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EU의 녹색 분류체계 규정은 오랜 기간 과학기술과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현실적이면서도 미래를 지향하도록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EU의 전력 생산에서 태양광, 풍력 등을 사용하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38%로 화석연료의 37%를 넘어섰다. 이 덕분에 EU의 전력 생산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2015년 대비 29% 감소했다고 한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계속 하락하여 그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완성된 기술은 아니다. (본문 중)

성영은(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EU(유럽연합)의 행정부인 집행위원회가 EU 녹색 분류체계(taxonomy) 규정안을 확정하여 입법 기관인 유럽의회로 넘겼다. 이 규정안은, 화석 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산업이 무엇인지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자금이 친환경 산업이나 친환경기술 쪽으로 유입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이는 또한 2050년 탄소 중립(총 온실가스 배출 제로)을 달성하려는 목표의 일환이기도 하다. 유럽의회와 각국의 승인을 거치면 이르면 내년부터 법적 효력이 발효된다. 향후 법제화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이 예상되는 내용은,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있지만 원전(원자력 혹은 핵발전)과 천연가스 발전을 친환경 녹색 분류체계에 포함한 것이다. 마침 작년 말 우리나라도 녹색 금융 활성화를 위해 환경부에서 한국형 녹색 분류체계(K-Taxonomy) 가이드라인(지침서)을 발표했는데, 조건부로 천연가스는 포함했지만 원전은 뺐기 때문에 이 EU의 녹색 분류체계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될 정도이다. 아쉬운 것은 이 EU의 녹색 분류체계를 ‘원전이냐 신재생에너지냐’는 양자택일의 논쟁으로 끌고 가는 태도이다.

 

이번 EU의 녹색 분류체계 규정은 오랜 기간 과학기술과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현실적이면서도 미래를 지향하도록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EU의 전력 생산에서 태양광, 풍력 등을 사용하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38%로 화석연료의 37%를 넘어섰다. 이 덕분에 EU의 전력 생산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2015년 대비 29% 감소했다고 한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계속 하락하여 그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완성된 기술은 아니다. 그리고 자연에 흩어져 있는 에너지를 모아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것이라 자연의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작년 북유럽에 전례 없이 바람이 약해서 풍력 발전에 큰 차질이 생긴 것이 그 예이다. 태양광도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면 발전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그러니 여전히 EU 전기의 25%를 생산하는 원전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학적으로 기후 변화를 일으킨다는 온실가스 배출 면에서 보자면 전력 생산 시 원전이 그 배출량이 가장 적은 것은 사실이다. 원전의 경우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1kWh의 전기를 생산하는 데 있어 10~30g으로, 800g이 넘는 석탄이나 심지어 친환경이라 하는 천연가스의 400~500g보다도 훨씬 낮다. 신재생에너지인 태양광(40~80g)이나 풍력(10~30g)과 비슷하거나 이들보다도 오히려 약간 낮은 수준이다. 온실가스 감축이 정말 인류의 가장 큰 과제라면 원전 사용이 가장 좋은 과학적 해답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원전은 방사성 물질을 다루기에 안전 문제와 더불어 사용 후 핵폐기물 관리라는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우리의 모든 에너지의 원천인 태양이 이 원자핵에너지로 우리에게 에너지를 공급하지만,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이 핵에너지를 직접 다루기에는 여전히 위험 요소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점 또한 과학적인 내용이다. 그래서 EU는 이 점을 고려하여 원전을 조건부로 일정 기간 친환경에 넣기로 한 것이다. 조건의 내용은 2045년까지만 건설 승인을 하되 2050년까지 방사성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방안을 마련하는 국가에서만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현재 400~500g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천연가스 발전소의 경우, 2035년 이후 수소나 다른 탈탄소 연료로의 전환을 전제로 조건부 친환경으로 분류했다. 원전이나 천연가스 발전을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과도기적 중간 기술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EU의 이번 분류체계를 단기적인 시각으로 ‘원전이냐 신재생이냐’의 논쟁으로만 국한하여 볼 일이 아니다.

 

필자는 탈탄소를 지향하며 그린 수소 생산과 수소를 이용하는 연료 전지를 연구 개발하고 있다. 국내에는 이미 수소 연료 전지 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다. 이 기술들도 머지않아 신재생에너지 생산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신기술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필요로 한다. 특히 남의 기술을 베낄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세계 10대 기술 강국으로 신기술로 선두 경쟁을 해야 할 우리의 경우는 더 그렇다. 이 시행착오를 국가적으로 수용할 대책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 현재 우리나라의 전력 생산 구조는 여전히 기술 강국의 위상에 맞지 않게 석탄과 같은 화석 연료 비중이 높다(60% 이상). 신재생의 비중은 EU의 38%에 비해 7%로 턱없이 낮다. 그리고 원전이 우리나라 전력의 29%(2020년)를 생산할 정도로 그 비중이 높은 것도 현실이다. 이번 EU의 현실과 미래를 세밀하게 고려한 녹색 분류 체계 규정안 제출을 계기로 우리도 우리 미래 세대까지를 고려한 치밀한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그런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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