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행의 주체가 작정하고 최후의 저항에 나선 옛 자아이든, 오랜 세월 몸에 익어버린 습관이라는 짐승이든, 장 발장의 정신은 자신의 행위를 보고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자신의 실체를 드러낸 그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어떻게든 아이에게 돈을 돌려주려고 했다.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오래오래 울면서 지난날의 삶을 돌아보았다. “그것은 끔찍스러워 보였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바라보았는데, 그것은 무시무시해 보였다. 그렇지만 다사로운 햇빛이 그 생애와 영혼 위에 비치고 있었다.” (본문 중)

홍종락(번역가, 작가)

 

은혜의 공격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 발장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캐릭터다.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쳤다가 19년을 복역한 기구한 인생 전반부도 놀랍지만, 출옥 후에 그가 보여준 변화된 인생은 많은 감동을 안겨준다. 그런데 장 발장이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의외로 많이들 모르는 것 같다.

19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출옥한 지 나흘째. 장 발장은 돈이 있는데도 잠자리도, 음식도 구할 수 없었다. 위험인물로 찍혀 호텔에서도, 싸구려 여인숙에서도 그를 받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지역을 돌보는 사제이자 절대 문을 잠그지 않고 모두에게 문을 열어주는 미리엘 주교의 환대를 받는다.

밤중에 잠이 깬 장 발장은 저녁 식사 시간에 봐두었던 은그릇들을 훔쳐 달아난다. 다음날 아침에 주교의 여동생은 은그릇을 도둑맞은 데 분개하지만 주교는 그것이 원래 자기 것이 아니었다며 여동생을 다독인다. 그리고 얼마 후 헌병에게 잡혀 오는 장 발장. 헌병들은 장 발장이 주교의 은그릇을 훔쳤다고 생각하지만, 주교는 장 발장의 말대로 자기가 준 것이 사실이고 빠뜨리고 갔다며 은촛대까지 챙겨 준다.

헌병들이 자리를 떠난 후, 주교는 “금방이라도 실신할 사람” 같았던 장 발장에게 다가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잊지 마시오. 결코 잊지 마시오. 이 은을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쓰겠다고 내게 약속한 일을.” 약속한 기억이 없던 장 발장은 어리둥절할 뿐. 주교의 말이 이어진다. “장 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값을 치렀소.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영벌의 정신에서 끌어내 천주께 바친 거요.”

이 터무니없는 은혜 앞에서 장 발장은 어떻게 했을까? 도망치듯이 나왔다. 그리고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뭔가 엄청난 일을 만났는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20년간 자신이 사소한 잘못에 대해 대단히 부당한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했고 그 기간 동안 냉혹한 마음을 키워왔다. 그런데 주교의 뜻밖의 행동 앞에서 마음이 누그러지고, 억울하게 당한 자기의 불행에서 얻은 무서운 침착성이 흔들리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리고 극심한 불안감을 느꼈다. “그는 차라리 헌병들에게 끌려가서 정말 감옥살이를 했더라면 좋았겠다고,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더라면 덜 불안했으리라.”

 

영화 <레미제라블> 스틸컷.

 

옛 자아의 역습 또는 습관의 반격

 

주교의 집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온 장 발장은 주교가 있는 도시에서 30리 정도 떨어진 어느 덤불에서 넋 놓고 앉아있었다. 그때 굴뚝 청소부 소년 프티제르베가 하루 품삯으로 받은 돈을 튕기며 오다가 떨어뜨린다. 마침 그 돈이 떼구루루 굴러 앞에 앉아있던 장 발장의 발 옆에 떨어진다. 장 발장은 큰 발로 동전을 밟고 시치미를 뗀다. 소년은 발 좀 치워달라고, 돈 돌려달라고 간청하지만, 장 발장은 되레 겁을 주어 소년을 쫓아버린다.

그다음, 한참을 멍하게 있던 장 발장은 문득 자신의 행동을 깨닫는다. 그 행동으로 드러난 자신의 실체에 화들짝 놀라 소년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소년은 이미 울면서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장 발장은 만나는 사람마다 아이를 못 봤느냐고 묻고 달이 뜰 때까지 소년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커다란 돌 위에 쓰러진다. 그리고 “나는 불쌍한 놈이다!”라고 부르짖으며 울기 시작한다. 19년 만의 첫 울음이었다.

그는 왜 프티제르베의 돈을 훔쳤을까? 소설 속 친절한 화자는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 그것은 “그가 형무소에서 가져온 못된 생각의 마지막 효과이자 최후의 노력 같은 것”이었다. 옛 장 발장이 어디 그렇게 순순히 물러날 것 같으냐? 하면서 마지막 저항, 최후의 몸부림을 했다는 거다. 둘째, 훔친 것은 그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새로운 빛 앞에서 지성이 어찌할 바를 몰라 몸부림치는 사이에 “습관적이고 본능적으로 그 돈 위에 발을 올려놓은 것은 짐승”이었다. 너무나 강력한 빛 앞에서 그의 정신과 판단력과 양심이 허둥대고 있던 사이에 19년간 몸에 익은 습관의 덩어리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는 자(이를테면 주교) 또는 약자에겐 어김없이 발톱을 드러내는 지각없는 짐승이 불쑥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악행의 주체가 작정하고 최후의 저항에 나선 옛 자아이든, 오랜 세월 몸에 익어버린 습관이라는 짐승이든, 장 발장의 정신은 자신의 행위를 보고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자신의 실체를 드러낸 그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어떻게든 아이에게 돈을 돌려주려고 했다.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오래오래 울면서 지난날의 삶을 돌아보았다. “그것은 끔찍스러워 보였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바라보았는데, 그것은 무시무시해 보였다. 그렇지만 다사로운 햇빛이 그 생애와 영혼 위에 비치고 있었다.”

 

두 갈래 길

 

주교를 통해 장 발장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신부의 용서는 최대의 공격이요 가장 무서운 타격이었다. … 자기가 만약 그 인자함에 저항할 수 있다면 자기의 냉혹한 마음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되고 말리라. 만약 그것에 지고 만다면, 다년간 남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자기 마음속에 가득 채워지고 자기 자신도 기쁘게 생각하던 그 증오심을 포기해야 하리라.” 그렇기 때문에 장 발장은 극렬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20년 가까이 그를 붙들어 준 삶의 원동력을 쉽게 놓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분노가 주는 힘과 기쁨, 자기의(自己義)가 주는 긍지는 참으로 강하고 크다.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일종의 죽음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는 자기 앞에 놓인 갈림길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너에게는 더 이상 중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차후에 네가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가장 나쁜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 너는 주교보다 더 높이 오르거나 죄수보다 더 아래로 다시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어둠 속에 있던 그는 주교를 통해 주어진 너무나 강렬한 빛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그는 이미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것을 문학 속 캐릭터의 일로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어떤 경로로든 은혜를 접한 모든 사람이 동일한 선택의 기로에 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오히려 더욱 경성하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나는 C. S. 루이스가 『시편 사색』에서 지적한 사실을 두려운 마음으로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인간의 영혼 속에 초자연이 들어오면 인간의 영혼에는 좋은 쪽과 나쁜 쪽 모두를 향해 새로운 가능성이 활짝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기 시작합니다. 경건과 사랑과 겸손을 향해 나아가는 길과, 영적 교만과 자기 의와 박해의 광기로 나아가는 길이 그것입니다. 아직 영혼이 깨어나지 못했을 때의 그 평범한 미덕과 악덕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우리를 훨씬 나쁜 존재로 만듭니다. 온갖 악인들 중에서도 가장 악한 사람은 종교적 악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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