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기도는 우리가 개인 기도에 가장 많이 활용하겠지만, 주기도를 사적인 기도를 위한 가이드로만 생각하는 것은 조금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기도가 하나님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여하신 제사장으로서의 공적인 직무와 관련이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본문 중)

노종문(<좋은나무> 편집주간)

 

후반의 세 간구

 

주기도의 전반부 세 가지 간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라면, 두 번째 세 가지 간구는 우리의 삶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세 가지 간구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오늘 우리에게 주소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 우리의 빚을 탕감해 주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탕감해 준 것처럼.

그리고 우리를 시험으로 이끌지 마시고,

 다만 악한 자로부터(또는 악으로부터) 구하소서.1) (마태복음 6:11-13)

 

첫째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간구 기도를 드리도록 명령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고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일용할 양식 이상의 것을 구하지 말고 꼭 그만큼만’ 구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소원을 아뢰고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하심에 의지하여 살라는 말씀입니다. 다음 말씀들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7:9-10)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7)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로마서 8:32)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단순히 간구하는 시간을 가지면 됩니다. 단순한 간구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며 더 신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간구 기도는 영적 성장을 위한 중요한 디딤돌입니다. 혹시 뭔가 빠뜨리고 구하지 않으면 받지 못할까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도 하나님 아버지를 잘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신앙과 비슷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기 좋아하시며 좋은 것으로 주시는 아버지십니다.

 

또, 간구 기도에 반대하는 중요한 논리가 있는데, 간구 중심으로 기도하다 보면 현세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구 기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간구 기도의 오용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대화하듯이 기도함으로써, 간구 기도가 집착과 고집의 강화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간구로 기도를 시작하되, 내 관점의 고집과 집착이 아닌, 하나님의 더 지혜로우신 응답에 마음을 열어가며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간구 기도를 드리라고 하셨고, 간구 기도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자녀의 특권입니다.

 

둘째는, 죄 용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마태복음의 헬라어 본문에서는 우리의 죄 용서 문제를 비유적인 표현으로 ‘빚의 탕감’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적 용어로서 죄는 단순히 ‘나쁜 짓’이 아니라 관계적인 개념입니다. 즉, 의의 반대 개념으로서, 언약을 깨뜨림으로써 배신하거나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나, 또 죄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미묘한 문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통해 예수님 안에서 죽었다가 살아남으로써 과거의 모든 죄로 인한 유죄 선고를 면하게 되었다(6:3-4; 8:1). 그를 지배하던 죄의 세력은 유죄 선고를 받아 추방되었고(8:1) 새로운 삶을 살도록 성령을 선물로 받았다(8:11). 그러나 우리의 몸은 성령이 내주하신 이후에도 죄의 옛 습관들을 따르는 경향이 남아 있다. 이 문제 때문에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옛 습관들을 따라 죄를 짓게 되므로, 옛 습관들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깨뜨리면서, 새로운 습관들을 형성해야 한다(8:12-13).

 

예수님은 이 현실적인 문제를 잘 알고 계셨고, 우리가 날마다 주기도를 따라 기도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지은 죄, 즉, 죄의 습관을 따라 행한 것을 고백하며 죄 용서를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들도 이 죄 고백의 필요를 잘 알고 있었고, 요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길을 잃게 만드는 것이고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들을 고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시니 우리 죄들을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로부터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지은 적이 아예 없다고 말하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없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8-9)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양심을 살피고 부끄러운 부분을 하나님 아버지께 모두 아뢰어야 하며, 깨끗이 씻음받아야 합니다. 타인에게 실제로 해를 끼친 것이 있다면 찾아가서 배상을 하고, 용서를 구하고, 다시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주어야 합니다.

 

가끔 죄와 관련하여 지나친 극단의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민감한 죄의식을 가지게 되는 세심증의 오류입니다. 바늘로 찔러 고름을 빼야 할 것을 창으로 찔러 상처를 내는 어리석음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양심을 살피되 지나친 죄의식을 가지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이러한 세심증의 오류는 혼자서 진단하기 어려우므로 성숙한 그리스도인 지도자와 함께 자신의 기도 경험과 내용을 나누는 영성 지도를 통해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간구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죄 용서를 간구하러 나오기 전에 먼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고 나와야 함을 깨닫게 만드십니다. 이 부분의 헬라어 순서는 이렇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우리의 빚을 탕감해 주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탕감해 준 것처럼.

