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유튜브와 블로그에 퍼져 있는 밀러 선교사의 찬송가 이야기는 허구이다. 가짜 언더우드 기도처럼 밀러 찬송가도 가짜 이야기로 감동을 짜내고 있다. 밀러와 안나 부인은 다섯 자녀를 낳았고, 세 딸은 잘 자랐으며, 두 아들만 죽었다. 모든 자녀와 부인을 잃고 작사한 찬송이 아니라, 세 딸이 잘 자라는 과정에서 두 아들과 부인을 잃은 밀러 목사가 번역한 찬송이다.(본문 중)

밀러 선교사의 찬송 “예수님은 누구신가” 배경은 각색된 허구

:감동을 자아내기 위해 진실과 허구를 섞는 이야기는 그만 만들자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

 

다음과 같은 각색된 감동적인 이야기가 지난 4-5년간 유튜브, 블로그,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널리 퍼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로 생명이 위협받고 질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늘어나자, 목사들이 이 이야기를 예화로 널리 사용하고 있다. 밀러(Frederick Scheibler Miller 閔老雅, 1866-1937) 목사와 그 부인 안나 밀러(Anna Reinecke Miller, 1864-1903. 6. 17)에 관한 이야기다. 밑줄 부분은 사실이 아니다.

1892년 조선 땅에 복음을 전하고자 들어온 젊은 선교사 부부가 있었습니다. 20대 중반의 프레더릭 밀러와 안나 밀러라는 선교사 부부였습니다. 아이가 없었던 부부에게 하나님은 조선 땅을 밟은 지 6년 만에 첫아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쉽지 않은 선교 사역 중에서 얻은 아들은 부부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첫돌을 맞기도 전,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부부는 아이를 양화진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3년 뒤 1902년 3월 7일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도 태어난 지 하루 만에 하나님 품으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두 아이를 잃은 슬픔을 안고 부인인 안나 밀러 선교사님도 1903년, 38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 모든 일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조선 사람들이 밀러 선교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전하는 예수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당신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이오?”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 질문이 밀러 선교사의 마음속에 자리잡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는데,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라고 하셨는데, 지금 자신의 곁을 떠난 두 아이와 아내를 생각하니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수 믿으면 산다고 했는데, 선교사 가족을 보니 그것도 아니네’ 하면서 조롱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선교사 편을 들면서 그렇지 않다고 소리치는 조선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투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밀러 선교사님은 “도대체 예수가 누구이기에 당신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이오?”라는 질문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밀러 선교사님은 영적인 일을 육적인 방법으로 해석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해석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때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예수가 누구이기에 당신에게서 두 아이를 빼앗아가고 아내마저 데려가셨단 말이오? 도대체 예수가 누구이기에 당신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이오?”라는 질문에 밀러 선교사님, 한국명 민로아 선교사님은 영적으로 대답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하트의 곡에 가사를 새로 지어서 다음 찬송을 만들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두 자녀와 아내를 잃은 고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발견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 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란 말이오?”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9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민로아 선교사님이 쓰신 가사에는 고난의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만난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생명의 떡으로 오셔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도 있습니다.

 

1. 가사는 유명한 찬송 작사가 하트가 쓴 곡의 번역이다. 먼저 확인할 것은, 이 찬송은 조셉 하트(Joseph Hart, 1712∼1768) 목사가 1757년 개종하면서 작사한,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밀러 목사가 번역하여 『찬셩시』(1905년) 제52장 “쥬는 풍셩함”(새찬송가 96장)으로 실은 것이다. 밀러 목사가 새로 작사한 것이 아니다.

 

ⓒ옥성득.

 

밀러는 한국어에 능하여서 1898년 장감 연합 찬송가 『찬셩시』에 다음과 같은 여러 찬송 곡을 번역했다. 4장 “감사하는 인민아 곡식 거둔 찬미해”, 6장 “영화로신 성신여 나의 맘에 비취어”, 19장 “친애한 이 죽으니 우리 눈물 흘리고”, 36장 “슬픈 맘이 있는 자 어디 있든지 불쌍히 여기는 주 앞에서”, 37장 “아버지여 나의 맘을 맡아 다스리시고”, 53장 “우리 다시 만나 볼 동안 하나님이 함께 계셔” 등 지금도 거의 그대로 애창하는 유려한 번역이었다.

 

2. 각색된 글을 읽으면 자녀들이 모두 죽은 것처럼 오해할 수 있으나, 그 전에 태어난 세 딸은 잘 자랐다. 첫 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다섯 명이었는데, 다음 세 명이 생존했다. 1909년 밀러가 보고한 세 자녀는 다음과 같다.

 

서울의 총영사가 확인, 보고한 밀러 가족 등록부.1) ⓒ옥성득.

