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 130년 역사에서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분야가 많지만, 통계 정리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통계 숫자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지만, 일제 강점기 교세 통계는 선교부와 총독부가 동시에 매년 조사하여 발표하였으므로 신빙성이 있고 유의미한 사실을 담고 있다. 오늘은 1930년대 장로교회 통계를 보면서 그 의미를 생각해 보자. (본문 중)
옥성득(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
한국 개신교 130년 역사에서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분야가 많지만, 통계 정리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통계 숫자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지만, 일제 강점기 교세 통계는 선교부와 총독부가 동시에 매년 조사하여 발표하였으므로 신빙성이 있고 유의미한 사실을 담고 있다. 오늘은 1930년대 장로교회 통계를 보면서 그 의미를 생각해 보자.
장로교회 희년, 1934년 통계
다음은 1935년에 발간된 『조선예수교장로회희년기념화보집』(민속원 복간, 2020)에 실렸던 노회별 교세 지도이다. 숫자로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에 붉은색으로 교세의 크기를 표시했다. 중간에 있는 지도는 산동 선교지 동3성을 표시하고 있다. 다른 곳과 달리 타문화·타언어권 선교지라 따로 표시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장로교회 형편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1934년 개신교 첫 희년 때 장로교회가 전체 기독교인(천주교 포함)의 약 55%를 차지하고, 감리교회는 10% 수준이었다.
둘째, 장로교회에는 26개 노회가 있었고, 평양노회와 황해노회가 합계 6만 명 이상으로 두 노회만 해도 전체 28만 장로교회 교인의 22%가 넘었다. 황해도와 평안도, 곧 서북 지역의 교세가 2/3로 압도적이었다. 해방 이후 1953년까지 서북과 경상도가 손을 잡으면 3/4 세력이 된다.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보수주의가 강세인 이유이다.
셋째, 전라도(남장로회 선교 지역)보다 경상도(북장로회와 호주장로회 선교 지역)에 장로교인이 더 많았다. 물론 인구도 경상도가 더 많았지만, 해방 이전 전라도에는 기독교인 비율이 높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현재 경상도보다 전라도의 기독교인 비율이 높은 것과 비교된다. (오늘날에는 흔히 서울, 경기, 충청, 전라까지를 한국의 Bible Belt로 부르기도 한다.) 해방 이후 경상도보다 전라도에서 기독교의 성장률이 더 높았던 이유는 조사가 필요하다.
1939년 통계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에서 출간한 『조선에서의 종교 및 향사 요람』(朝鮮に於ける宗敎及享祀 要覽)[소화 15년(1940)]에 있는 장로교회 통계를 보자. 1939년 말에 조사한 자료를 1년 후에 발간한 것이다. 이 요람의 71쪽에 기독교 신도 수가 도별로 자세히 정리되어 있는데, 천주교와 러시아정교회에 이어 조선기독교 장로회 통계만 도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조선인 장로교인은 총 286,384명으로 전체 기독교인(천주교 114,817명, 정교회 132명, 성공회 8,463명 포함, 외국인 포함) 508,944명 중 56.27%를 차지했다. 감리교인은 53,026명(10.42%)으로 두 교파를 합하면 약 77%였다. 장로교인이 감리교인보다 9배 정도 많았다.
도표에서 청색으로 표시한 미국 북장로회 신자가 절대다수로 경기 7,525명, 충북 2,094명, 충남 1,099명, 황해 43,180명, 평남 50,717명, 평북 77,819명, 총 182,434명이다. 이 중 평북에 신자가 가장 많다. 북장로회 신자는 전체 장로교인의 63.7%였다.
갈색으로 표시한 미국 남장로회는 전남 17,123명, 전북 15,384명, 총 32,507명으로 장로회 교인의 11.35%를 차지했고, 황색으로 표시한 호주장로회는 경남에 19,302명으로 6.7%이며, 적색으로 표시한 캐나다연합교회는 함남 9,297명, 함북 10,387명, 총 19,684명으로 6.87%였다. 함경도와 북간도의 교인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경기 서울의 교인도 그 수준에 불과했다.
황해, 평남, 평북의 서북 지역 장로교인만 171,716명으로 전체 장로교인의 약 60%가 된다. 즉, 서북 장로교인이 전체 장로교인의 60%를 차지했으며, 평안남도나 평안북도의 한 도에 있는 장로교인의 수가 전체 감리교인의 수를 능가했다. 황해도 장로교인이 전라도 전체 장로교인보다 10,000명이 많았다. 평안남도의 장로교인이 전라도와 경상도를 합한 수만큼 되었고, 평안북도의 장로교인은 전라도, 경상도, 함경도, 경기도, 충청도를 합한 장로교인보다 수가 많았다.
신학적으로 장로교회는 1927년 이후 근본주의를 공식적 신학으로 채택해 나가기 때문에, 그 노선을 따라간 황해도, 평안도, 전라도, 경상도의 신학은 보수적(근본주의적)이었고, 이에 저항한 경기도, 충청도, 함경도/북간도 지역을 진보 신학 지역으로 볼 경우, 이곳의 교인 수가 30,402명이므로 장로교인의 10.6%만 진보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곧 9대 1의 비율로 보수가 압도적이었다.
해방 후 이들의 상당수가 남한으로 이주, 피난했으므로, 이런 분석은 해방 이후 남한 기독교의 구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리하면, 대략 장로교인 중 서북이 차지하는 비율이 60%, 보수적 신학을 따르는 신자가(전라도, 경상도 장로교인 포함) 9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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