 

그러므로 주기도를 따라 순서대로 기도하다가 기도하는 우리는 당황하게 됩니다. 기도를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마치 제단 앞에 제물을 들고 나왔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서 제물을 그 자리에 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용서를 구하고 돌아와야 했던 사람처럼(마 5:23-24), 기도를 하다가 멈추고 나에게 빚진 자의 빚을 탕감해 주고 나서 기도를 계속하라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빚을 탕감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었으며, 지금도 하나님께 빚진 것을 탕감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빚진 어떤 사람에게는 관대할 수 없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주기도로 기도하던 중에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일방향의 ‘빚의 탕감’과 쌍방향의 ‘화해’를 구분하는 것이 먼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헬라어 ‘아페시스’라는 단어는 탕감을 의미하면서 또 문맥에 따라 용서를 의미합니다. 용서는 일종의 탕감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빚의 탕감은 탕감해 주는 사람의 일방적 결단으로 행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반면, 화해는 상대방의 반응이 필요한 것이라서 혼자 결단한다고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화해가 일어나려면, 먼저 잘못한 사람이 사과와 배상을 하고 재발이 없을 것이라는 다짐을 한 후, 그것을 피해자가 수용하고 용서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탕감은 빚진 자와의 대면 없이도 관대히 빚을 돌려받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선언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것은 양측의 관계 회복과는 별개의 행위입니다. 예수님이 주기도에서 언급하신 것은 일방적인 빚의 탕감입니다. 이 일방적인 탕감을 ‘용서’라고 이해할 수 있고, 이것은 쌍방향의 ‘화해’와는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물론, 빚의 탕감도 결코 간단하거나 쉬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존 스토트의 다음과 같은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참된 회개의 주요한 증거 가운데 하나는 용서하는 정신이라는 것이다. 일단 우리의 눈이 열리게 되어 하나님께 범한 우리의 범죄의 극악성을 깨닫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한 해는 비교적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한편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범죄를 과장하여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를 경시한다는 증거이다.2)

 

세 번째 간구는 시험에 빠지지 않고, 사탄의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보호하심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악한 자로부터 구하소서”를 ‘악으로부터 구하소서’라고 번역할 수도 있지만, 최근에 나온 거의 모든 주석은 이 부분을 중성 형용사 ‘악’(the evil: 나쁜 일)보다는 남성 형용사인 ‘악한 자’(the evil one), 곧 사탄으로 번역합니다. 그러나 한 쪽만 취할 필요는 없으며, 두 번역 다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까지도 시험했던 사탄(악한 자)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자신의 권세를 이용해서 악인들을 장악하고 조종하며 신자들을 유혹하거나 핍박함으로써 시험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날마다 주기도로 기도할 때, 인류가 극복해야 할 궁극적인 원수가 단순히 개인의 부패한 양심이나, 타락한 인간 권력이나, 제도나 구조의 악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사탄임을 인식하게 하셨습니다.3)

 

또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악(나쁜 일)과의 싸움은 영적인 수준뿐 아니라 물질적, 육체적, 정신적, 문화적, 사회 구조적, 사상적 수준 등 모든 수준에서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수준에서 우리는 각 수준마다 각각 알맞은 여러 수단을 동시에 사용하며, 그것과 함께 반드시 기도에 의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병에 걸리면, 즉, 질병이라는 악을 만나면, 육체적 수준에서 약도 사용하고 의사의 도움도 받으며 악과 싸우면서, 동시에 기도로 하나님께 병을 낫게 해 주시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유혹과 핍박과 고난은 우리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문제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이런 커다란 유혹과 핍박과 고난을 만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을 의심하는 시험에 들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 아버지께 빨리 피할 통로를 열어 주시도록(고전 10:13) 간구하며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제사장의 중보기도로서 주기도

 

