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점』은 세상의 빛처럼 밝게 살려던 요코의 마음이 얼어붙는 ‘빙점’을 추적해가는 이야기다. 자신은 떳떳하고 결백하다는 믿음이 요코를 붙들어 준 기반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사실을 알게 된 요코는 이렇게 밝힌다. “자기 속의 죄의 가능성을 발견한 저는 살아갈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해처럼 밝게 살려던 요코의 마음을 얼려 버린 빙점, 그것은 “너는 죄인의 자식”이라는 발견이었다. (본문 중)

홍종락(작가, 번역가)

 

요코는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 때문이었다. 요코는 어머니의 모든 게 좋았다. 아침마다 머리를 빗겨주는 것도,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도, 품위 있게 부드러운 말씨도, 웃을 때의 입언저리도, 설거지할 때의 뒷모습도, 걸레질할 때의 빠른 몸놀림도. 무엇보다 “요코야” 하고 부를 때의 약간 나지막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주 좋았다. “아버지의 쌀쌀한 태도가 요코의 마음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지 않은 것도 어머니의 사랑이 차고 넘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7살이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였다. 어머니가 여느 때와 다른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까칠한 목소리로 요코의 이름을 불렀다. 요코의 뺨을 양손으로 감싸고 들여다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요코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물었다. “놀러 가도 돼요?” 그때였다. 어머니가 갑자기 “요코! 엄마하고 같이 죽어…”라고 말하더니 어머니가 요코의 목을 잡았다. “싫어, 싫어” 하면서 몸을 비틀었지만 어머니의 손은 요코의 목을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다 비명 소리와 함께 문득 정신을 차리고 손을 놓았다. 요코가 입에 거품을 물고 숨을 몰아쉬듯 ‘흑흑’ 거리고 목구멍을 그르렁거리다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자, 어머니가 “아, 요코!”하고 얼결에 요코를 껴안았다. 그리고 요코는 한참을 울었다. 요코가 진정한 뒤, 어머니는 요코에게 오늘 일을 아빠와 오빠에게 말하지 말라고 다짐을 한다.

 

요코를 죽이려던 어머니는 이후로 전과 달라졌다. 요코로서는 전후 사정을 알 도리가 없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오늘은 소설 『빙점』의 주인공 요코가 사랑하는 어머니의 총애를 받다가 어느 날부터 미운 오리 새끼가 된 상황에서 어떻게 자기를 지키려 하는지 따라가 본다. 그것은 대체로 건전하고, 때로는 찬사를 보낼 만한, 무엇보다 영웅적인 노력이었다. 먼저 요코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한다

 

충격적인 일을 당한 요코는 어머니가 무서워졌다. 집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요코는 저금통에서 동전을 꺼내서 버스를 타고 친하게 지내던 다쓰코 아줌마에게 간다. 그리고 “집에 있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다. 다쓰코는 언제나 생글생글 웃기만 하고 성낼 줄 모르던 요코의 이 당돌한 답변에 오히려 성깔이 있어서 좋다고 반응한다.

 

다쓰코는 요코를 순순히 받아 주고 밥도 먹이고 재워 준다. 저녁에는 요코의 어머니 나쓰에와 통화해서 다음 날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다쓰코는 요코가 집을 나온 것이 궁금해서 이것저것 묻지만 요코는 다쓰코에게 자신이 집을 나온 이유를 말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내 목을 졸라서 무서워져서 집에서 나왔어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요코가 철없고 생각이 짧은 아이였다면, 어머니와의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아이였다면 달랐겠지만 요코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요코는 다쓰코의 도움을 받으러 왔으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상의할 수가 없었다. 사람에게 사람만큼 귀한 것도 없지만,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다쓰코 아줌마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지침을 얻는다. 그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건전한 조언을 받아들인다

 

다쓰코는 요코에게 왜 집을 나왔는지 캐묻는다. 평소 같으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받아 주었겠지만 얌전한 요코가 집을 나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쓰코는 요코에게 아줌마 집에 왜 왔느냐고 물었다. 아이가 대답하지 않자 답이 될 만한 질문들을 던진다.

 

야단을 맞았느냐? 오빠와 싸웠느냐? 친구들이 뭐라고 했느냐? 여기에 다 아니라는 답이 나오자 다쓰코는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아빠가 좋으냐? 엄마는 좋으냐? 오빠가 좋으냐? 다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차라리 나쓰에에게 직접 물어봐야 하나 싶어질 무렵, 요코가 물었다.

