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맹세나 약속은 그 자체로는 악한 것이 아니지만, 그것에 깃들기 쉬운 악들이 있습니다. 즉, 교묘한 진실 감추기, 교만, 허풍, 불성실 등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말에서 이런 악을 뿌리 뽑기 위해 맹세 자체를 금지하신 것입니다. 맹세의 말이 없어도 우리의 입술로 담백하게 진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중)

노종문(좋은나무 편집주간)

 

33또한 너희는 옛사람에게 “헛된 맹세를 하지 말고, 주님께 네 맹세한 것을 갚아라”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다. 34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전혀 맹세하지 마라. 하늘로도 하지 마라.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35땅으로도 하지 마라. 그것은 그분의 발 받침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 대해서도 하지 마라. 그것은 위대한 왕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36너희 머리로도 맹세하지 마라. 너희가 머리카락 하나도 희거나 검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37너희의 말은 예면 ‘예’, 아니면 ‘아니오’가 되게 하라. 이것들보다 더한 것은 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마태복음 5:33-37)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이 맹세 금지의 명령도 배경 이해가 필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구약 성경의 맹세 관련 계명(민 30:2; 신 23:21-23)이 사람들의 교묘한 악에 의해 무용지물이 되어버려, 맹세가 진실을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가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진실을 말하겠다고 하는 맹세가 어떻게 진실을 가릴 수 있을까요? 한 가지 사례는, 진실을 말하되 진실의 전부가 아닌 일부만 말함으로써 사람들을 오도하는 경우입니다. 이처럼 입술의 말과 마음의 의도가 다른 말이 통용되는 사회는 악한 사회입니다. 반면, 말의 신실함은 악인과 의인을 가르는 표지가 됩니다(시 24:3-4). 예수님보다 40년 후에 태어난 역사가 요세푸스는 당시의 유대교 분파였던 에세네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그들(에세네파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면 모두 맹세보다 더 강력하다. 그들은 맹세를 위증보다 더 악한 행위로 보고 맹세를 하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호소하지 않고는 도무지 신임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유죄인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1)

 

예수님도 이 맹세 금지 명령을 통해, 제자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통용되는 언어에는 교묘한 책략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무익한 사회적 관행으로 전락한 맹세의 습관을 제자 공동체 안에서는 아예 폐지해 버리시는 것입니다.

교묘한 오용 외에 맹세를 타락시키는 또 다른 방법은 자만심과 허풍으로 말하는 것입니다(비교, 약 4:13-16). 맹세는 미래에 대한 약속을 품고 있는데, 쉽게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약속은 인간사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약속은 신중하고 무거워야 합니다. 체면 차리기를 위해 헛된 약속을 하고 나중에는 이런저런 변명으로 약속을 쉽게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반하는 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말의 고귀함을 모독하는 짓입니다.

 

 

이처럼 맹세나 약속은 그 자체로는 악한 것이 아니지만, 그것에 깃들기 쉬운 악들이 있습니다. 즉, 교묘한 진실 감추기, 교만, 허풍, 불성실 등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말에서 이런 악을 뿌리 뽑기 위해 맹세 자체를 금지하신 것입니다. 맹세의 말이 없어도 우리의 입술로 담백하게 진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이 명령이 목표로 삼는 바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오직 우리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여 모든 것들이 그분을 향해 자라게 합시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 그러므로 여러분은 거짓을 치워버리고 각 사람이 그의 이웃에게 참된 것을 말하십시오. 우리는 서로에게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15, 25)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맹세 금지 명령이 법정에서의 맹세나 국기에 대한 맹세 등 시민으로서의 맹세를 금지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맹세는 약속의 일종이므로, ‘맹세’라는 이름의 유무보다는, 선한 약속과 악한 약속을 분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맹세나 약속은 교묘히 진실을 감추는 것, 교만, 허풍, 불성실함이 깃들 때 악해집니다. 둘째로, 예수님과 사도들은 국가의 법이 공동선을 위해 유익한 작용을 할 때는 존중하고 순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성전 세를 내신 일(마 17:24-27)이나, 악의 억제를 위해 일하는 정부의 권위를 존중하라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롬 13:1-7)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셋째로, 법정에서의 맹세나 국기에 대한 맹세가 시민에게 무엇을 약속하도록 요구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만일 법정에서의 맹세가 ‘최선을 다해 진실을 말하겠다’라는 약속이고, 충실한 실행이 가능한 일이라면, 그 맹세는 교만이나 허풍이 아니므로 악한 것이 아닙니다. 또, 국기에 대한 맹세가 하나님보다 국가에 더 충성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공동선을 위해 시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는 약속이라면, 그 맹세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국가가 하나님보다 더 궁극적인 충성을 요구하려는 낌새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때 요구되는 맹세나 약속은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국가는 권력을 남용하여 타락할 수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요세푸스, 『유대전쟁사』 2, 135. 스콧 맥나이트, 『산상수훈』(에클레시아북스, 2016), 137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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