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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하제는 “천년 하제”라 불릴 만큼 풍요로운 마을이었다. 1990년대 말까지 새만금은 국내 생합 생산의 90%를 담당했는데, 특히 600여 가구가 살았던 하제 마을은, 새만금 근처 어촌 중 가장 많은 조개류를 생산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바닷길이 막히고 갯벌이 썩기 시작한 이후로 주민들은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본문 중)

 

홍천행(기윤실 간사)

 

군산과 나는 인연이 깊다. 군 복무 당시에는 군산 비응도에서 몇 달간 파견 근무를 하기도 했고, 2020년에는 군산 월명동에 있는 청소년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처음 새만금 간척 사업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하제마을 때문이다. 지역 청소년들과 하제마을을 알아보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함께 하제마을에 방문하기도 했다. 또한 내가 일하는 공간과 이웃해 있었던 평화바람부는여인숙1)과 평화바람2)의 활동가를 통해 하제 마을과 얽힌 다양한 문제를 다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군산에는 상제, 중제, 그리고 하제 마을이 있었다. 상제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군사 기지로 인해, 중제는 이후 미군 기지로 인해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하제는 “천년 하제”라 불릴 만큼 풍요로운 마을이었다. 1990년대 말까지 새만금은 국내 생합 생산의 90%를 담당했는데, 특히 600여 가구가 살았던 하제 마을은, 새만금 근처 어촌 중 가장 많은 조개류를 생산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바닷길이 막히고 갯벌이 썩기 시작한 이후로 주민들은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주민마저 미군 탄약고로부터 안전거리를 확보한다는 이유로 쫓겨나게 되었다. 끝까지 남아서 자리를 지킨 것은 인간이 아닌 약 600년 된 팽나무와 200년 된 소나무였다. 그러나 하제 마을 일대의 201만 제곱미터를 미군에게 탄약고 안전 지역권으로 공여하는 비공식 협상으로 인해 이 나무들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군산 주민들과 시민 단체는 600년 된 팽나무를 지키기 위해 2020년 10월, 팽나무 앞에서 ‘팽팽 문화제’를 시작함으로써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다행히 미군과의 토지 공여 협상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팽나무는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게 되었다.

 

수라갯벌 하늘과 각종 염생식물. photo by 홍천행

 

국가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를 짓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넓은 갯벌을 파괴했고, 탄약의 집을 짓기 위해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집에서 내쫓았다. 군사주의와 기후 위기가 작은 어촌 하제에서 만났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이 만남은 우연일 뿐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군산을 떠난 뒤에도 종종 하제 마을을 생각했고, 이를 통해 기후 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23년, 9·23 기후정의행진3)에 참여했고, 이후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 제작진이 9·23 기후정의행진 추진위원을 위해 마련한 시사회에 참석했다. <수라>는 수라 갯벌에서 벌어지는 새만금 간척 사업이라는 거대한 국가 폭력을 당한 생명체들의 이야기이다. 환경·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새만금 간척 반대 운동이 벌어졌지만, 2006년 4월 대법원 판결 이후 새만금 방조제로 인해 바닷물길이 막히고 어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났다. 수문이 완공된 후 바닷물을 만나지 못한 조개들은 하늘에서 내린 빗물을 바닷물로 착각하고 올라왔다가 다시 움직이지 못하고 수만 미가 집단 폐사하게 된다. 생태 학살이 자행된 것이다. 이후 간척 반대 운동은 힘을 잃고 간척 사업은 사람들에게서 잊혀갔다. 새만금 간척 사업을 주목하고 갯벌을 영상에 담던 황윤 감독 또한 대법원 판결, 그리고 어민의 사고사로 인한 개인적 충격으로 갯벌을 멀리해 왔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후, 황윤 감독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인 오동필 단장을 통해 다시 수라 갯벌에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철새들의 군무를 본다. 황윤 감독은 150여 마리의 저어새의 날갯짓에 압도되는데, 이때 오동필 단장은 “이 아름다운 것을 본 것도 죄가 되는지, 이 죄 때문에 책임을 면할 수 없어서 여기 남아 있다”라고 한다. 황윤 감독이 멈추었던 촬영을 이어간 이유도 오동필 단장처럼 ‘아름다운 것을 본 죄’ 때문이리라. 이처럼 수라 갯벌에는 다양한 아름다운 것이 존재한다. “‘고라니’의, 일곱 빛깔 모습으로 변신하는 ‘칠면초’의, ‘개개비’의, 겨울을 나기 위해 몽골에서 내려온 ‘잿빛개구리매’의, ‘쇠제비갈매기’의, 매일 아침 물고기를 먹으러 출근하고 오후엔 잠잘 곳으로 퇴근하는 ‘가마우지’의 영토”인 것이다.4)