지금까지 주기도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주기도는 우리가 개인 기도에 가장 많이 활용하겠지만, 주기도를 사적인 기도를 위한 가이드로만 생각하는 것은 조금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기도가 하나님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여하신 제사장으로서의 공적인 직무와 관련이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도의 직무를 잘 수행한 사람에게도 급여(보상)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리스도인의 제사장 직무와 관련이 있다면, 주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도 그런 목적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즉, 주기도는 세상을 위한 제사장적 중보기도를 위한 가이드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 경험과도 일치합니다. 날마다 주기도로 기도하다 보면, 우리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고(“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해지게 하소서”), 병든 이웃을 위해 중보기도 하게 되며(“악으로부터 구하소서”), 가족과 이웃의 필요를 위해(”일용할 양식을 오늘 우리에게 주소서“) 간구하게 됩니다. 제사장적 중보기도가 자연스럽게 발전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주기도를 따라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는, 단순히 사적인 기도에서 이 방법을 따르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이렇게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진행시키시며, 우리는 기도하는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에 참여합니다.4)

 

군대가 전쟁을 치를 때, 포병은 대포를 담당하고, 보병은 접근전을 담당하고, 운전병은 운전을 담당하고, 행정병은 서류 보고를 담당합니다. 군인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조금씩 담당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일이 진행될 때는 많은 천사들이 여러 가지 일들을 각각 담당하는 동안, 제사장들은 기도를 담당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불러 왕을 섬기는 제사장들로 세우시고 중보기도와 세상을 축복하는 특별한 직무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이 직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공통 직무이며, 각 사람이 받은 다양한 은사와 지위에 따르는 임무들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 시간은 다른 모든 일을 하는 시간보다 더 중요합니다.

 

주기도로 기도하기

 

1세기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아침과 오후와 저녁에 시간을 정하여 세 번 기도를 드렸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던 시간에 맞추어 세 번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서 거의 사라져버렸지만, 구약 시대부터 내려오던 오랜 전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루 세 번, 주기도로 기도하는 실천을 얼마간 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세 번의 기도 시간을 정하되, 시간을 엄격히 지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세 번의 기도를 통해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계속 인식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모든 일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삶이 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좋을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저녁에 잠들기 전에 한 번 기도할 수 있고, 오후에 잠시 시간을 내어 조용한 곳에서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아침에 여유 있게 기도 시간을 가지는 분들은 의식적으로 주기도의 형식을 적용해서 기도하고, 오후와 저녁에는 짧은 시간 잠시 멈추어 주기도를 따라 기도해 보십시오. 각자 자신이 정한 방법으로 주기도의 순서로 기도해 보고, 성령님께서 어떻게 각 기도 제목들을 확장하며 이끄시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주기도는 개인적인 사적인 기도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교회와 이웃과 나라를 위해 중보하는 제사장의 공적인 기도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주기도로 기도하는 가운데 오늘 성령님께서 만나게 하시는 이웃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하루 동안에 특별히 마음에 남는 사건이나 경험을 기도로 올려드리십시오. 기도는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입니다. 기도는 자녀들에게 주신 특권이며,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여하신 공적인 임무입니다. 이 특권과 임무를 잘 수행하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함께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합시다.

 


1) 오늘날 우리가 덧붙여 암송하는 “나라와 능력과 영광이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는 오래된 주요 사본에는 나오지 않고, 후대 사본에 나라, 능력, 영광 세 가지가 일부만 등장한다. 아마도 예배 중에 주기도를 암송하면서 기도를 마치는 말이 덧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2) 존 스토트, 『예수님의 산상설교』, 김광택 옮김 (생명의말씀사, 1983), 175.

3) 비교, 요 17:15. 이 부분에서도 예수님의 간구는 제자들을 ‘악한 자로부터 지켜달라’는 것이었다.

4)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이 하신 일을 이어받아 일하게 될 것이며, 그 일을 하는 방법은 예수님 이름으로 간구하여 응답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요 14:12-13).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그들의 힘으로 성취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땅에 도래하는 나라이다. 사람들은 기도로써 하나님 나라의 일에 참여하게 된다. 기도와 실천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실천을 기도보다 우위에 두고자 하는 사고방식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충분히 숙고하지 못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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