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금리가 부동산 시장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치고 기준 금리 조정은 부동산 시장만을 보고 결정할 수 없다면,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는 것일까? 정부 정책으로 부동산 경기 흐름의 방향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부동산 경기 순환 사이클의 진폭을 조정하는 일은 가능하다. (본문 중)

이성영(희년함께 토지정의센터장)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불과 1년 전, 대다수 부동산 전문가들이 언론에서 공급 부족, 임대차 3법의 영향으로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대선에서 양당 후보 모두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며 주택 250만 호 이상 공급, 용적률 완화를 통한 1기 신도시 재건축 공약 등을 남발했던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정부는 오르는 집값을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지 못했지만, 반대로 이번 정부는 급격한 하락을 걱정하며 집값을 유지 또는 서서히 떨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정부는 무능해서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했고, 이번 정부는 유능해서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일까? 지난해 8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념 기자 회견에서 새 정부의 성과로 ‘폭등한 집값과 전셋값을 안정시켰다’고 했지만, 취임 100일 동안 별다른 부동산 대책도 내놓지 않았는데 집값과 전셋값이 하락한 것을 윤석열 정부가 노력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부동산 가격의 결정적 요인, 금리

 

급등하던 집값과 전셋값이 하락세로 돌아선 가장 큰 이유는 인플레이션을 잡고자 미국이 가파르게 기준 금리를 인상하면서 한국도 기준 금리를 인상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주택 가격 변동에 영향을 준 요인을 분석한 국토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1) 금리, 대출 규제, 주택 공급, 인구 구조, 경기 중 금리가 주택 가격 변동에 50-60% 수준으로 영향을 끼친다. 쉽게 말해, 주택 가격은 압도적으로 금리에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아래 그래프는 2008년부터 2023년 2월까지 한국은행 기준 금리 변동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다. 집값이 급등했던 2017년부터 2021년까지는 금리가 매우 낮은 때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부터 기준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집값은 하락으로 돌아서고 있다. 그래프만 보아도 집값과 금리는 반비례 관계임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럼 집값 상승으로 정권까지 내어줄 정도로 전 국민의 욕받이가 되었던 지난 정부는 왜 진작 금리를 올려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지 않았을까? 금리는 경제 전반에 영향을 끼치기에 부동산 시장만 보고 금리를 조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출처 : 한국은행, “알기 쉬운 경제 이야기”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는 반드시 경기 순환이 발생한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한 영역인 부동산 시장도 경기 순환을 피할 수 없다. 정부 정책으로 경기 순환 사이클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정부는 경기 순환 사이클의 진폭을 완화시킬 수 있을 뿐이다. 기준 금리는 경기 순환 사이클의 진폭을 완화시킬 수 있는 유용한 정책 도구이다. 시장이 과열된다 싶으면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높여 시중의 돈을 흡수하여 시장은 안정시키려 하고 시장에 불경기가 찾아오면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어 시중에 돈을 공급하여 경기를 회복하고자 노력한다. 이렇듯 각국 중앙은행들은 경제 전반을 보면서 금리 정책을 운용하기에 부동산 가격만을 보고 금리를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이 한국 정부로부터는 독립했지만 미 연준의 통화 정책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것은 아니”라고 했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말처럼, 2020년 미국을 필두로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0%까지 낮추는 상황에서 한국만 부동산시장을 잡겠다고 금리를 올릴 수는 없었다. 지금도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하락한다고 해서 금리를 낮출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렇듯 금리가 부동산 시장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치고 기준 금리 조정은 부동산 시장만을 보고 결정할 수 없다면,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는 것일까? 정부 정책으로 부동산 경기 흐름의 방향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부동산 경기 순환 사이클의 진폭을 조정하는 일은 가능하다. 지난 정부에서 부동산 관련 정책을 내지 않았다면 집값은 더 올랐을 테고, 현 정부 역시 하락의 속도를 낮추기 위해 여러 정책을 내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집값을 조정하는 일이 아니다. 한국의 주택은 공급부터 소비까지 매우 국가 주도적으로 되어 있어서 국민들이 정부가 집값을 조정해 주길 기대하지만 영미권과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정부가 집값을 조정하는 역할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경기 순환 주기와 연동된 금리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집값은 결국 시장 상황에 따라 결정되기에 정부가 집중해야 할 역할은 국민들의 주거 안정과 건강한 시장이 되도록 시장의 질서와 규칙을 세워주는 일이 되어야 한다.

 

해당 글과 관련없는 이미지 입니다.