곧, 밀러 부부가 한국에 도착한 1892년 11월 이후 약 2년 만인 1894년 10월 7일에 첫 딸 넬리안(Nellian Newton)이 태어났으며, 1909년에 중국 지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이어 2년 후인 1896년 3월에 둘째 딸 리셋(Lissett Reinecke)가 태어났으며, 역시 지푸 학교 재학 중이었다.

만일 널리 퍼져 있는 글대로 내한 후 6년 만에 첫아들이 태어났다면, 그는 1898년 가을에 태어나야 하고,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사망했다면 1899년 봄이나 여름에 사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첫아들은 1898년 3월 2일에 태어났다.2) 그는 10월에 사망했다. 그 3년 뒤(내한 9년 차) 1902년 3월 7일에 둘째 아이가 태어난 것처럼 묘사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다섯째 아이가 태어났으나, 다음 날 사망했다.

 

3. 안나 밀러 부인의 사망 병명은 복막염이었다. 안나 밀러 부인은 2년마다 자녀를 출산하면서 건강이 좋지 못했다. 1898년 3월 넷째를 출산하고 10월에 유아가 사망하자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다. 밀러 목사는 가을에 사역을 하지 못하다가 11월이 되어서야 조사 김흥경과 함께 곡산 등 지방 전도에 나설 수 있었다. 1899년 2-3월에 건강을 회복한 후, 부부는 4월에 안식년 휴가로 미국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로 갔다. 이곳은 아내가 자란 도시로 처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안식년으로 건강을 회복한 밀러 부부에게 뉴욕에서 셋째 딸 안나가 3월 13일에 태어나 기쁨을 주었다. 다섯 식구는 1900년 4월 서울로 돌아왔다.

2년 후 1902년 3월 7일에 밀러 부인은 다섯째(둘째 아들)를 출산했으나 이튿날 사망하는 슬픔을 맛보았다. 30대 중반에 출산한 넷째에 이어 다섯째가 바로 사망하자, 그녀는 깊은 우울감에 빠졌다. 건강도 악화되어 1년 넘게 병상에 있다가 1903년 6월 17일 사망했다. 병명은 복막염이었다. 양화진에 장사했다. 38세 5개월을 이 땅에서 보내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밀러 목사는 아내 병간호로 한 해 정도 지방 전도는 조사들에게 맡긴 채 서울에 머물러 있었다. 아펜젤러를 잃은 지 1년 만에 다시 서울 선교사들은 손 접대하기를 기뻐했던 밀러 부인을 잃는 슬픔에 빠졌다. 그녀가 평소 출석했던 연동교회는 민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장례식에 참석했다. 미국 북장로회 월간지는 밀러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1892년부터 한국 선교를 위해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인생을 살았다고 평가했다.3)

밀러 목사는 이후 1904년 도티와 결혼하고 1905년 6월 청주 선교 지부에 부임했다. 그곳에서 함께 사역하던 아내 도티가 1930년에 소천하자, 1933년에는 릴리안(Lillian Dean)과 결혼하여 세 번째 아내를 맞았으나, 그녀도 밀러 목사가 사망한 1937년에 죽었다. 둘째와 셋째 부인과는 나이가 들어 혼인했으므로 자녀가 없었다. 밀러 목사는 선교지에서 선교사의 혼인은 평온한 본국의 경우와 달리, 예외적으로 아내 사후 1-2년 정도에 재혼하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래야 선교 사역을 지속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론

1. 현 찬송가 95장 “예수님은 누구신가?”는 선교사 밀러(민로아) 목사가 작사한 곳이 아니다. 하트 목사의 찬송을 번역한 것이었다.

2. 이 찬송가는 내한 6년과 8년째, 늦게 얻은 두 아들이 연속으로 죽고 자녀가 없는 슬픔 가운데서 쓴 것이 아니다. 그 전에 세 명의 딸이 태어나 잘 자라고 있었다. 다만 아내가 30대 중, 후반에 얻은 두 아들이 유아 때 사망한 슬픔은 겪었다. 마치 자녀를 모두 잃은 슬픔 중에서 쓴 곡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3. 초기 내한 선교사의 경우 아내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녀 4-5명을 양육하고 홈스쿨링으로 가르치면서, 남편 뒷바라지, 한국인 여성 가르치기, 선교회 회원 돌보기 등 1인 4역을 힘겹게 감당했다. 그 와중에 일찍 사망하는 이들이 다수 있었다. 피츠버그 출신의 한 여성, 밀러 부인도 한국 선교를 위해 쓰임을 받고 희생의 관제가 되었다.

 


1) “Certificate of Registration of American Citizen”, Dec. 8, 1909. www.ancestry.com.

2) “Notes and Comments: Births”, Korean Repository (April, 1898), 160.

3) Assembly Herald (August 1903),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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