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는 새로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으며, 그 강력한 바람을 타고 개혁을 해 나갔다. 이러한 루터의 발 빠른 모습은 다양한 미디어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오늘날, 교회에 큰 귀감이 될 것이다. 성서로, 복음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 이 개혁가는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한 고리타분한 이미지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최신 미디어를 사용한 선구자였던 것이다. (본문 중)

박예찬(IVP 편집자)

 

이길용 지음 | 『루터』

아르테 | 2020년 12월 23일 | 256쪽 | 18,800원

 

루터에 관한 책은 아주 많다. 온라인 서점에 ‘루터’를 검색하면 700권이 넘는 책이 나오는데, 마틴 루터 킹이 포함된 숫자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상당한 양이다. 따라서 먼저 밝혀 둘 것은 루터에 관한 많고 많은 책 중 왜 이 책을 선택했는가다.

 

이유는 명확한데, 바로 책의 부제가 “근대의 문을 연 최후의 중세인”이었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창시자’, ‘종교개혁가’와 같은 흔한 수식이 아니라, 중세와 근대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루터에 관심이 생겼다. 보다 넓은 역사적 차원에서 루터와 종교개혁이 어떻게 해석되는지 궁금했다. 역사적 인물과 그 인물에 관한 역사적 장소를 함께 소개하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에 속한 이길용의 『루터』는 이러한 궁금증을 채워 주기에 적합한 듯했다.

 

루터라는 분기점

 

교회에서는 종교개혁을 가톨릭에서 개신교가 갈라져 나온 것으로 이해하곤 하지만, 종교개혁은 중세에서 근대로 변화하는 하나의 기점이었다. 그 변화는 물론 집단으로부터 개인으로의 전환, 즉 근대적 주체의 등장이라 할 수 있고, 그 선두에는 만인제사장주의와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외치며 제도적 집단을 타파한 루터가 있다.

 

“독일과 유럽 내에서 루터의 영향은 종교의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펼친 운동을 가리킬 때도 ‘종교개혁’이 아니라 그냥 ‘개혁’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루터는 최후의 중세인이자 최초의 근대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루터와 종교개혁은 단순히 종교적 영역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거대한 차원을 바꾸었다.

 

읽기 혁명

 

저자는 종교개혁의 중추에는 읽기, 즉 독서가 있었다고 말한다. 루터는 성서를 직접 읽음으로 가톨릭의 성서 해석을 상대화하고 비판할 수 있게 되었다. “즉 그의 작업은 ‘신앙적 언명에 대한 해석’을 바꾸려 한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종교개혁은 일종의 해석학적 운동이며, 그렇게 루터는 당시 가톨릭이 독점한 성서와 신앙적 세계에 대한 해석권을 찾아오려 했다!” 성서에 대한 해석이 바뀌자 그로부터 파생된 교리와 제도를 개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해석은 사람의 세계관, 가치관, 행동 양식에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해석권이 움직이면 모든 지형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사사키 아타루의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도 루터의 읽기를 혁명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한다.

 

대혁명이란 책을 읽는 겁니다. 루터는 무엇을 했을까요? 성서를 읽었습니다. 그는 성서를 읽고, 성서를 번역하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하여 혁명이 일어났습니다.1)

 

‘독서가 대혁명이다’라는 단호하고 무모한 말은, 행동과 대비되어 무력하고 무용하게 여겨지는 독서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은 달리 표현해 독서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쉽게 번역된 성서를 펴내어 누구든 읽게 함으로써 종교개혁은 성공할 수 있었다. 그것은 결국 독서를 통한 소통의 승리다.”

 

『루터』 표지, ⓒ아르테 출판사

 

미디어 혁명

 

이러한 읽기 혁명이 루터 개인의 변화에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한 가지 혁명이 더 필요했다. 독서를 혁명으로 만든 혁명, 바로 미디어의 혁명이다.

 

활판 인쇄술에 우리는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인다.…활판 인쇄술은 성서의 보급과 대중화를 통해 교회의 신앙 독점을 부수었고, 근대 사회로의 문을 열어젖힌 프로테스탄트 집단을 만들어 냈으며, 이를 통해 또 다른 대중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2)

 

일찍이 빅토르 위고 역시 비슷한 말을 남겼다. “인쇄술의 발명으로 예술과 동시에 사상도 도처에서 해방되었다.…인쇄술 이전이라면 종교개혁은 교회 분리에 불과했을 것인데, 인쇄술은 그것을 혁명으로 만들었다.…그것이 숙명이든 하느님의 섭리든 간에 구텐베르크는 루터의 선구자다.”3) 위고 역시 ‘종교의 개혁’과 ‘혁명’을 구분하고, 루터의 개혁을 전방위적 혁명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사키 아타루는 루터가 이 발전을 얼마나 적절하게 활용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정보를 제시한다. 루터가 등장하기 전인 16세기 초에 출간된 독일어 서적은 40종에 불과했다. 그러나 1523년에는 약 500종에 이르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그중 418종이 루터와 그의 적대자들에 의해 저술되었다. 심지어 루터가 쓴 책은 1519년에는 독일 전체 출판물 중 3분의 1을, 1523년에는 5분의 2를 차지했으니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수치다.4)

 

루터는 새로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으며, 그 강력한 바람을 타고 개혁을 해 나갔다. 이러한 루터의 발 빠른 모습은 다양한 미디어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오늘날, 교회에 큰 귀감이 될 것이다. 성서로, 복음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 이 개혁가는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한 고리타분한 이미지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최신 미디어를 사용한 선구자였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질문도 던지게 된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지 600년이 되어 가는 지금, 책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인쇄 혁명을 타고 새로운 사상을 전파했던 책은 더 이상 대중에게 각광받는 미디어가 아니다. 그렇다면 책의 한계를 극복할 개혁이 필요할까? 아니면 책의 시효는 이제 다 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혁명이 필요한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는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이며, 변화에 어떻게든 적응할 것이다. 그러나 성서라는 책을 그 토대로 두는 기독교에 있어 이 질문은 어쩌면 사활을 걸고 탐구해야 할 것일지도 모르겠다.

 


1)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

2) 강유원, 『책과 세계』(살림).

3) 빅토르 위고, 『파리의 노트르담』(민음사)에서 재인용.

4)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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