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은 책을 시작하는 첫 번째 문장을 뜻한다. 하지만 나는 어느 날 나에게 훅 들어와서 느닷없이 나의 삶을 뒤흔들어 놓은 문장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려고 한다. 우리는 바로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예전의 나와 느닷없이 바뀌어 버린 나, 이 중 어느 쪽이 진짜 나인지를 알 때부터 나의 삶은 나다운 나가 되는 여정을 시작한다. (본문 중)

이정일(작가, 목사)

 

소말리아에 아얀 히르시 알리라는 소녀가 있었다. 알리는 자라면서 분별력이 생겼고 그것이 생기자 왜 자신은, 자신의 엄마나 할머니는 그런 삶을 살았을까, 그리고 왜 아버지나 자신의 씨족이나 소말리아는 자기 자신의 삶을 찾는 데 실패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알리에게 훅 들어온 이런 생각이 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인생이란 가장 나다운 나와 만나는 긴 여정이란 생각을 가끔씩 한다. 하지만 인생을 나답게 사는 방법은 뭘까도 생각한다. 그러다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30대 초반에 귀농을 하거나, 70살이 넘어서 유튜버 일을 시작하고, 60살에 시니어 모델에 도전하는 이를 보면서 생각한다. 우리 곁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여전히 많구나.

 

위기철의 소설 『아홉 살 인생』을 읽으면 ‘어리다고 해서 인생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허를 찌르는 문장이다. 나에겐 이 문장이 위로를 주었다. 시나 소설을 읽다 보면 세상에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키워드가 존재하는데 그건 행복한 눈물처럼 무언가를 바라고 믿는 간절한 마음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느낀다.

 

루터의 생애 동안 일어났던 일

 

인공지능, 메타버스에서 보듯 앞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급속도로 변할 것 같다. 마르틴 루터도 15세기에 비슷한 일을 겪었다. 유럽의 지리상 발견들은 모두 루터의 생애 동안에 일어났다. 루터가 다섯 살 때 희망봉이 발견되었고, 아홉살 때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었다. 또 열다섯 살 땐 인도로 가는 항로가 개척되었다.

 

루터가 살던 시대에는 지리상의 발견도 엄청났지만 동시에 국가라는 의식(national consciousness)이 탄생하던 시기였다. 루터가 열 살이 되기 전 영국과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새로운 왕조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느낄 수 있듯 국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경쟁하는 정치적인 의미에서 국가라는 의식이 출현했다.

 

요즘 축구 해설을 듣다 보면, 해설자들이 프로존이란 장비를 사용해서 선수들의 볼 점유율, 패스 성공률, 공격 방향, 선수들의 활동량, 패스의 성공과 실패 여부 등을 분석한다. 이런 프로존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읽는 눈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해설을 듣다 보면 예측 가능한 사실을 소홀히 하면 치명적인 실수가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치명적인 실수를 막으려면

 

디지털 세상이 열리면서 삶은 지극히 편해졌다.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못하는 일이 없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덮는 순간 우리는 안절부절못한다. 다들 중독을 말하지만 스마트폰만큼 치명적인 중독은 없을 것이다. 스마트폰은 유익하고 편리한 도구이지만 우리에겐 나다운 나를 지켜나갈 뭔가가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첫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첫 문장은 책을 시작하는 첫 번째 문장을 뜻한다. 하지만 나는 어느 날 나에게 훅 들어와서 느닷없이 나의 삶을 뒤흔들어 놓은 문장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려고 한다. 우리는 바로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예전의 나와 느닷없이 바뀌어 버린 나, 이 중 어느 쪽이 진짜 나인지를 알 때부터 나의 삶은 나다운 나가 되는 여정을 시작한다.

 

최은영의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 보면 「모래로 지은 집」이라는 단편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나비이다. 읽다 보면 느낀다. 누군가와 시간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인생을 나눴던 게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인생을 살게 될 줄 몰랐겠지만 서서히 변할 거라는 걸 그때의 나비도 알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모래로 지은 집」에서 작가는 미숙하지만 간직하고 싶은 청춘의 실수를 그려낸다. 작가는 등장인물 모래의 입을 빌어 말한다.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179쪽). 작가는 이런 문장으로 우리 모두를 위로한다.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고, 우리 모두 그렇게 실수를 하며 인생을 살아간다고.

 

나만의 첫 문장

 

너무나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럽다. 배움은 고립된 사실들을 암기하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사실 배움이란 여러 사실들을 연결하고 다루는 일이지만, 그것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다. 그래서 일단 나만의 첫 문장을 찾는 일부터 시작한다.

 

다들 사는 게 힘들어도 산을 오르고 여행을 가는 건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그립기 때문이다. 착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자유롭게 사는 것도 필요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면 이해하면 되지만 아쉬운 것은 이해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에선 속이 깊다거나 어른스럽다는 말이 썩 멋진 말은 아니다.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등장인물을 통해 계산하지 않은 솔직함, 느낀 대로 말하는 당당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낀다. 나는 최은영의 단편들을 읽으며 그것을 느낀다. 나에게 삶이란 오로지 내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읽다 보니 내가 나의 삶을 지탱하게 해준 건 오래전 누군가가 건네준 위로의 말 덕분인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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