 

“아줌마, 우리 엄마 좋아해요?”

 

그렇게 해서 다쓰코는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싫은 점이 있고, 사람은 누구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으며, 사람은 자기에게 친절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그 사람이 조금만 잘못해도 곧 싫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요코도 엄마가 언제나 잘해주다가 한번 잘못해주면 싫어질지도 몰라”라고 말한다.

 

어린 요코는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아줌마는 어제 일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아. 정말이야. 엄마는 언제나 내게 잘해 줬어. 그리고 잘못해 준 건 어제 한 번뿐이야.’ 그리고 웬만큼 힘든 일은 참아야 한다는, 이어지는 다쓰코의 조언을 받아들인다.

 

기본적으로 다쓰코의 조언은 건전하고 상식적이다. 웬만한 일은 참을 줄 알아야 하고, 한 번 잘못했다고 상대방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 얼마나 합당한가 말이다. 결국은 요코가 겪은 일이 그런 상식적 조언으로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냐 하는 것이 문제겠다. 그리고 정확한 상황을 설명할 수 없기에 빗나갈 수밖에 없는 조언이나마 늘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많은 상황은 자기가 당해내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돋보이는 것이 요코의 긍정적 사고방식이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학예회 사건을 들여다보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학예회가 열린다. 요코는 학예회에 참가해 급우 6명과 함께 춤을 추기로 되어 있다. 참가하는 학생들은 다 흰옷을 입기로 되어 있었다. 흰 스웨터, 흰 스커트, 흰 양말. 그러나 진작부터 옷 이야기를 했는데도 듣는 둥 마는 둥 어머니는 관심도 없었다. 학예회를 보러 오겠다는 확답도 주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는 옷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리고 학예회 전날이 되도록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아들 도오루가 동생 옷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성화를 하자 옷집에 의뢰를 했는데 옷집에서 뭔가 착오가 있었다는 거짓말로 둘러댄다. 요코는 혼자서 흰옷을 입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혼자만 다른 색 옷을 입으면 부끄럽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요코는 씩씩하게 대답한다. 부끄럽지 않다고. 어머니 나쓰에는 요코가 조금도 곤란한 얼굴을 하지 않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그래서 “너는 부끄럽지 않아도 엄마가 부끄럽다”고 말한다. 엄마가 노랑이라고 놀림을 받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요코는 엄마가 깍쟁이가 아니라며 자기는 부끄럽지 않다고 대꾸한다. 긍정적 사고방식의 화신과 같은 모습이다. 실제로 요코는 학예회에 빨간 옷을 입고 참석하여 오히려 사람들의 주목과 칭찬을 받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의 이상한 반응, 싸늘한 태도는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자기 수준에서 독립을 도모한다

 

급식비를 내야 하는데 어머니가 급식비를 주지 않는다. 등교를 앞두고 세 번이나 독촉을 했는데도 번번이 알았다는 대꾸를 하고는 부엌에 들어가서 나오지를 않는다. 학교 늦겠다고 하자 빨리 가라고 한다. 급식비 이야기를 하자 지금 바쁘니까 다음날 주겠다고 한다.

 

말없이 집에서 나온 요코는 울고 싶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기는 싫었다. “땀과 눈물은 남을 위해 흘려야 한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좋았다. 하지만 오빠에게는 스스로 채근해서 급식비를 챙겨주는 어머니가 왜 자기에게는 급식비를 주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엄하게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재촉해도 엄마가 주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요코는 다쓰코 아줌마에게 가서 물어본다. 얼마나 일하면 380엔(급식비에 해당하는 액수)을 받을 수 있느냐고. 다쓰코는 자기에게 달라고 하라고 말하지만, 요코는 폐를 끼칠 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다쓰코는 자신이 운영하는 무용 연습장 청소 아르바이트를 제안하고, 요코는 성실하게 청소를 해서 380엔을 번다.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이든 하겠노라 마음먹는다.

