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고, 초음파로 동료들과 소통하며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돌고래는 콘크리트 수조에 갇히는 순간 큰 혼란에 빠진다. 콘크리트 수조는 초음파를 반사하여 돌고래를 계속 혼란하게 만들고, 길어야 몇십 미터에 불과한 공간은 사람으로 치면 평생 침대 만 한 크기의 방에 가두는 것과 같아 큰 스트레스를 준다. (본문 중)

김영환(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세상엔 다양한 동물들이 있다. 그중에서 수족관의 돌고래는 아마 한국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동물에게 영향을 끼친 동물일 것이다. 한국은 2016년 “동물원및수족관의관리에관한법률”(이하 동물원법) 제정 이전까지 100년 넘는 세월 동안 동물원을 관리하는 법률이 없었다. 또한 “야생생물보호및관리에관한법률”(이하 야생생물법)은 동물원에 전시되는 국제적 멸종 위기종의 수출입과 유통 과정에서 동물의 복지를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2년부터 시작된 수족관 돌고래 방류 운동을 통해 한국 사회에 동물원법이 만들어졌고, 야생생물법 개정으로 멸종위기 동물의 수출입과 국내 관리 체계가 크게 강화됐다. 이 법들은 우리나라 동물원에 전시되는 수백 수천 종의 동물들의 처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돌고래가 수족관 바깥의 많은 동물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 구체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12년, 제주도 중문 관광단지의 한 유명한 수족관이 제주 앞바다에서 돌고래를 불법으로 포획해 돌고래 쇼를 시켜왔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수사 기관이 유통 과정을 추적해 보니 서울대공원의 돌고래들도 대부분 제주도에서 불법으로 잡힌 것을 재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환경 단체와 동물 보호 단체들은 불법으로 잡힌 돌고래를 즉시 바다로 돌려보내자는 돌고래 방류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사육사와 교감을 하며 아름다운 쇼를 연출하는 줄 알았던 돌고래가, 사실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수족관 돌고래의 삶은 인간에게 잡힐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고통뿐이었다.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고, 초음파로 동료들과 소통하며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돌고래는 콘크리트 수조에 갇히는 순간 큰 혼란에 빠진다. 콘크리트 수조는 초음파를 반사하여 돌고래를 계속 혼란하게 만들고, 길어야 몇십 미터에 불과한 공간은 사람으로 치면 평생 침대 만 한 크기의 방에 가두는 것과 같아 큰 스트레스를 준다. 또한, 야생에서 살아있는 물고기만 사냥하는 돌고래는 수족관에선 사육사의 지시에 따를 때만 냉동된 죽은 물고기를 받아먹는다. 많은 돌고래들이 처음엔 죽은 물고기를 먹는 것을 거부하는데, 보통 1~2주 이상을 굶고 나서야 생존을 위해 죽은 물고기를 먹기 시작한다. 야생의 돌고래 수명은 30년에서 40년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수족관의 돌고래들은 짧게는 1~2년, 보통 5년 정도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그리고 죽은 돌고래의 자리는 바다에서 새로 잡아 온 돌고래가 채운다.

 

 

서울시는 불법으로 잡힌 돌고래들을 모두 바다로 돌려보내라는 시민들의 요구가 빗발치자 돌고래 야생 방류를 위한 시민 위원회를 구성하고 각계 전문가들을 불러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낼 방법을 연구했다. 잡힌 돌고래를 수족관에 넣는 경우는 있어도, 수족관에 있던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낸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돌고래가 살아야 할 곳은 바다였기에 전문가들은 신중한 검토와 준비 끝에 2013년부터 수족관 돌고래들을 제주 바다에 풀어주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일부 돌고래가 바다에서 다시 관찰되지 않기는 했지만, 많은 돌고래들이 바다에 안정적으로 정착해 번식까지 하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 그중 유명한 돌고래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왔던 남방큰돌고래 태산이와 복순이다.

 

돌고래들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많은 것을 깨달았다. 돌고래가 바다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우선 그들이 불법으로 잡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 돌고래가 바다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의 전부일까? 돌고래와 야생에서 잡혀 온 다른 동물들은 무엇이 다를까? 인간의 정한 합법과 불법의 구분이 쇠창살 너머의 동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돌고래 방류 운동은 자연스럽게 동물 전시의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던 전시 동물 보호 운동과 결합하였고 많은 논의 끝에 국회는 동물원법을 만들었다. 동물원법은 모든 동물들을 다시 야생으로 풀어주는 법은 아니었지만, 이미 전시되고 있는 동물들에게 최소한의 복지를 보장하고 관리자에게 동물을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여러 가지 의무를 부여했다. 또한 환경부는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포획한 멸종 위기종은 국내에 수입할 수 없도록 야생생물법을 개정했고, 최근 제주도청은 제주 바다에 사는 돌고래들을 ‘생태법인’으로 지정하여 법인격을 부여하고 권리를 보장하려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듯 전시 동물들의 권리와 복지를 보장하는 운동의 중심에는 돌고래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도 불구하고 한국엔 아직 5개 수족관에 21마리의 돌고래들이 남아 있다. 또한 동물원의 열악한 처우와 동물들의 고통 역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 에버랜드의 판다 푸바오가 귀여운 행동과 외모로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것은 극히 운이 좋은 일부의 사례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동물을 의인화하고 동물원이 좋은 공간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푸바오가 유튜브를 찍는 동안에도 전국 곳곳의 동물원에선 갈비뼈가 앙상한 사자, 끊임없이 머리를 흔들며 이상 행동을 보이는 코끼리, 모든 것을 포기한 무기력증에 빠져 움직이지 않는 라쿤 등 수천 마리의 동물들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돌고래는 수족관에 사는 동물이 아니며 그들의 고향인 바다에서 살아야 한다. 다른 야생 동물들 역시 잡아 가두고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자연에서 본능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수족관의 돌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은 단순히 법을 지킨다거나, 생명을 경시하는 동물 산업과 싸운다거나, 한 개체에 고통을 주느냐 마느냐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은 우리가 동물을 포함한 사회의 약자를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대한 문제다. 우리는 우리보다 약한 존재를 가두고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존중하고 공생할 것인가? 21마리 수족관 돌고래는 물속에서 우리 사회를 시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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