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신학이 변화하는 만큼, 새로운 신앙을 갖게 될 우리에게는 새로운 노래들이 필요한 법이다.” 『함께 부르기』는 이러한 취지로 쓰인, 싱어송라이터이자 목회자인 황푸하의 악보집이다. 그가 작사 작곡한 노래 57개와 각 곡을 쓴 배경이 담긴 짧은 단상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노래들 중 상당수는 ‘현장’에서 태어난 것이다. (본문 중)

박예찬(IVP 편집자)

 

[책 소개] 황푸하 지음 | 『함께 부르기』

대장간 | 2022년 7월 29일 | 176면 | 20,000원

 

“부를 만한 찬양이 없다.” 한 친구가 늘 하던 말이었다. 찬송가만 600장이 넘게 있고, ccm도 셀 수 없이 많은데, 부를 노래가 없다니. 물론 친구의 말은 단순히 찬송가 개수를 이야기한 게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깊이 담아내는 찬양이 없다는 의미다.

 

저자 황푸하의 생각도 비슷한 듯하다. 시대에 따라 “신학이 변화하는 만큼, 새로운 신앙을 갖게 될 우리에게는 새로운 노래들이 필요한 법이다.” 『함께 부르기』는 이러한 취지로 쓰인, 싱어송라이터이자 목회자인 황푸하의 악보집이다. 그가 작사 작곡한 노래 57개와 각 곡을 쓴 배경이 담긴 짧은 단상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1) 그리고 그 노래들 중 상당수는 ‘현장’에서 태어난 것이다. 옥바라지선교센터에서 활동하며 옥바라지 골목과 궁중족발, 을지로 OB베어 철거 현장에서 투쟁과 연대의 노래를 불러 온 그는 말한다. “운동을 할수록 새로운 노래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실패의 노래

 

내가 믿는 주는 들풀처럼

아무 힘도 없으리라

 

내가 믿는 주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리라

 

내가 믿는 주는 강한 것이

아무 데도 없으리로다

 

무능한 나의 주여 날 인도하소서

아무 힘 없이 쓰러질 때 내 곁에

당신이 나의 주

 

– “내가 믿는 주는”

 

황푸하의 찬양은 어떤 측면에서 새로울까? 가장 주목할 특징은 하나님의 무능함을 노래한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제껏 교회는 전능한 하나님을 찬양해 왔다는 말인데, 이 부분은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글을 쓰면서도 ‘전능’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찬양이 여럿 떠오른다.

 

반면 황푸하의 가사에는 ‘전능’을 찾아볼 수 없다. 그와 함께 거리를 지켰던 이들이 고백하는 신은 “들풀처럼” 쓰러지는 존재다. 그렇다고 해서 “무능한 나의 주”가 무기력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무능함으로 사랑의 연대를 창출해 낸다. 그리고 그 창출된 공간에 옥바라지선교센터가 있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실패에 동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담대하게 투쟁과 연대의 길로 나아갑시다.”2)

 

사실 이 문제는 하나님이 전능한가에 대한 것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전능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다. 황푸하에게는 초자연적 기적을 휘두르지 못하는 하나님이 무능한 게 아니라, “사랑을 할 수 없는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야말로 진짜 무능한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패배하는 하나님은 초라하지 않고 그가 노래하듯 위대하다. “나는 당신을 이기지 않겠소. 내가 진정 바란 건 오직 위대한 패배.”

 

『함께 부르기』 표지, ⓒ대장간

 

세상에서 부르는 노래

 

언제부터였을까 당신의 장막을 포기한 지

지옥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을 때

 

나는 이제 여기서 이곳에 장막을 치렵니다

주여 날 오라 하지 말고 나의 장막에 와 보세요

 

잠을 이루지 못해 흩날리는 기도들

오늘 밤도 가득 찬 이 장막을 찾아주세요

 

– “농성장”

 

황푸하의 노래가 가진 또 다른 특징은 세상과 분리된 성전에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막(천막)으로 하나님을 초대한다는 것이다. “주여 날 오라 하지 말고 나의 장막에 와 보세요”라는 가사가 이를 뚜렷하게 보여 준다.

 

다시 말해, 그의 노래는 거룩한 곳으로 떠나는 노래가 아니라 지금 있는 장소를 거룩하게 만들기 위한 노래다. 이 장소는 연대하며 패배하는 자리이며, 이 땅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그의 가사에서 ‘세상’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상 가장 아픈 곳 여기로 오세요” “이제 우린 세상 죄를 봅니다. 이 세상을 씻어 주소서” “더 이상 하늘에 계시지 마시고 당신의 이름 거룩하게 하소서.” 그가 ‘부르는’ 노래는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도록 하나님을 호출하는 것, 즉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함께 부르는 돌림 노래

 

글을 마치기 전에, 거리감을 이야기해야만 하겠다. 현장에서 투쟁하는 이들과 청자(독자)의 거리는 아득하다. 이 간극은 어떻게 극복되는가, 극복되는 것이 가능은 한가, 우리는 이 노래들을 어떻게 ‘함께 부를 수’ 있을까. 문학평론가 박혜진은 노래(이야기)를 듣는 것을 기억하는 행위와 연결 짓는다. “도처에 깔린 죽음의 공간에서 노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도래할 죽음을 애도하며 기억의 진폭을 넓힌다. 말들의 돌림 노래는 텍스트를 뚫고 나와…기억하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말은 작품 밖에서도 존재하는 가능성으로서의 텍스트가 된다. 이 텍스트 위에 기억의 공동체가 세워진다.”3)

 

박혜진은 이것을 ‘기억자가 되는 경험’이라고 설명한다. 『함께 부르기』를 듣는 청자(읽는 독자) 역시 그 행위 자체로 이내 기억자가 된다. 황푸하의 말처럼 그의 “노래들 안에는 우리가 만난 현장들이…깃들어 있”으며, “거리가 있고 당사자의 눈물과 연대인의 땀방울이” 있기 때문이다. 그 노래를 들음으로 자본의 폭력과 쫓겨난 자들의 투쟁과, 이웃들의 연대에 동참할 수 있다고 한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박혜진의 말을 더 옮겨 보자.

 

“노래가 있다. 노래 부른다고 바뀌는 것은 없지만 노래만은 ‘같이’ 부를 수 있다.…한 사람의 돌림 노래가 두 사람의 기억을 재편한다. 혼자 겪은 일이지만 함께 기억하는 것. 그것은 문학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4) ‘문학’의 자리에 ‘노래’를 넣어도 의미는 같을 것이다.

 


1) 책에 실린 QR 코드를 통해 전곡을 들을 수 있다.

2) 옥바라지선교센터, “노량진수산시장을 지키기 위한 사순절 4”, https://url.kr/x6kocw.

3) 김숨,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중 박혜진의 해설 “한 사람의 노래로부터”에서 발췌.

4)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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