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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비용과 시간, 수고를 교회가 감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국가가 무연고자를 위한 공영 장례를 일부 지원하고 있지만, 한 사람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고 책임지는 곳은 아직 없다. 1인 가구와 독거노인이 해마다 늘고 고독사가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닌 지금, 그 마지막 부탁을 건넬 곳이 없는 이들의 불안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크다. 이들에게 교회가 ‘당신의 장례는 우리가 책임지겠다’라고 먼저 말을 건넬 때, 남은 생을 옥죄던 불안은 풀리고, 이웃들은 비로소 교회를 향해 마음을 열어 올 것이다. (본문 중)

 

최성찬(진주주님의교회 작은장례위원회)

 

종이 관

 

2022년 무렵 팬데믹을 거치며 노령층 사망자가 급증했고, 해외 교역이 끊기면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목관을 구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 당시 나는 도쿄 올림픽 선수촌에 제공된 골판지 가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종이 관을 고안하고 특허까지 취득했다. 그러나 정작 제작된 골판지 관은 단 한 개도 팔리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부모를 골판지 관에 모신다는 죄스러운 마음,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는 체면 문화, 그리고 장례 업체 간의 폐쇄적인 유통 구조 때문이었다. 넘기 어려웠던 벽은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업계 구조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부모의 장례에 종이 관을 쓰는 일에는 사람들이 온갖 부담을 느끼지만, 정작 자신의 장례를 생각할 때는 별로 거리낌이 없다는 점이다. 내 장례는 내 뜻대로 조촐하게 치러도 되지 않겠는가. 이 물음은 장례 문화나 업계 관행이 아니라 당사자의 시선으로 장례 절차를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unsplash

 

개인의 결심에서 교회의 결단으로

 

돌아보면 나에게 이 물음의 뿌리는 30년 전 어머니의 장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교우 간의 정과 교회 공동체의 소중함을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느꼈다. 장례는 결국 교인이 교회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해 주는 동아줄 같은 예식이었다. 그런 점에서 교회가 교인의 장례를 섬기는 일은 지극히 소중한 목회적 돌봄이다.

 

2025년 초, 암 투병 중이던 한 권사님으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교회가 준비한 작은 장례로 자신의 마지막 예식을 치러 달라는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교회에서 작은 장례 세미나를 열었다. 그 뜻에 공감한 교우들과 작은장례위원회를 꾸리고, 교인을 위한 작은 장례를 구체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곧 한 걸음을 더 내디디게 되었다. 교회 인근에 거주하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웃의 장례까지, 교회가 감당할 수는 없을까? 아무도 반기지 않는 가난한 이웃의 마지막 길을 교회가 자원해서 짊어질 수 있을까?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물음은 우리 위원회가 시선을 이웃의 장례로 돌리게 한 출발점이 되었다.

 

무빈소 일일장: 작은 장례

 

작은 장례의 기본은 무빈소 일일장이다. 별도의 빈소를 차리지 않고, 교회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임종 예배, 위로 예배, 입관 예배, 발인 예배, 하관 예배로 이어지는 기존 장례 예식은 사실 유교적 상장례 형식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상주와 조문객 모두를 배려한다는 점에서, 무빈소 일일장은 오히려 성경적이며 부활의 소망을 지닌 우리의 정체성에 걸맞은 예배 형식이다.

 

본인을 위한 화단을 어떻게 꾸밀지, 영정 사진은 어떤 것을 쓸지, 부의금을 받을지, 조문객에게 음식을 대접할지를 당사자가 생전에 미리 정해 교회에 알린다. 장례 절차를 설계하는 문서와, 유언·유산 분배 등 외부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개인사를 담은 문서는 처음부터 분리해서 작성한다. 장례 절차 문서는 교회가 보관하고, 유언과 유산에 관한 문서는 가족에게 직접 전달되며 위원회는 그 존재만을 확인·검증한다. 이로써 한 사람의 작은 장례가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권사님의 장례가 보여준 것

 

2026년 7월, 작은장례위원회의 주관으로 권사님이 소원하시던 작은 장례를 치렀다. 교회 강단 앞에 소박한 꽃바구니가 놓이고 영정 사진으로 화단이 꾸려진 가운데, 유족이 참석한 자리에서 약력 보고와 조사, 상주의 감사 인사로 예배가 차분히 마무리되었다. 영안실 이용은 이틀에 그쳤고, 유해는 의과 대학에 기증되었다. 화환도, 부의금도, 접대 음식도 없었다. 오직 한 번의 예배로, 유족을 위로하고 고인을 배웅하는 예배 그 자체로 모든 절차가 끝났다. 예배는 소박했지만 참석했던 모든 이들에게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예배로 남았고, 작은 장례가 이 시대에 필요한 장례의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감사했다.

 

교회가 짊어질 수 있는 짐

 

이 정도의 비용과 시간, 수고를 교회가 감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국가가 무연고자를 위한 공영 장례를 일부 지원하고 있지만, 한 사람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고 책임지는 곳은 아직 없다. 1인 가구와 독거노인이 해마다 늘고 고독사가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닌 지금, 그 마지막 부탁을 건넬 곳이 없는 이들의 불안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크다. 이들에게 교회가 ‘당신의 장례는 우리가 책임지겠다’라고 먼저 말을 건넬 때, 남은 생을 옥죄던 불안은 풀리고, 이웃들은 비로소 교회를 향해 마음을 열어 올 것이다.

 

지금은 교회가 나서서, 시대정신과 기독교 정신에 맞는 장례 문화를 선도해야 할 때다. 세상은 이미 간소한 장례로 관심을 돌리고 있지만, 교회는 여전히 옛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작은 장례로 교인과 이웃을 함께 섬기는 것, 이것이 이 시대에 절실한 교회의 사역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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