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외환위기에 직면하여 IMF의 지원을 받던 때에, 우리 가족은 몽골에서 선교사로서의 삶을 막 시작했다. 한국에서 100만 원을 보내면 현지에서는 50만 원 정도 가치의 미국 달러를 받게 되었다. 파송 교회가 선교사의 생활비를 미국 달러가 아닌, 한국 원화로 책정했기 때문이었다. 선교사 가정의 경제는 무역을 하는 기업처럼 미국 달러 환율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선교사의 가정 경제는 가족의 경제를 넘어서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문 중)

송기태(선교사, 인터서브 부대표)

 

여느 가정의 가장들처럼 나에게도 경제적인 문제는 매우 힘든 과제였다. 선교사가 되기 전에 나는 회사원으로, 아내는 교사로 일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안정을 누리고 있었다. 선교사로 직업을 전환한 후에는 가정 경제에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야 했다. 후원에 의존해야 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경제적으로 전혀 새로운 시스템으로 전환하면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채우리라”(마 6:33)라는 말씀을 붙잡고 실물 경제 영역에서도 믿음의 여정을 시작했다. 하늘의 만나를 날마다 믿음으로 경험하는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 사회가 외환위기에 직면하여 IMF의 지원을 받던 때에, 우리 가족은 몽골에서 선교사로서의 삶을 막 시작했다. 한국에서 100만 원을 보내면 현지에서는 50만 원 정도 가치의 미국 달러를 받게 되었다. 파송 교회가 선교사의 생활비를 미국 달러가 아닌, 한국 원화로 책정했기 때문이었다. 선교사 가정의 경제는 무역을 하는 기업처럼 미국 달러 환율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선교사의 가정 경제는 가족의 경제를 넘어서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복음, 경제의 구속

 

어떤 때에는 한화의 달러화 대비 가치가 높아서 선교사들이 현지에서 이익을 보는 때도 있다. 이럴 때 한편으로는 내게 이익이 생겨서 기쁘지만, 현지화의 가치가 떨어져서 지역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선교사들이 보냄 받은 이유는 현지의 시민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을 누리도록 복을 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제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경제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이코노미(economy)는 헬라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온 말인데, 이 말은 가족(oikos)과 관리(nomia) 의 합성어로, “집안 살림 관리”라는 의미이다. 선교사 바울은 복음을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엡 3:9)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경륜’도 헬라어 오이코노미아를 사용하고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하이라이트인 희년(禧年, Jubilee, 레 25장)도 경제적인 개념을 강하게 포함하고 있다. 희년에는 노예로 있었던 사람이 자유인이 되고, 가난 때문에 팔았던 토지를 반환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공생에 초기에 고향인 나사렛 회당에서 설교하셨다. 그 설교를 통해 이사야 선지자가 언급한 희년의 의미에 기초하여, 복음, 즉 기쁜 소식이 무엇인지를 선포하셨다. 서두에서 주님은 복음이 어떤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인지를 분명히 말씀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눅 4:18). 복음은 단지 주님께서 사람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의 죄는 사회에서 정치적인 불의를 일으키고, 이런 구조가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정의를 이루지 못하도록 왜곡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정치적인 압제에 시달리던 히브리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시기 위해 먼저 하신 일이 있다. 그들을 파라오의 정치적 압제에서 해방하심으로써 사회적으로는 자유인이 되게 하시고, 경제적으로는 노예로서 받지 못했던 품삯을 일시불로 받도록 하신 것이다(출 12:36).

 

 

선교의 목표와 경제

 

선교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하나님의 가족(oikos)으로 초대하는 일이다. 그 일의 핵심에 복음이 있고, 가시적으로 교회 공동체가 있다.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주도록 증오했던 예루살렘 시민들이 교회 공동체로 자원하여 몰려온 때가 있었다.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에 의해 삼천 명이 세례를 받은 사건이다. 그들 안에는 기사와 표적이 일어났는데, 그와 함께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행 2:40-45). 그러한 순종의 결과로 그들은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고,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행 2:47). 물론 그들은 말씀을 듣고 교제도 했고 예배도 드렸다.

 

경제 자체가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닐지라도 하나님 나라가 지역 사회에 임하게 하는데 선교와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이다. 좋은 경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로서의 존엄성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경제이기 때문이다. 주기도문에서도 경제가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주제는 선교의 목표와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없다.

 

성도들이 날마다 보냄받은 직장에서 일해야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서 모든 열방을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의 통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정의 소득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의를 직장 안에서 구하기 때문에 선물로 주시는 열매라고 여겨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일하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경제와 복지를 돌보신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보내고 보냄받은 공동체의 경제

 

선교사들은 교회 공동체로부터 보냄을 받아, 이미 복음의 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처럼 그들도 주님 안에서 복된 삶을 살도록 초대하면서, 현지인들과 함께 경제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사도 바울도 선교사로서 빌립보 교회 등으로부터 후원을 받아서 많은 민족들을 주님의 품에 돌아오게 했다. 사역 말년에는 스페인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로마 교회에 파송과 후원 요청을 하기도 했다 (롬 15:23, 24). 또한, 그는 자신이 개척한 여러 교회에서 헌금을 모아서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에 힘썼다 (롬 15:25, 26; 고후 9:1-15).

 

성도들이 선교사 가정을 경제적으로 돕는 것은 단지 그 가정만 돕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현지인들에게 축복의 통로로서 살고 있는 선교사 가정을 향한 후원이 결국에는 선교사 가정들이 섬기는 현지인들에게 복이 흘러가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가 어려운 때이다. 물론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세계 경제가 좋았다고 기억되는 때는 많지 않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지켜본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침략을 당한 작은 나라, 우크라이나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연합하여 그 일에도 참여했다. 이러한 경제적 후원은 참으로 좋은 일이고, 우크라이나 백성들에게 좋은 소식이다. 이런 시기에 또한 선교사 가정과 함께 선교 현지의 백성들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주님의 손길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일에 교회들과 성도들이 함께 참여하여 나눔으로써 오병이어처럼 하나님 나라의 경제가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4:1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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