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출산제는 무작정 익명 출산을 권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위기 임산부에게 먼저 출생 신고부터 강제하지 않음으로써 고립을 막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직접 양육할 수 있도록 상담을 통해 지지하면서 국가의 지원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자립할 때까지 엄마와 아기가 함께 지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상담을 합니다. (본문 중)

정은주1)

 

김민정 님의 글 “출생통보제와 미혼모 가족 보호”(2023. 8. 17.)를 읽고 내용 중 보호출산제 입법 반대 입장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해 주신 정은주 님의 글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을 통보하는 ‘출생통보제’는 매우 기본적이고 당연한 아동의 권리입니다. 저 역시 이 법안의 통과를 환영합니다. 그러나 보호출산제가 병행 입법되지 못한 데 대해서는 적잖이 우려가 됩니다.

 

베이비박스 상황과 영아살해죄 관련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 계획하지 않은 임신, 성폭행, 불륜, 혼외자, 불법 체류 등이 그 원인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출생 신고가 어려운 경우는 단순히 정보 부족이나 무지의 탓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놓고 볼 때, 미혼모의 출산을 무조건 숨겨야 한다는 견해가 나쁜 만큼이나 신분을 드러내지 못하는 출산을 무조건 막는 것 또한 옳지 않습니다.

 

국회 법사위는 출생통보제를 통과시킬 당시 보호출산제에 대해서도 전원 일치된 의견을 낸 바 있습니다. ‘출생통보제만 시행되면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나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게 되니 신속히 보호출산법이 통과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보호출산제는 2020년 정기국회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도 도입을 주장했고, 지난 정부에서도 한결같이 도입을 얘기했습니다. 물론 현 정부도 지난 4월, 정부 주요 아동 정책으로 변경 도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정치권과 단체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는 것과, 아동이 생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입니다.

 

 

남녀 공동의 행위로 임신했음에도 남자는 본인이 원할 시 철저히 익명을 보장(?)받는 반면, 여성은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모텔이나 공중화장실, 심지어 야산에서 홀로 아기를 낳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호출산법을 발의한 김미애 의원이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영아살해죄 1심 판결문 46건을 분석한 결과, 가해자는 전부 신원 노출을 꺼려 병원 밖에서 출산한 생모였습니다.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궁지에 몰린 위기 임산부들을 병원 내 출산으로 유도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더 사각지대로 모는 비극이 빚어질 것임을 추론할 수 있게 만드는 사실입니다.

 

보호출산제는 무작정 익명 출산을 권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위기 임산부에게 먼저 출생 신고부터 강제하지 않음으로써 고립을 막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직접 양육할 수 있도록 상담을 통해 지지하면서 국가의 지원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자립할 때까지 엄마와 아기가 함께 지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상담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다행히 생모가 출생 신고를 결정하면 양육을 선택하거나 합법적인 입양으로 아기는 보호될 것입니다. 도저히 본인 이름으로 출생 신고를 못 하는 경우에는 생부모의 정보, 아동의 출생 배경 등을 기록 보관하되, 훗날 아동이 성년이 됐을 때 정보 공개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입양 아동이 생부모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아동도 똑같은 권리를 갖는 것입니다. 생부모 정보는 삭제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동의에 의해 공개될 수 있도록 보관합니다.

 

‘한국가온한부모복지연대’의 박리현 대표는 “위기 임산부의 심리적 불안감이 아동 학대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만큼,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출산제 입법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같은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아동복지 현장을 취재하면서 제가 느꼈던, 늘 되풀이해 온 저의 주장을 옮겨 적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신영복 선생은 ‘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라는 말로 변화를 선도하는 자세를 표현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아무리 시급한 정책이라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나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선행되지 않으면 진보의 시계는 멈출 수 있다”(정은주, 『그렇게 가족이 된다』, 58).

 


1) 전국입양가족연대 팀장. 『그렇게 가족이 된다』(민들레, 2021)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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