 

치사하게 급식비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냉대하는 어머니에 대한 요코의 대처는 참으로 의연하다. 다쓰코의 무용 연습장 청소로 자신감을 얻은 요코는 우유 배달에 나선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 3개월이 넘도록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꾸준히 우유 배달을 해낸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용돈을 벌었을 뿐 아니라 일 자체에서 오는 보람도 알게 된다. 하지만 눈보라가 대단히 심했던 어느 날 뚝심으로 우유 배달소까지 간신히 갔다가 배달소 주인 부부의 말을 엿듣게 된다. 이런 날씨에 아이에게 배달을 보내다니, 주워온 아이가 분명하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요코는 더 이상 우유 배달 일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지키려고 굳게 다짐한다

 

『빙점』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는 요코의 중학교 졸업식 장면이다. 요코는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맡게 된다. 그런데 요코는 몰랐지만 요코가 답사를 하게 된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어떻게든 요코가 답사를 읽지 못하게 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졸업식 당일, 요코가 준비한 답사를 펼쳤을 때 거기엔 백지뿐이었다. 정황상 범인이 누군지는 명백했다. 그런데 이 뜻밖의 상황에서 요코는 참으로 의연하게 대처한다. 답사 대신 바꿔치기 된 백지를 그대로 접고 단상에 올라간다. 그리고 답사가 백지로 변한 상황을 그대로 밝히고 즉석연설을 한다. 인생에는 예기치 못한 일이 몇 번이나 있는 법이라는 가르침과 구름 뒤에는 언제나 태양이 빛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한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배웠다고 말한다.

 

어른들 중에도 마음씨가 나쁜 사람이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처럼 고약한 마음에 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무리 심술을 부려도 끄떡없다는 굳은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울리려고 하는 사람 앞에서 울면 지는 겁니다. 그럴 때야말로 생긋 웃으면서 살아갈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침착한 대처와 멋진 답사로 요코는 박수갈채를 받으며 그날의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요코의 마음은 슬픈 정도가 아니었다. ‘진짜 어머니라면 그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듯한 뼈저린 외로움을 느꼈다.”

 

빙점

 

요코는 지금까지 소개한 것들과 같은 자신의 온갖 자원을 총동원하여 숱한 시련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자신을 지켜간다. 그러나 요코의 영웅적 싸움은 소설의 끝부분에서 결정적인 시험에 직면한다. 요코가 숱한 난관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고결함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괴롭히는 저 사람과 다르다. 저 사람의 부당한 대우 때문에 내가 똑같은 사람이 되거나 더럽혀질 수는 없다. 나는 깨끗한 나, 떳떳한 나를 지켜나가면 된다. 이것이 요코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독자들은 요코의 그런 기반이 취약한 것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요코의 씩씩한 싸움을 응원하면서도 저 멀리 어느 시점에 파국이 기다리고 있음을 예감한다. 그리고 결국 결정적 지점에서 요코가 알지 못했던, 그러나 독자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비밀이 드러나면서 요코에게 결정타를 날린다. 요코를 붙들어 주었던 긍지와 자부심이 결국 요코의 의지를 가장 크게 시험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그녀는 자신의 깨끗함을 붙들고 여러 시련에도 꺾이지 않고 자신을 지켜 갔지만, 그 모든 영웅적 투쟁 와중에도 모든 어려움의 근원이었던 문제는 줄곧 바깥에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어 그녀를 덮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녀의 출생이 ‘원죄’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빙점』은 세상의 빛처럼 밝게 살려던 요코의 마음이 얼어붙는 ‘빙점’을 추적해가는 이야기다. 자신은 떳떳하고 결백하다는 믿음이 요코를 붙들어 준 기반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사실을 알게 된 요코는 이렇게 밝힌다. “자기 속의 죄의 가능성을 발견한 저는 살아갈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해처럼 밝게 살려던 요코의 마음을 얼려 버린 빙점, 그것은 “너는 죄인의 자식”이라는 발견이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그녀의 출생이라는 ‘원죄’는 그 원래 의미인 기독교의 원죄 교리를 그림처럼 보여 준다. 작품 속 누군가가 말한 대로, 아버지가 아니라도 우리 조상 중 누군가는 살인범이고 악당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죄인의 자식이라는 발견, 자기 속의 죄의 가능성의 발견은 자신이 순수하고 깨끗한 존재이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크나큰 충격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충격적인 발견인 동시에 ‘엄연한 사실’의 발견이기도 하다.

 

거짓 위에 인생을 세울 수는 없는 법. 따라서 아무리 아프다 해도 사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실체를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모래 위가 아니라 반석 위에 인생을 건설하는 삶의 가능성이 열린다. 요코가 그 길에 용감하게 나서기를 응원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요코를 향한 응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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