 

정부의 역할: 국민 주거 안정과 시장 질서 확립

 

국민들의 주거를 안정시키고 시장의 질서와 규칙을 세운다는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 보면, 자가든 임대든 살고 있는 집에서 쫓겨날 걱정이나 주거비 급등의 걱정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 주거의 안정성이며, 건강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 시장의 질서와 규칙을 세운다는 말은 거래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소득 대비 과도한 대출 차입을 예방하고, 지대 추구2)를 방지하여 자본의 흐름이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들의 주거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 현재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전체 주택 대비 공공임대주택 수)은 5.5%3)로 OECD 평균인 8%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최소 OECD 평균 수준까지 공공임대주택을 꾸준히 공급해야 한다. 아울러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34%의 주거 안정을 위해 OECD 선진국 수준으로 임대차 규제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 2020년 7월 도입한 임대차 3법(거주기간 2+2년 보장, 임대료 5% 규제, 전월세 신고제)은 정책 도입 시점과 세부적인 측면에서 보완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민간 임대 주택 거주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서는 가야 할 방향이었으며 앞으로도 OECD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해 가야 한다.

 

시장의 질서와 원칙을 확립하여 건전한 시장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거래의 투명성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1995년 부동산실명제 도입, 2006년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제 도입과 같은 제도들로 인해 부동산 시장에서 가격을 조작하고 차명으로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과 같은 시장을 교란하는 시도들은 사라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계약일 기준 실거래가 신고의 틈을 노려 최고가 계약 후 취소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조작하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4)

 

전월세 신고제를 통해 민간 임대차 거래의 투명성을 대폭 높였지만, 저층 주거지 가격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전세 사기와 깡통 전세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에 저층 주거지의 시세 조작을 막을 수 있는 가격 확인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

 

부동산 가격에 과도한 거품이 발생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대출 제도의 부실에 있다. 부동산 시장의 거품과 붕괴로 인한 금융 위기를 호되게 겪은 선진국들은 소득에 비해 대출 원리금 상환 금액이 과도하지 않도록 총부채 원리금 상환 비율(DSR)을 40-50% 수준에서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한국은 뒤늦게 DSR 규제를 도입하면서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자금을 통제하기 어려웠다. 주택담보대출 비율과 전세자금 대출은 정부의 보증 없이 민간 은행이 자율적인 심사로 대출이 진행되도록 하되 DSR을 엄격히 관리하면서 가계 부채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동산 시장에서 지대 추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토지 보유세를 높여 사회가 함께 만들어 낸 토지 가치 상승분을 공공이 환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금리가 떨어진다고 해서 중고차 시장으로 돈이 몰리지는 않는다. 이처럼, 토지 보유세를 강화하여 토지 불로소득을 줄이면 시중에 유동성이 늘어나더라도 부동산 시장으로 과도하게 돈이 흘러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현재 한국의 보유세는 세율이 낮다는 문제뿐 아니라 금리에 따라 요동치는 ‘지가’(땅값)를 기준으로 재산세, 종부세가 부과되다 보니 금리에 따라 부과되는 세금이 등락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금리에 따라 변동이 심한 지가가 아니라 경제의 펀더멘털을 반영하는 ‘지대’(토지 임대료)로 과세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정책들이 정부가 집중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국민들의 주거를 안정시키고, 시장의 체질을 건강하게 바꾸는 정책을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시행하면 집값의 변동 폭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집값의 추이만 보면서 긴 호흡으로 일관성 있게 해야 할 정책들을 도외시하면 시장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주거 안정과 시장의 체질 강화에 필요한 정책을 중심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을까? ‘인기가 없는 정책이라도 나라를 위해 필요하면 하겠다’는 뜻을 밝힌 윤석열 정부가 당장의 인기를 위한 부동산 투기 부양책이 아닌 국민들의 주거 안정과 시장의 체질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드는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1) 이태리, 박진백, “주택시장과 통화(금융)정책의 영향 관계 분석과 시사점”, <국토정책 브리프> 902호, 2023. 1. 30.

2) 별다른 노력 없이 일정한 이득을 얻기 위하여 비생산적이고 부당한 활동에 경쟁적으로 자원을 낭비하는 행위. 또는 그러한 현상(네이버 국어사전).

3) 2021년 8월,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을 5년, 10년 후 분양하는 분양전환임대주택, 전세임대주택까지 다 포함하여 OECD 평균을 넘었다고 발표하였지만, OECD 주요 국가들처럼 20-30년 이상 제공되는 장기 공공임대주택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5.5%이다.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55343.html

4) 박초롱, “신고가 거래 후 취소집값 띄우기기획 조사 나선다”, <연합뉴스>, 2023.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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