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과 <배틀그라운드> 그리고 <배틀로얄>, 이 세 가지 콘텐츠를 동시에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바로 ‘경쟁’과 ‘공정’이다. 세 콘텐츠 모두 극단적 적자생존을 추구하는 극한의 경쟁 공간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경쟁을 시킨다. 단, 그 공간에 처음 입장할 땐 누구도 지닌 것이 없기 때문에 기회의 평등을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본문 중)

이명진(기윤실 간사)

 

<오징어 게임>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흥행하게 된 이 작품은, 지난 10월, 넷플릭스가 정식으로 서비스되는 모든 국가에서 1위를 기록한 첫 작품이 되었고, 세계 곳곳엔 <오징어 게임> 체험관이 생겨났으며, 각종 패러디와 게임이 확산될 만큼 대단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드라마는 이름 모를 섬에 갇힌 456명의 참가자가 여섯 가지 게임을 하며 1위에게 주어지는 상금 456억 원을 두고 경쟁한다는 내용이다. 게임으로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줄다리기’ 등 옛날에 어린이들이 자주 했던 놀이를 하는데, 패배자는 즉시 목숨을 잃는 소위 ‘데스 매치’ 방식으로 진행된다. 참가자는 주로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인데, 뇌종양에 걸린 노인, 사기를 당한 새터민, 투자에 실패해 거액의 빚을 진 엘리트 금융인,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채무자, 임금을 체불 당한 이주 노동자,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 조폭 등이 등장한다. 이들에겐 터무니없이 잔인한 게임을 중단시킬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지옥 같은 현실의 삶을 벗어날 통로로 또 다른 지옥을 선택하고, 게임을 계속한다.

 

이 드라마를 제작한 황동혁 감독은 제작 발표회 인터뷰에서 이 오징어 게임의 제목에 대해 “어릴 적 했던 놀이 중 가장 격렬한 놀이이며, 가장 좋아했던 놀이이기도 했고, 현대 경쟁 사회를 가장 상징적으로 은유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원래 이 작품의 대본은 2008년에 처음 구상해 2009년에 완성했지만, 당시엔 낯설고 어렵고 생경하여 상업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 작품화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십여 년이 지나 다시 이야기를 꺼내 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부동산, 코인 열풍 등 일확천금을 노리는 살벌한 게임이 현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었고, 이 작품을 다시 본 사람들이 정말 재미있고 현실감이 있다는 피드백을 주었던 것이다.

 

<오징어게임> 초대권, ⓒpixabay.

 

<배틀그라운드>

 

사실 국내에서 최후의 1인만이 살아남는 극한의 서바이벌 방식의 콘텐츠가 유행한 것은 <오징어 게임>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3월 출시해 흥행에 크게 성공했던 게임 <배틀그라운드>(Player Unknown’s Battlegrounds)는 극한의 서바이벌 ‘배틀로얄’ 1)장르의 성공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국내 회사 블루홀이 개발해 세계 최대 플랫폼 회사인 스팀에서 2017년 3월 24일 정식 출시한 이 게임은, 단기간에 급성장하며 같은 해 7월, 누적 매출 1억 달러 돌파 등 기네스북에 일곱 개의 세계 기록을 올렸다. 모바일 게임으로도 등장한 <배틀그라운드>는 2018년 누적 피시방 점유율 1위는 물론, 중국, 미국, 러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3,000만 장 이상 판매를 기록하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과 마찬가지로 <배틀그라운드>는 제한된 공간에서 최대 100명의 인원이 무기와 운송 수단 등을 활용, 최후의 1인이나 최후에 남는 한 팀이 되기 위해 경쟁을 펼치는 극단적 적자생존 게임이다. 이 게임은 기존 FPS(FPS: First-Person Shooter) 게임과 유사한 그래픽을 활용하고 전투를 위한 최소 액션 메커니즘을 따르면서도, 아이템 파밍(farming)2)절차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표는 생존 게임을 차용하는 등 다른 장르와 혼종성을 가진다고 평가받는다.3)

 

<배틀그라운드>가 흥행에 성공한 이유 중 다른 게임과 차별화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극단적 적자생존 방식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긴장감을 제공하고, 기존 FPS 게임들과 달리 ‘공정성’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배틀그라운드>는 게임을 시작할 때 모든 캐릭터를 맨몸의 비무장 상태로 전투 지역에 떨어지게 한다. 산발적으로 분포해 있는 수백 가지 아이템을 주워 무장하기 전까지는 맨손으로 전투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곳곳에 널린 무기 중 누가 좋은 것을 선점할 것인지는 운과 실력에 의해 결정된다. 그럼에도 이 게임이 유저들에게 공정하다는 인상을 주는 이유는, 현금 결제 서비스가 게임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FPS 게임들이 대부분 현금 결제 서비스를 통해 좋은 무기를 먼저 선점하게 하여 게임 시작부터 차등을 두었다면, <배틀그라운드>는 이를 과감히 거부하는 방식을 취했다. 물론 캐릭터의 옷이나 장갑 등 치장 아이템들을 유료로 판매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무기가 아니기에 게임의 승패에 직접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이는 현실 세계의 경제력이 가상 세계 게임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이전 게임들과 차별화된 마케팅이었다.

