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태는 여러 가지 함의를 가진다. 그 하나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한 대로, 우리가 사는 기술 사회는 ‘위험 사회’라는 사실이다. 현대 기술로 누리게 된 많은 유익이 있지만, 그에 따른 불가피한 위험(risk)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카카오톡 없이도 잘 살았지만, 이제 4천 700만 명 이상이 카카오톡으로 소통하는 상황에서는 이번과 같은 사태가 엄청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본문 중)

손화철(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기술철학)

 

2022년 10월 15일, SK C&C 판교 데이터 센터의 화재로 국민 메신저라 불린 카카오톡을 비롯해 카카오 택시, 카카오 뱅크, 이메일 서비스 등 여러 서비스가 한동안 멈추는 사고가 일어났다. 배터리에서 불이 났기 때문에 진화가 쉽지 않았고, 화재 진압을 하는 동안 서버를 보호하기 위해 전원을 끄는 바람에 카카오는 모든 서비스가 한동안 불능 상태가 되었다. 주요 기능이 복구되는 데까지 30시간이 걸렸고, 이후로도 한동안 몇몇 기능들이 작동하지 않았다.

 

이번에 화재가 난 데이터 센터를 함께 사용하고 있던 네이버는 다른 데이터 센터에 메인 서버가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연결을 전환하여 복구가 빨랐다. 반면 카카오는 SK C&C 판교 데이터 센터를 자신들의 핵심 데이터 센터로 사용했기 때문에 서버에 전원을 연결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지난 며칠 사이에 여러 기사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많은 데이터를 관리하는 IT 플랫폼 사업자는 모든 데이터와 주요 서버의 기능을 이원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해야 똑같은 장치가 두 개 이상 있어서 한 곳에서 사고가 나도 다른 쪽에서 서비스를 중단 없이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원화를 이해하기 위해 대양을 운행하는 선박의 예를 생각해 보자. 대형 선박에는 주요 조종 장치들이 세 개씩 있다고 한다. 하나만 있어도 배를 움직일 수 있지만, 고장이 나면 망망대해에서 대책이 없기 때문에 비상시를 위해 두 개의 동일 장치를 예비해 두는 것이다. 카카오처럼 수많은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도 비상사태에 대비한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카카오는 이런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원화 작업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그것을 강제하는 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태는 여러 가지 함의를 가진다. 그 하나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한 대로, 우리가 사는 기술 사회는 ‘위험 사회’라는 사실이다. 현대 기술로 누리게 된 많은 유익이 있지만, 그에 따른 불가피한 위험(risk)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카카오톡 없이도 잘 살았지만, 이제 4천 700만 명 이상이 카카오톡으로 소통하는 상황에서는 이번과 같은 사태가 엄청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 기술을 쓰고 있는 것이다. 정확히 4년 전인 2018년 11월에는 KT 서울 아현 지사 지하의 통신구에서 난 화재로 서울 서북권 일대에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 장애가 일어났고, 그때 이 개념을 설명한 적이 있다(https://cemk.org/10749/). 벡은 현대 기술로 인해 새로 생긴 위험은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합리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당 글과 관련없는 이미지 입니다.

 

다른 하나는, KT 통신구 화재와 비교할 때 이번 카카오 불통 사태는 위험 사회의 권력 구조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KT 통신구의 2018년 사고는 전화선과 광케이블 등 통신선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소실된 경우인데, 이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술 사회에서 피하기 힘든 위험이 있다는 현실의 전형적인 사례다. 그러나 카카오의 경우는 한 대기업의 부실한 관리 시스템이 전 국민을 불편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이는 그 기업의 시민들과의 관계에서 권력의 우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들이 그런 권력과 부를 가지게 된 것이 바로 그 시민들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을 통해서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 커진다. 과연 이들이 그 데이터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것일까?

 

카카오톡을 이용하는 4천 7백여만 명의 사용자 중 데이터 센터의 존재에 관심을 갖거나, 무료로 그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그 회사의 엄청난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인지했던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기술 사회가 상당한 수준의 신뢰에 기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위험 사회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런 신뢰는 비현실적인 기대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전폭적인 신뢰로 부와 권력을 누린 기업과 전문가, 정치가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책임을 지는 것이 합당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카카오와 관련자들은 대중의 무관심과 무지로 표현된 신뢰에 기대어 오히려 게을러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사고, 즉 위험의 현실화가 위험 사회에 내재되어 있던 불평등과 부조리를 폭로한 셈이다.

 

이런 현실을 모두 종합해서 생각하면 “카카오만 제대로 대처했더라면”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번에는 카카오지만 다음에는 어떤 신기술과 거기 내재한 위험이 현실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가지 기술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특정 기업을 비난하고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는 방식은 그다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더 강력하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하나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위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기업에 대한 유형·무형의 강한 징벌이다. 기술을 잘 아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는 위험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조용히 부와 권력을 누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는 법을 통해 이룰 수도 있고, 소비자 불매 운동이나 플랫폼 다양화를 통해 시장에서 해결할 수도 있다.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는 기업은 반드시 망한다는 경고를 발하지 않으면 기업은 여전히 안전 불감증에 안주할 것이다. 반기업 정서를 운운하며 시민의 안전보다 기업의 유익을 우선하는 정책 기조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공학자와 기업인, 정책 결정자들의 안전 감수성을 전반적으로 높이는 일이다. 원자력 발전이나 IT 플랫폼처럼 모든 사람의 삶에 직결되는 대규모 기술이 늘어나고 그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는 현대 기술 사회에서는, 미리 주어진 규칙과 기준을 지키는 것에 만족할 수 없다. 공학 설계와 활동뿐 아니라 경영과 정책 결정이 뛰어난 상상력과 안전에 대한 감수성에 기반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학자 및 전문가의 책임과 윤리에 대한 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가장 궁극적인 대처는, 모두가 기술의 발전과 혜택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신뢰를 내려놓는 것이다. 최첨단의 기술로 삶을 촘촘히 엮어 놓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태곳적부터 일어난 화재와 그것을 끄기 위한 물 때문에 그 매듭이 풀려 버린다. 애써 누군가의 부주의로 책임을 돌리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인간이 앞날을 모르면서도 욕심에는 끝이 없는 존재라는 것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위험 사회를 견딜 힘이 생기고 위험을 줄일 대안이 마련된다. 이 일에 교회의 역할이 있다. 기독교회는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근거가 없는 기술 미신을 극복하여 오히려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전초기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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