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었다. 트럼프의 인종주의, 백인 우월주의, 미국 제일주의를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의미를, 트럼프라는 돌출아의 횡포가 사라지고 미국은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 민주주의를 회복한 것이라고 간단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본문 중)
박문규(California International University 정치학 교수, LA 기윤실 공동대표)
지난해 11월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었다. 트럼프의 인종주의, 백인 우월주의, 미국 제일주의를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의미를, 트럼프라는 돌출아의 횡포가 사라지고 미국은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 민주주의를 회복한 것이라고 간단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우선 지적할 것은, 트럼프는 코로나19 사태와 경제 침체, 비정상적인 퍼스낼리티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에서 미국 국민 46.9%의 지지와 25개 주의 지지를 얻어내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미국 국민의 상당수가 트럼프의 백인 위주의 극우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미국 우선주의라고 불리는 비 인도주의적 입장이 기존 정치 과정의 규칙을 무시하면서 폭력적으로 표출되어 폭도들의 국회의사당 점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가져왔다. 미국 경제,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 주도의 세계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고 미국의 세계 제패가 불확실해지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기존의 게임의 법칙을 무시하고 폭력을 써서라도 자신들의 단기적 이익을 지키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에 희생물로 등장한 것이 이민자, 유색 인종, 그리고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중국 등의 신흥 산업국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극우세력은 다원주의가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미국에 나타날 수 있는 미국판 나치라고 할 수 있고 이들이 이제 정치 세력화한 것은 틀림없는데, 여기에 남부 복음주의자들이 가세하고 있다. 아마 미국 정치는 정치적 헤게모니를 재탈환하려는 극우 세력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사람들과의 투쟁으로 혼란을 겪어야 할 것이다.
이 와중에 78세 고령의 노숙한 정치인 바이든이 권좌에 올랐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정치권 밖에 머물렀던 트럼프와는 달리, 20대 청년기부터 평생을 미국 정치권의 중심에서 일해 온 사람이고, 특히 외교 분야에서는 상원 외교위원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여 전문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바이든은 미국이 세계에서, 특히 동북아시아에서 패권을 잃어가고 있음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는 중국을 미국에 도전하는 가장 큰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호주, 인도, 미얀마, 한국, 일본, 타이완을 엮는 대중국 포위 정책을 계속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다시 말해, 동북아에서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냉전 체제를 구축하려 할 것이다. 이 점은 트럼프의 정책과 큰 차이가 없고, 민주, 공화 양당을 비롯한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2월 10일, 바이든은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전화 통화 중에 홍콩, 신장 등의 인권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중국 정부의 비위를 거슬렀고, 시진핑은 내정 간섭을 하지 말라는 식으로 받아쳤다고 한다. 동북아에서의 미·중 갈등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다.
다만, 바이든은 일본, 인도, 타이완 등의 이해관계도 이해하려는 입장에 있다는 점에서만 트럼프의 일방적 미국 우선주의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미 바이든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 부통령으로서 한국을 방문해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중국이 아닌 미국의 편을 들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압력을 행사한 적도 있다. 바이든의 외교 진용에 속한 토니 블링큰, 제이크 설리번 등은 2015년 한·미·일 군사 동맹을 위해 위안부 합의를 밀어붙인 주역들인데, 이들이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동조를 일관되게 밀고 나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일본과는 독도 문제와 같은 영토 문제의 갈등이 있는 반면, 중국과는 영토 분쟁 가능성이 적을 뿐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보다 더 큰 교역 상대국이라서 반중국 정책을 취할 때 입을 손실은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중국은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이기도 하므로,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대북 통일 정책을 위해서라도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동북아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냉전 구도에서 대한민국이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미국과의 충돌은 감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이든은 외교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협상의 주도권을 쥐려 하지 않고, 오랜 경험을 지닌 관료들에게 일차적인 협상을 맡기는 방법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정책 수립이 상당 부분 관료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외교 국방 정책 역시 국무성, 국방성, CIA, 재무부, 상무부 등의 보수적인 관료들의 의사에 따라 수립되고 집행되리라 전망할 수 있다.
바이든이 이끄는 미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갈등 요소는 대북 정책에서도 두드러진다. 우선, 바이든은 트럼프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북한의 집권자 김정은을 독재자(dictator)이자 폭군(tyrant)으로 불렀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는 북한 체제를 북한 백성의 인권을 짓밟는 비도덕적 체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김정은 통치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다.
김정은의 외교 정책의 목표가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국제 정치의 일원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인정을 받아 체제 안정을 보장받는 것이라 한다면, 바이든의 북한 인식은 북한의 외교 방향에 가장 큰 장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월 7일, 북한 문제에 대해 언급하며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을 자극할 뿐 아니라, 북한과의 원만한 대화를 위해 인권 문제를 언급하지 않으려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도 상충하는 것이다.
바이든에 의해 국무부 동북아 담당 부차관보에 임명된 박정현(Jung Park)은 ‘대북 제재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최근 발행한 그녀의 책 『비커밍 김정은』(Becoming Kim Jong Un)에서 말했고, 대한민국 국회가 대북 전단 금지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서는 ‘북한의 비위를 맞추려고 대한민국의 언론의 자유를 훼손시킨 행위’라고 직설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으며, 대북 경제 제재를 계속할 것을 역설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2월 9일, 스콧 버스비 국무부 인권 담당 부차관보는 북한에 전단을 보내는데 앞장섰던 박상학 씨를 만나 대북 전단 금지법에 대해 의논했다고 한다.
신임 국무장관 토니 블링큰은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북한 정책의 전면적 재검토를 언급하며 제제와 인센티브를 함께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후보 시절 트럼프와의 토론 시에 ‘북한이 핵 능력을 감축하는 구체적 모습을 보이기 전에는 정상 회담은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북한의 핵 문제가 바이든이 직면한 외교 문제임을 직시하고, 단계적으로 북한의 핵 폐기 혹은 핵 동결을 위해 접근하겠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협상의 가능성은 열어놓은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일본 등 제3국을 이 문제 해결에 끌어들이겠다는 것과 실무자들의 협상이 먼저 있어야 함을 이야기한 것을 보면, 단기간에 대북 문제의 긍정적 해결은 나타나지 않을 듯하고, 당분간 대북 경제 제재는 계속되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 가지 기대하는 바는, 바이든의 인권 중시 정책이 미국인, 혹은 한국인들의 인도주의적 북한 돕기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였으면 하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기독교윤리실천운동도 북한 지원 사업을 여러 가지로 벌이고 있는데, 지난 몇 해는 트럼프의 대북 제재 정책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고통받고 있는 형제를 도와주자는 운동이 미국 정부의 제재로 차질을 빚으며 많은 좌절과 혼란을 겪어야 했는데,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 이후에는 기독교인들이 활력 있게 북한 동포들을 껴안을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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