 

수라갯벌 위를 나는 민물가마우지. photo by 홍천행

 

여러 환경 단체와 시민 사회의 노력을 통해 정부는 2020년부터 하루 2회 배수 갑문을 열고 제한적인 수위로나마 해수 유통을 하기로 한다. 오동필 단장은 해수 유통 이후로 놀라운 사실을 마주한다. 다 사라진 줄로만 알던 흰발농게가 게 구멍에서 자신을 드러낸 것이다. 오 단장 자신이 “갯벌이기 때문에 갯벌이라고 불러야 한다”라고 말하면서도, 10년 이상 물이 들어오지 않아 그 역할이 끝나고 육화(陸化)되었다고만 생각했던 갯벌이 살아 있었다. 영화를 보고 몇 달 후 기후정의기도회로 방문했던 수라 갯벌에서 나는 내 눈으로 직접 게 구멍을 볼 수 있었다! 습지에 펼쳐진 다양한 빛깔의 칠면초, 퉁퉁마디 등의 염생 식물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5)

 

수라갯벌의 게구멍. photo by 홍천행

 

수라갯벌의 칠면초. photo by 홍천행

 

해수 유통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라 갯벌은 새로운 위기에 직면한다. 그것은 새만금 신공항 사업이었다. 2022년 6월, ‘새만금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이 수립·고시되었다. 새만금 신공항 예정지는 현 군산공항에서 서쪽으로 1.3km 떨어진 위치이다. 군산공항이 미 공군이 사용하기 때문에 순수 민간 공항의 역할을 하지 못하므로 새만금 신공항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명분으로서는 부족하다. 비록 정부와 지자체가 ‘전북권 경제 활력 제고’라는 실낱같은 기대로 새만금국제공항 개발 계획을 수립했다 하더라도, 전북도민의 바람과는 달리 이미 지어진 다수의 국제공항처럼 적자를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고, 결국 실질적으로는 미군 기지를 확장하는 사업에 그칠 수 있다. 미군의 선박과 항공기는 어떤 항구나 비행장도 무료로 출입할 수 있다는 SOFA 규정에 따라 새만금 신공항 또한 언제든지 미군이 이용할 수 있다. 더구나 신공항 계획 수립 이전부터 미군의 공항 확장 관련 요청이 있었다.6) 전투기 소음은 지금도 이미 심각한데, 새만금국제공항 부지에서 진행했던 기후정의 기도회 내내 수없이 날아가는 전투기 때문에 기도회를 진행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수라갯벌 위를 나는 전투기.  photo by 홍천행

 

새만금 신공항 건설을 멈추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환경’이다. 앞서 말한 해양수산부의 “블루카본 추진전략”에서는 염생 식물을 심고 재배하여 현재 32k㎡(1.1만 톤)에 불과한 염습지를 660k㎡(23만 톤)까지 늘리고 신규 블루카본의 선제적 보호·복원을 위해 방치된 간척지 등에 해수를 유통하여 갯벌로 복원하고 탄소 흡수 기능을 회복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해수를 유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갯벌에 새만금 신공항을 짓고자 한다. 같은 행정부 안에서도 손발이 맞지 않는 것이다. 새만금백지화공동행동에 따르면 “새만금 신공항 계획 부지인 수라 갯벌이야말로 대규모 염습지와 갯벌로 형성된 연안 습지로서(전체 면적 21㎢; 새만금 신공항 계획 부지에 포함된 면적 3.4k㎡) 정부가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들여 그토록 복원하려고 하는 블루카본 그 자체”이다. 더구나 새만금 신공항을 짓고자 하는 수라 갯벌은 멸종 위기 동식물이 42종 이상 서식하는 중요 지역으로, 환경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흰발농게와 금개구리 등이 대규모로 서식하고 있다. 국토부는 멸종 위기 동식물의 존재를 은폐 및 축소하여 새만금 신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 후 환경부의 보완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도 않았고, 환경부는 이러한 미흡한 평가서에 ‘조건부 동의’하고, 미흡한 부분에 대한 보완은 나중에 하라는 비상식적인 결정을 한 것이다. 이처럼 환경영향평가는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7), 새만금국제공항뿐 아니라 수많은 개발 사업의 면죄부가 된다는 오명을 쓰고 있다.8)

 

