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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 시대 교회는 어떤 모습을 보여 주고 어떤 소리를 들려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쾌적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더 나은 삶, 더 윤택한 삶을 간구하는 간절함만큼이나 폭염 속에 희생당하는 창조 세계와 기후 약자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본문 중)
송진순(한국교회환경연구소 소장)
7월 하순은 때늦은 장마로 예년 같지 않게 서늘했다. 사람들은 살 만한 여름이라 했지만 선뜻 안도할 수 없었다. ‘올해 여름이 앞으로 맞이할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라는 경고가 어느새 익숙해졌고, 매년 살인적인 더위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올봄은 유독 따듯했다. 꽃들이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못한 채, 개나리, 철쭉, 진달래, 산수유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식물들은 급격한 기온 상승에 온몸으로 개화 시기를 밀어내고 위기의 징조를 알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연이 보내는 구조 신호를 읽지 못하고 꽃의 향연에 카메라를 들이대기에 바빴다.
이번 5월 세계 평균 기온 역시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EU의 기후 변화 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 변화 서비스에 따르면, 지구 평균 기온은 15.81℃로, 산업화 이전에 비해 1.42℃나 치솟은 것으로 관측되었다. 대기와 해수면 온도는 심각한 수준이었고, 극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 해수면 평균 온도는 20.9℃를 기록했다. 그 영향으로 서유럽의 상황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5월부터 시작된 폭염이 6월에는 41℃에 달했고, 7월 말 프랑스의 공식 보건청에 집계된 초과 사망자는 5,700명을 넘어섰다.

사실 6월 말 유럽 내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1,300여 명으로 추산될 때 이미 인명 피해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는데, 7월 말 사망자 집계를 보면서는 걱정을 넘어 두려움이 생겼다. 물론 초과 사망자 수치는 폭염 자체로 인한 사망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5,700여 명의 희생자 중 3분의 2가 65세 고령자이며 파리권 거주자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직접 사인이 열사병이 아닌 심근경색, 급성 호흡 부전 등의 질환이어도 이들의 죽음을 가속화 한 것이 더위임은 분명하고, 폭염으로 응급실이 마비되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다든가, 의료 접근성이 떨어져서 혹은 돌봄을 받지 못하고 홀로 방치되어 숨진 경우가 다수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이 상황을 유럽 전역으로 확대하면 초과 사망자는 13,000여 명에 이른다.
65세 이상 고령층, 자택 사망, 도시권이라는 세 개의 지표는, 다시 말해 집에서 더위를 견디다가 사망하는 독거노인의 급격한 증가는, 바로 지금 우리가 대면하는 기후 위기의 모습이다.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는 맨몸으로 위기를 버티고 있고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고령자, 장애인, 외부 노동자, 경제적 취약 계층이며, 그리고 폭염과 가뭄에 희생당하는 동물들과 식물들이다. 모두가 기후 약자이고, 기후 난민이다.
이제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듯이, 위기는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그 피해는 모두에게 같은 정도로 다가가지 않는다. 폭염, 폭설, 가뭄, 한파, 산불 등 이상 기후는 자연 현상이지만, 그 피해는 사회적 불평등의 깊이만큼 치명적이고 가혹하다. 누군가는 에어컨 바람 아래 쾌적하게 온라인 쇼핑을 하고 삶의 여유를 누릴 때, 누군가는 쪽방과 지하방에서 덥고 습한 열기를 맨몸으로 견디며 끼니를 걱정한다. 누군가는 비 오듯 땀 흘리고 열기에 지친 채 50℃가 넘는 비닐하우스에서 수박을 따고, 완전 무장을 한 채 공사 현장에서 도색 작업을 하며, 택배 상자를 수백 번 상하차하며 배달한다.
우리 시대 미디어는 불편하고 부정적인 것들은 가리고, 부유하고 풍요롭고 긍정적인 것은 계속 내보낸다. 소위 알고리즘 세계에서는 불편한 현실보다 소비하고 싶은 풍경을 끊임없이 보여 주기에 기후 약자의 얼굴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더 나은 삶, 더 멋진 삶, 더 윤택한 삶을 희구하는 이들에게는, 돈으로 살 수 있는 풍요 이면의 어둠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간혹 들린다 해도,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교회는 어떤 모습을 보여 주고 어떤 소리를 들려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쾌적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더 나은 삶, 더 윤택한 삶을 간구하는 간절함만큼이나 폭염 속에 희생당하는 창조 세계와 기후 약자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얼마 전 전주YWCA와 지역 교회들에게 “기후 정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로 강의와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기후 정의라는 말의 뜻을 나누고, 생태적 관점에서 성서 말씀을 다시 읽고, 교회들이 기후 정의를 실천하는 돌봄 사역을 함께 디자인했다. 더위에 지친 누구나 편히 와서 물과 시원한 바람을 맛볼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교회 쉼터’, 일회용품을 사용할 경우에는 헌금을 하고 그것을 기후 약자를 위해 다시 내주는 플라스틱 프리 ‘교회 카페’, 교인들이 기부한 라면과 햇반으로 트리를 만들고 지역의 취약 계층에게 나누는 ‘8월의 크리스마스트리’,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 밥상’, 돌봄 취약 어린이들과의 생태 동화 읽기 모임 등의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여러 교회로부터 모인 20대에서 60대까지의 교우들이 세대를 넘어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 도전받고, 교회가 지역 사회와 함께 어떻게 기후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큰 감동을 주었다.
단순히 작은 실천만으로 기후 위기를 멈출 수 없고, 기후 정의를 다 이룰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상 기후가 보내는 위기 신호에 대한 무감각, 약자들의 고통을 보지 못하고 그들의 신음을 듣지 못하는 무감각은 더 큰 위기 신호일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통받는 이들을 먼저 돌아보셨으며, 작은 자들의 신음을 기꺼이 들으셨음을 안다. “시대를 분별하고, 깨어 있어라”라는 그분의 명령에 응답하는 것은 어쩌면 오늘날 복음을 살아내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때로는 먼저 분별하는 자들의 목소리와 작은 실천이 무력해 보이지만, 세상을 바닥에서부터 바꾸었던 것은 다름 아닌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무력함이었다.
7월의 늦은 장마는 때아닌 서늘한 여름을 선사했다. 곧이어 9월까지는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진다고 한다. 잠시 서늘했던 날씨가 보이지 않는 고통들에까지 눈멀게 만들고 기후 위기의 고통으로 힘겨워하는 이들의 눈물까지 보지 못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남은 여름이 어둡고 낮은 곳에 있는 이들, 홀로 고통당하는 기후 약자들에게 교회가 다가서는 시간이 되길 바라 본다. 성서를 묵상하며 기후 정의의 의미를 생각하며, 교회와 지역 사회 그리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신음을 들을 줄 아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이 땅에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 이들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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