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교회에서 목회자 은퇴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정말 폭탄과 같다. 곳곳에서 교회가 깨지고 서로를 향한 저주와 원망이 난무한다. 그런데 아직도 목회자 은퇴에 대한 대책이 없다. 각 교회가 알아서 해야 하는데, 그 모양을 보면 평안한 곳이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교회가 부흥할 때 안수받은 수많은 목회자들이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본문 중)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1)

 

한국 사회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있다. 장례식장에서도 70대에 돌아가시면 아쉽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온다. 80대에서도 좀 아쉬움이 있고, 90대 이상은 되어야 장수하셨다는 말이 나온다. 이러한 기대 수명의 연장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교회 역시 다르지 않다.

 

예전에는 목회자 은퇴가 아주 특별한 일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목회자가 70세 정년을 채우고 은퇴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실제로 어르신들 중에서도 원로목사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원로목사가 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목회자 은퇴 예식이 자주 있다. 또 원로목사로 추대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심지어 어느 교회에는 원로목사가 두 분이 있다.

 

이러다 보니 목회자의 은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불미스러운 이야기들도 오가고, 무엇보다도, 목회자 은퇴 이후에 교회가 분란에 싸이는 경우가 많다. 원래 목회자의 은퇴는 영광의 순간이었다. 특히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목회하고 교인들의 축복 가운데 원로목사가 된다는 것은 목회자로서 정말 큰 면류관이다. 그것은 그가 말씀 가운데 성실했음을 의미하고, 목회가 순조로웠음을 의미하고, 건강도, 가정도, 영성도 올발랐음을 의미한다. 그 모든 것을 이루고, 한 교회에서 은퇴를 하는 것은 정말 큰 영광이다.

 

그런데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가 불미스럽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준비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아직 목회 은퇴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교단이 제시하는 규칙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없는 것은 아니다. 퇴직금은 교회가 적립하게 되어 있다. 보통 목사가 내는 십일조는 은퇴 적립금으로 가지고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작은 교회의 경우 이 적립금을 유지하고 있는 교회가 드물고, 큰 교회의 경우는 이러한 적립금만으로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명예로운 은퇴의 때에 돈 이야기가 오갈 수밖에 없다. 평생 목양 일념으로 교인들을 돌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돈 이야기가 오가니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목사 입장에서는 섭섭한 마음이 든다. 모든 것 다 바쳐 이룬 목회인데, 교인들이 살아갈 집 한 채 구할 돈도 마련을 못 해 준다. 평생 사택에서 살고, 모은 돈은 교회 건축할 때 앞장선다고 몇 번이나 교회에 드렸는데, 이제 내가 살 집을 못 마련한다. 내 손에 세례받고, 결혼하고, 그 자녀가 유아세례를 받고 자라나 결혼까지 했는데, 내게 험한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내가 목회한 결과가 결국 이런 것인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교인들 입장도 들어 보니 이해가 된다. 그들도 다르지 않다. 박봉에 아이들 키우고, 부모님 모시고, 내 집 마련하고, 살아 보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지냈다. 거기에 교회에 헌금하고 헌신하며 살았다. 그런데 목사는 은퇴하면서 내가 평생 모아도 만들지 못할 큰돈을 요구한다. 영적 부모로 목사님을 모시고 은혜를 받았던 추억을 떠올려 보지만 이건 합리적이지 않다. 적정한 선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다른 생각이 목회자 은퇴 시기에 맞부딪힌다. 서로 실망과 섭섭함이 오간다. 그런데 다른 방법이 없다. 어쨌거나 결론을 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 분란이 찾아온다. 은퇴목사를 편드는 교인도 있고 이에 반대하는 교인도 있다. 은퇴하는 목사도 자기 몫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교인들은 또 그런 모습에 실망한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교회가 한국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미 사회에서는 자녀들이 부모를 봉양할 것이라는 생각이 사라졌다. 예전처럼 은퇴하신 부모님을 한 집에 모시고 사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 되었다. 어르신들도 자녀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회가 변한 것은 이미 20년도 더 된 것 같다. 한국 사회는 이 과정에서 커다란 후유증을 앓았다. OECD 국가 중에 노인 빈곤율 1위라는 사실이 이 상황을 잘 말해 준다.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자식에게 기대했던 부분이 무너지면서, 경제 대국이라고 하는 대한민국의 노인들이 OECD 국가 중에 가장 가난한 노인들이 되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바로 노인 자살률이다. 그 수치가 평균 자살률의 4배 이상 치솟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기초노령연금 제도가 실행되면서 노인 자살률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2) 이제야 한국 사회가 노령화에 적응하고, 그에 따른 사회 시스템이 정착되고, 무엇보다 문화와 의식이 변하고 있다.

 

한국 교회도 이 과정을 따라가고 있다. 내 인생을 모두 드렸던 교회인데, 교회가 내 노후를 감당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목회자로서는 당연해 보이는 기대일 수 있다. 그런데 사회가 변했고, 교인들이 변했다. 이미 사회에서는 자식들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내 부모도 감당하지 못하는 세대들에게 너희 목사를 책임지라고 한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이런 속사정이 있지만, 현재 한국 교회에서 목회자 은퇴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정말 폭탄과 같다. 곳곳에서 교회가 깨지고 서로를 향한 저주와 원망이 난무한다. 그런데 아직도 목회자 은퇴에 대한 대책이 없다. 각 교회가 알아서 해야 하는데, 그 모양을 보면 평안한 곳이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교회가 부흥할 때 안수받은 수많은 목회자들이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소위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었다. 곳곳에 일촉즉발의 위험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목사의 은퇴를 ‘한국 교회의 뇌관’이라고 표현했다. 이 뇌관이 터지는 순간 그동안 한국 교회에 쌓여왔던 많은 문제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한국 교회가 이 목사의 은퇴 문제를 시급하게 다루어야 한다. 이미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연쇄 폭발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더 늦어지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몇 가지 제안을 해 본다.

 

첫째, 교회, 특히 각 교단들은 이제 목회자 은퇴에 대한 규칙과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각 교회가 알아서 감당할 일이 아니다. 합리적인 규칙이 있어야 거기서부터 각 교회가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개인도, 교회도 그런 일을 처음 맞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들이 목회자의 은퇴 직전에 돈 이야기를 하게 되면 분란의 소지가 생긴다. 둘째, 노회 차원에서 ‘목회자 은퇴 중재 위원회’를 마련해야 한다. 당사자들이 마주 앉아 논의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 목사와 교인으로 몇십 년을 함께 했는데 돈 이야기로 서로 마음 상하게 하면 안 된다. 셋째, 교육이 필요하다. 은퇴하는 목회자도 은퇴에 대해서 교육을 받아야 하고, 떠나보내는 교인들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기본적인 상식과 절차에 대해서 미리 알고 대비해야 한다.

 

은퇴가 목회자의 아름다운 피날레가 되기를 바란다. 교회가 감사와 은혜로 응답하고, 목사는 마지막 축복을 남기는 아름다운 일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서로가 그리워하고, 목사가 그 교회에 오면 서로 반가워하고, 사랑으로 안아 줄 수 있는 관계가 되길 바란다.

 


1) 기윤실 공동대표.

2) 실제로 2009년 80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127명이었다. 당시 자살률 평균은 31명이었다. 이후 노인자살률은 빠르게 감소하며 2020년 61명까지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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