 

<배틀그라운드>에서 비무장 상태로 전투지역에 낙하하는 모습, ⓒbodnara.

 

 

<배틀로얄>

 

‘배틀로얄’ 방식의 콘텐츠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9년 출간된 다카미 코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배틀로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이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도 과거 만화방에서 이와 같은 서바이벌 만화들을 보다가 한국식 서바이벌을 생각해 냈다고 밝혔다.

 

<배틀로얄>은 2000년에 일본에서 먼저 개봉했고, 국내엔 2002년 4월에 개봉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일본은 ‘끝장난 나라’로 소개되며 실업률 15%, 실업자 천만 명, 등교 거부생 80만 명의, 청소년 범죄가 급증하는 곳이다. 이러한 일본에 “신세기 교육 혁명법”이라 명명된 BR(Battle Royale) 법이 제정됐고, BR법에 따라 전국의 중학교 3학년 4만 3천 학급 중 무작위로 한 학급이 뽑혀 강제로 무인도로 보내진다. BR법의 목적은 필사적인 싸움을 통해 가치 있는 어른을 양성하는 데 있으며, 이를 위해 무인도로 보내진 학생들에게 전투를 치르게 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납득되지 않는 명목을 따라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한 살인 게임을 시작해야만 한다. 말도 안 되게 잔혹한 규칙과 끔찍한 장면들이 영화 곳곳에 그려져, 한국에 개봉할 당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고 많은 이들에게 거부감을 주었다. 하지만 20여 년이 흐른 지금, 이와 비슷한 콘텐츠가 한국에서 만들어졌고,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 <배틀로얄> 스틸컷.

 

 

경쟁과 공정 그리고 능력주의

 

<오징어 게임>과 <배틀그라운드> 그리고 <배틀로얄>, 이 세 가지 콘텐츠를 동시에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바로 ‘경쟁’과 ‘공정’이다. 세 콘텐츠 모두 극단적 적자생존을 추구하는 극한의 경쟁 공간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경쟁을 시킨다. 단, 그 공간에 처음 입장할 땐 누구도 지닌 것이 없기 때문에 기회의 평등을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오징어 게임>은 5화의 소제목을 ‘평등한 세상’으로 정할 만큼 그것을 강조하며, <배틀그라운드>와 <배틀로얄>은 전투에 참여하기 전 모두가 비무장 상태이기 때문에 공정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 혹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날 때부터 주어지는 차이가 더 이상 좁혀지지 않는 곳이라고 여기고 이런 식의 기회의 평등에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모두의 차이를 고려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노력의 대가인 ‘능력’으로 차등을 두자는 논리가 현재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극단적 적자생존 구조를 옹호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회학자 오찬호의 말처럼 노력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사람마다 동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의 게임장에 들어설 때, 모두가 빈손으로 그곳에 입장했을지라도 그들이 지닌 타고난 신체 능력, 지능, 나이, 건강, 성별, 국적, 이전의 경험 등 이미 너무도 많은 요소에 차등이 존재했다.

 

<배틀그라운드>도 마찬가지다. 얼핏 보면 현실 세계 경제력이 가상현실 속 게임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배틀그라운드> 게임이 유행할 때 전국 피시방에 ‘고 사양 컴퓨터 업그레이드’ 열풍이 불었다. 드넓은 맵에서 산발적으로 떨어진 각종 무기들을 선점해야 하는 게임이다 보니 높은 사양의 그래픽이 필요했고, 더 넓은 모니터로 게임을 하면, 맵의 사각지대를 볼 수 있어 유리했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 <배틀로얄>과 마찬가지로 산발적으로 흩어진 무기를 선점하는 것은 철저히 ‘운’에 의해 결정되는데, 요행으로 극단적 적자생존을 결정짓는 공간을 공정하다고 평가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콘텐츠들이 흥행하며 우리의 시대정신과 맞물려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씁쓸하다. 극단적 적자생존을 목표로 하는 한국형 서바이벌 콘텐츠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서 흥행하는 현상이 한편으로 고무적일 수 있으나, 해당 콘텐츠들이 대변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성경적이거나 정의롭다고 평가하긴 어려울 것이다. <오징어 게임> 미술 감독 채경선은, 항상 경쟁에 치여 높은 곳만 바라보는 현대 사회를 표현하고 싶어서, 참가자들의 숙소는 콜로세움으로, 이동하는 통로는 개미굴처럼 표현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게임에 패배하여 죽은 참가자들의 시신을 소각하는 곳은 아우슈비츠를 참고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이런 모습이 되길 바라는 이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소수만 살아남는 무한 경쟁 사회, 피라미드 구조, 폭력과 혐오가 난무하고 능력주의적 공정이 지배하는 세상이 과연 정의로운 것인지, 이를 소재로 하는 콘텐츠들을 단순히 ‘재미’로만 소비할 일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1) 대혼전, 큰 싸움, 사투, 격렬한 논쟁을 뜻하는 단어로 주로 극단적 적자생존을 일컫는다.

2) 아이템을 취하는 일. 농사짓는 것과 비슷하게 구부린 자세를 보인 데서 유래한다(편집자 주).

3) 안진경, “배틀로얄 장르의 게임 다이나믹 고찰 – <배틀그라운드>를 중심으로”, Journal of Korea Game Society(JKGS), 2017. 5. 2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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