웅직성: 사람의 나이에 따라 그 운수를 맡은 아홉 별 중의 하나)에 들면 액운이 들어 만사가 여의치 않다고 하는데, 이 직성은 남자는 11세, 여자는 10세를 시작으로 9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온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직성이 든 사람은 제웅을 만들어 거기에 그 사람의 옷을 입힌 다음 푼돈을 넣고 이름과 출생한 해의 간지를 적어 음력 정월 14일 밤에 길가나 다리 밑에 버렸다. 옛날에는 정월 14일 밤에 아이들이 문밖에 몰려와 제웅을 달라고 청하면 선뜻 내주었고, 아이들은 돈만 꺼내고 제웅을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이를 제웅치기(打芻戱, 타추희)라고 하며, 그 유래를 신라 시대 구역신(驅疫神)인 처용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무녀가 제웅을 만들어 비는 경우도 있었으며, 『인현왕후전』과 『계축일기』에는 제웅을 만들어 남을 저주한 기록도 있다.

음력 정월 14일 밤에 재앙을 모두 짊어지고 버려지는 ‘제웅’은 과거 구약 시대의 매년 속죄일 대보름날에 대제사장이 안수한 후 이스라엘의 죄를 모두 지고 광야에 버려진 ‘희생 염소’(scapegoat; 레 16:21-22)와 비슷했다. 또한, 정월 대보름에는 액운을 날려 보내기 위해 연날리기를 했다. 그러므로 설 명절은 자신의 죄를 청산하는 ‘송구영신’과 ‘제액영복’의 기간이었다.

초기 한국교회는 제웅을 버리는 설날 풍속을 바꾸어 회개하는 사경회로 만들었다. 새해를 맞이하는 설 전후의 1-2주일은 한국교회가 거룩하게 구별한 사경회 기간이었다. 블레어(방위량)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사경회 제도는 한국 사역의 특징이다. 각 교회는 연중 한때에 일주일이나 그 이상의 기간을 성경공부를 위해 지정한다. 모든 일은 중단된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키듯이 한국의 기독교인은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기 위해 이 시간을 거룩하게 지킨다. 그런 중단 없는 성경공부는 전체 교회의 각성, 사랑과 섬김의 참된 부흥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중략] 남자들을 위한 평양 연합 사경회는 보통 1월의 첫 두 주간에 개최되는데, 수년 동안 평균 참석 인원은 800명에서 1,000명 사이였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40리에서 400리를 걸어서 평양까지 왔다. 모두가 자비로 오며 사경회 비용으로 약간의 수업료를 냈다. 지방에서 오는 참석자가 너무 많아서 방문자들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평양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도사경회 참석이 금지된다.1)

초기 한국교회에서는 이런 설날 풍습을 과거 유대인의 희생 염소 제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과 연결시켜 이해했다. 한 집안이나 개인의 죄를 대신 지고 길가에 버려지는 제웅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유비시켜 이해했다. 아담과 하와 이후 인류의 역사는 ‘남’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죄를 전가하고, 죽이고, 남의 것을 차지하는 전쟁의 역사였다. 그 폭력과 욕심의 악순환을 끊고, 희생자가 승리하는 반전(反轉)의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 예수는 십자가에서 희생되었다. 복음서는 희생자와 피해자들이 쓴 첫 책, 그들의 대변자인 예수의 무죄함과 거짓과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선언한 첫 책이었다. 사경회는 그 책들을 공부하고, 내면에 숨겨진 욕심과 폭력을 회개하는 시간이었다.2)

 

김치를 먹지 않고, 개고기와 쓴 나물 먹기

유대인들은 유월절과 무교절에 효소가 든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양을 잡아먹고 문설주에 피를 발랐다. 평안도에서는 정월 대보름 전날에 개를 삶아 먹었는데, 그 전에 개의 피를 대문에 발랐다. 북한의 단고기 먹는 풍습이 그러했다. 또한 이때는 김치나 동치미 국물 등 발효 음식도 금기로 여겨 먹지 않았다. 또한,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쓴 나물을 먹었는데, 평양에서도 정월 대보름 때는 쓴 나물인 흑채를 먹으면서 과거의 고난과 이웃의 고난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3)

 

길선주가 1920년대에 쓴 “유대 풍속과 조선 풍속이 동일ᄒᆞᆫ 사”, 『要集』(장신대 도서관)

 

이러한 한국 풍속과 성경 풍속 간의 유사성에서 선택적 친화성을 발견하여 기독교 의례로 토착화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설날 연휴를 사경회 기간으로 삼은 것이나, 레위기의 희생양과 예수의 십자가 희생을 제웅과 연결해서 설명한 일, 그리고 유월절 의례와 한국의 정월 대보름 의례 간의 유사성을 통해 두 민족 간의 동질성을 확인했던 길선주의 작업 등은 한국적 기독교 형성에 중요한 작업이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언행을 삼가 조심하면서, 교회 안으로 들어온 세상의 누룩이 무엇인지 성찰하며, 회개할 죄를 뉘우치고, 우리를 대신해 희생하신 예수의 피를 마음의 문설주에 바르며 그 은혜에 감사하고, 지난 한 해 씁쓸했던 고난을 되새기고 기억하는 설 연휴가 되면 좋겠다.


1) William Blair, The Korea Pentecost (New York: Board of Foreign Missions of the PCUSA, 1910), 67-68.

2) 옥성득, 『한반도 대부흥』(홍성사. 2008), 178-179.

3) 옥성득,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새물결플러스, 2016),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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