군사주의와 기후 위기는 하제 마을뿐 아니라 수라 갯벌에서도 만났다. 이것이 단순히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 군사주의와 기후 위기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국제적 책임을 위한 과학자들’(SGR: Scientist for Global Responsibility)에 따르면, “군수 산업과 군사 활동으로 인한 탄소 배출은 전 세계 배출량의 6%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한다. 다른 분야에서의 탄소 배출이 줄어들고 있지만 군수 분야 탄소 배출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국방 분야는 각국의 탄소 감축 의무에서 제외되어 있다. 1997년 교토의정서 각국 탄소 배출량 집계에서 제외되어 있고, 2016년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도 국방 부문 배출량 보고는 ‘의무 사항’이 아닌 ‘선택 사항’으로 두고 있다. 한국의 군사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0년 약 388만 톤CO2-eq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공공 부문 전국 783개 기관의 2020년 총배출량 370만 톤CO2-eq보다 많은 양이다.9) 이처럼 군비 경쟁은 기후 위기를 심화시킨다.

 

동시에 기후 위기는 전쟁을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예로 들자면, 화석 연료 사용을 통해 에너지 패권을 가진 러시아에 자본이 들어가고, 들어온 자본은 우크라이나의 천연가스 등의 자원 확보를 위한 전쟁에 다시 투입되어 러시아의 에너지 패권을 공고히 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XR10) Ukraine은 성명을 통해 “푸틴의 군대가 석탄, 석유, 가스 산업으로부터 자금과 연료를 공급받고 있고, 화석 연료에 중독된 세계가 전쟁을 원하는 푸틴에 자금을 대주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기후 위기를 낳는 화석 연료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하고, 그 전쟁을 통해 기후 위기가 심화되며, 기후 위기의 심화는 또다시 갈등의 원인이 되는 식량난, 기후 난민 등의 문제를 낳고, 그것이 또 다른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

 

기후정의기도회 사진. photo by 기독교기후위기비상행동

 

과거에 로마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Pax Romana’(로마의 평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식의 힘에 의한 평화는 과연 누구에게, 얼마나 평화로웠나? ‘Pax Romana’이후 20세기가 지난 오늘, 미국과 중국 사이의 힘의 대결로 신냉전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 군산의 수라 갯벌은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로 다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진정한 평화를 위하여, 전쟁이 아닌, ‘평화’를 준비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또한, 기후정의 없이는 평화를 말할 수 없고, 기후정의는 군비 증강이 아닌 군축을 통해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육화(陸化)되어 죽어가는 수라 갯벌을 갯벌이라고 부르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며 그것을 현재로서 살아내는 믿음을 떠올리게 한다. 에스겔의 환상에서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여호와께서, 마른 갯벌에 멸종 위기의 흰발농게와 금개구리가 다시 살게 하신다. 다시 저어새와 도요새의 아름다운 군무를 보게, 그 찬란한 날갯짓 소리를 듣게 하신다.

 


1) 현. 군산평화박물관.

2) 군산과 제주 강정을 중심으로 한 평화 운동 단체.

3) 윤동혁, “느리게 함께 걷는 정의로운 사회: 9·23 기후정의행진 참가 후기”, 「좋은나무」, 2023. 10. 26.

4) 영화 <수라> 내레이션 중에서.

5)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블루카본 추진 전략”(2023. 05. 31.)에 따르면 갯벌 염습지와 같은 해양 생태계의 탄소 흡수 속도는 육상 대비 최대 50배가 빠르며, 염습지의 탄소 흡수량 또한 동일 면적 열대 우림에 비해 약 4배가 많다고 한다.

6) ①미군이 2007년과 2013년에 군산시에 제2활주로 추가설치 희망 공문을 보냈으며, ②신공항 위치는 미군의 추가 활주로 설치 요구안과 일치하며, ③처음 사업 계획에는 없었던 군산공항과 새만금 신공항을 연결하는 유도로(Taxiway) 사업이 미군 요구에 의해 추가되었고, ④“새만금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용역 보고서”에는 여러 후보지 중 수라 갯벌을 새만금 신공항 부지로 선정한 이유 중 하나가 미군이 요구한 안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7) 환경영향평가법 제1조: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계획 또는 사업을 수립·시행할 때에 해당 계획과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예측·평가하고 환경보전방안 등을 마련하도록 해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건강하고 쾌적한 국민생활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8) 주영재, “10년간 개발사업 93%에 “동의”…환경영향평가 뭐하러 한 거야“, 「경향신문」, 2023. 08. 27.

9) 9·24 기후정의행진, “군대와 전쟁, 그리고 탄소 배출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참여연대」, 2022. 09. 26.

10) XR(Extinction Rebellion): 비폭력 직접 행동과 시민 불복종을 통해 각국 정부가 기후 및 생태 비상사태에 정의롭게 대처하도록 설득하는 탈중앙화되고 국제적이며 정치적으로 초당파적인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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