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지 않고, 기자 자신의 취재와 문제 제기가 없이, 단순히 번역하는 수준으로 나오는 국제 기사는 그 기사의 원문이 지향하는 바를 그대로 따르게 된다. 누군가 왜 국내 언론에서의 국제 뉴스가 편향되는가라고 묻는다면, 국제 뉴스는 SNS의 영향력과 감시가 비교적 적기 때문이며, 질문하지 않는 기자들에 의해 기사가 양산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본문 중)

박민중(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오늘날 언론 지형에서 레거시 미디어1)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을까? 정치 뉴스 등을 자주 보는 분들이라면 과거에 비해 유튜브로 대변되는 SNS의 영향력이 증대되었음은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특정 레거시 미디어의 의제 설정 효과는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평가는 국내 정치 기사에는 적용될지 모르지만, 국제 정치 뉴스의 경우는 다르다. 이번 짧은 글을 통해 그 이유와 그로 인한 기사의 편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씁쓸한 현실을 꼬집는 외신 기자의 질문을 보았다. 그리고 그 상황을 보도하는 국내 언론의 수준은 씁쓸하기만 했다. 지난 5월 21일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처음 맞는 미국과의 정상회담이기 때문에 모든 언론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정상회담이 끝나고 공동 기자회견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대한민국의 새 내각에서 남성 비중이 심각하게 높은 현실에 대해 질문을 했다. 이 내용을 중앙일보, 조선비즈, 경향신문 등은 아래와 같이 번역하고 보도했다.

 

대선 기간 남녀평등을 이루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는데 한국 같은 곳에서 여성 대표성 증진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나?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과연 원래 질문은 어떠했을까. 백악관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공동 기자회견 영상에 따르면, 당시 질문은 아래와 같다.

 

Your cabinet nominees are overwhelmingly male. South Korea consistently ranks low among developed countries on professional advancement of women. And you, yourself, during your presidential campaign, proposed abolishing the ministry of gender equality. What role should a leading world economy like South Korea play in improving representation and advancement of women? And what will you and your administration do to improve the state of gender equality. (당신의 내각 지명자들은 압도적으로 남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성의 직업적 발전 기회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선진국들 중 늘 하위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당신 자신도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에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제안했다. 대한민국과 같이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국가가 여성의 대표성과 발전 기회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당신과 당신의 정부는 성 평등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실제 질문은 크게 3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다. 첫째, 현실을 지적한다. 그 현실은 현 행정부 내각의 현실(내각 지명자를 보면 남성 일변도라는 점)과 한국 사회의 현실(한국은 선진국들과 비교해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항상 낮았다는 점)이다. 둘째, 대통령 선거 기간 윤석열 후보자가 주장했던 여성가족부 폐지를 지적한다. 셋째, 이 두 가지를 기반으로 향후 윤석열 정부는 여성의 대표성과 성평등을 어떻게 증진시킬지 질문하고 있다. 이 내용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중앙일보, 조선비즈, 경향신문과 같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레거시 미디어들이 보도한 “대선 기간 남녀평등을 이루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는데”라는 부분은 찾을 수가 없다.

 

해당 글과 관련없는 이미지 입니다.

 

이 같은 촌극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특정 레거시 미디어가 외신을 잘못 인용 또는 번역할 경우, 다른 언론사들은 무비판적으로 그 내용을 받아 적는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언론사에서 국제 관계 관련 기사를 분석해 보면, 특정 나라의 특정 언론사들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수준이다. 그 외신 기사에 대한 국내 언론과 기자의 문제 제기, 가설, 비교 등은 찾을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번역마저 틀리게 되면,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국제 관계를 인식하는 일반 시민들은 세상을 잘못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보다 근본적으로, ‘왜 국내 언론은 외신 기사를 단순히 번역하는(그것조차도 틀리는 경우가 있다) 수준에 그치는가?’하는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여러 원인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다시 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행정부가 내놓은 창피스러운 ‘가이드라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공동 기자회견이 있기 전, 이날 사회를 맡은 강인선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공지했다고 한다. “자국 대통령에게, 질문은 한 개만.”

 

이를 보면서 들었던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은 ‘창피하다’였다. 과연 이 같은 가이드라인을 듣고 외신 기자들은 한국 행정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1> 공동 기자회견 후, <워싱턴포스트> 미셸 예히 리 기자의 트윗

(어제 바이든-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들 사이에서 혼란이 있었다. 왜냐하면 한국인 사회자가 질문을 기자 한 명당 하나로, 그것도 자국 대통령에게만 하도록 제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양측 기자회견에서의 미국의 관행과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창피한 점은 외신 기자들은 그 가이드라인을 전혀 따르지 않았는데, 한국의 기자들은 충실하게 이행했다는 점이다.

 

<사진-2> 공동 기자회견 후, 워싱턴포스트 김승민 기자의 트위터 내용.

(두 미국 기자는 바이든과 윤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래 미셀 예희 리에 따르면 그것은 미국의 표준적인 관행이다. 그러나 한국 기자들은 바이든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외신 기자들은 강인선 대변인의 가이드라인과 상관없이 기자가 해야 할 본분인 질문을 한 반면, 국내 기자들은 가이드라인을 따라서만 ‘질문’을 했다는 점은, 기자의 글을 통해 국제 관계를 인식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질문하지 않고, 기자 자신의 취재와 문제 제기가 없이, 단순히 번역하는 수준으로 나오는 국제 기사는 그 기사의 원문이 지향하는 바를 그대로 따르게 된다. 누군가 왜 국내 언론에서의 국제 뉴스가 편향되는가라고 묻는다면, 국제 뉴스는 SNS의 영향력과 감시가 비교적 적기 때문이며, 질문하지 않는 기자들에 의해 기사가 양산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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