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의 동화 작가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세상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고, 아름다워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급진적인 꿈을 꾸었다. 그리고 자본을 거스르는 소박한 삶을 직접 살아 내 보였다. ‘권 집사’의 장례식 때 전국에서 찾아온 수많은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동네 주민들의 반응이 이를 방증한다. (본문 중)
박예찬(IVP 편집자)
[책 소개] 권정생 지음 | 『우리들의 하느님』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1일 | 320쪽 | 15,000원
책의 명예
책의 명예는 어떻게 얻어지는가? 우선 권위 있는 상을 받는 방법이 있다. 노벨 문학상, 부커상, 퓰리처상 등 다양하다(주로 문학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방법도 있다. 아마존 판매 1위 도서나 밀리언셀러처럼, 많은 사람이 읽었다는 것은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또 하나, 이와는 사뭇 다른 명예의 길이 있다. 바로 금서가 되는 것이다. 지배 권력에 의해 금지된 책, 다시 말해 판매가 중지되고, 회수되며, 불타고, 읽은 자들이 무사할 수 없었던 책은 끝내 살아남아 후대에 가치를 인정받았다. 시대와 불화한 텍스트는 불굴의 정신이자 정직한 이성을 상징하며 명예가 되었다.
『공포의 텍스트』, 『탈식민주의 성서비평』, 『역사의 그늘에 서서』 등, 이전 서평들에서도 권력에 맞서는 책을 다뤘다. 그러나 이번 책은 실제로 금서로 지정된 책이다. 2008년 국방부는 23권의 불온서적 리스트를 발표한다. 명단을 살펴보면, 소설가 현기영, 역사학자 한홍구, 세계적 석학인 노엄 촘스키까지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 틈새에 낀 아주 친숙하고도 의외인 인물이 있는데, 바로 『강아지똥』을 쓴 동화 작가 권정생이다. 그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이 불온서적으로 선정되었다.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는 동화 작가의 책이 어쩌다 읽어선 안 되는 책이 되었을까?
불온한 영성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함께 일해 함께 사는 세상이 사회주의라면 올바른 사회주의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말도 나온다. “어쩌면 6.25 전쟁은 어떤 제국주의 국가에 의해 개발된 최첨단 전술에 의해 일어난 잔인한 학살극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침도 북침도 아닌 원격 조종에 의한 약소국의 비극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심한 말은 아니다. 국방부가 좋아할 문장들은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수한 책 중에 이 책이 선정될 만큼 걸출하지는 않다. 책의 내용 말고 다른 요인이 더 있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가 모든 국민에게 친숙한 ‘동화’ 작가라는 사실과 그가 보여 준 삶 때문일 것이다.
시골 마을의 동화 작가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세상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고, 아름다워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급진적인 꿈을 꾸었다. 그리고 자본을 거스르는 소박한 삶을 직접 살아 내 보였다. ‘권 집사’의 장례식 때 전국에서 찾아온 수많은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동네 주민들의 반응이 이를 방증한다.
그의 생각은 위협적이었고, 삶은 더 위협적이었다. 또렷한 삶으로 써낸 글은 최우선으로 없애야 할 목소리일 것이다. 말과 삶이 일치하는 거룩함, 우리는 이것을 ‘영성’이라고 부른다.
권정생을 넘어
책에는 마냥 좋게 볼 수 없는 부분들도 있다. 보육원 원장 수녀님이 흑인 아이를 ‘껌둥이’라고 부르며 “가슴 아프지만, 저 애가 사회에 나가서 어떤 수모를 당해도 견딜 수 있게 하자면 여기서 아예 모질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 말도 안 되는 교육관을 소개하며 사랑의 매를 옹호하는 글과,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 이런 아버지의 밥상 앞 훈계 같은 것은 코웃음으로 흘려버린다. 아이들은 버릇이 없고 걸핏하면 세대 차이를 들고 나선다”라는 ‘요즘 애들은…’의 유구한 대열에 참여한 점 등은 이 책의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아무리 불온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도, 시대와 상황이 바뀌면 불온함에 대한 기준도 변하기 때문에 텍스트를 의심하고, 옛것을 그저 답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늘 요구된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책의 한계는 권정생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그를 넘어서야 할 우리의 몫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진정 중요한 것은 불온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불온하게 책을 읽는 것이다.
다시, 책의 명예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아동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저자는 상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동문학이 과연 어린이를 위해 무엇을 했기에 이런 상을 주고받는가. 차라리 우리 아동문학만이라도 상을 없애자.”
명예를 거부하는 자의 모습은 진정 명예롭다. 아무래도 그를 넘어서기가 결코 만만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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