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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타깝게도 ‘알 권리’ 차원에서는 거의 나아진 점이 없다. 이러한 답답한 상황을 방지하려면 유가족이 정식으로 경찰과 근로감독관에게 고소장(진정서)을 제출하고 경찰과 근로감독관에게 자주 연락해서 수사 상황을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일 뿐이므로 결코 먼저 연락을 주어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기 때문에, 계속 쫓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본문 중)
손익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공동대표변호사)
당신의 가족이 오늘 일터에서 죽는다면
당신의 가족이 오늘 일터에서 죽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신은 회사 동료의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가게 된다. 가족은 매우 위독한 상태거나 이미 사망했다. 경찰이 와서 시신을 모두 탈의시키고 특이 사항이 있는지를 확인한다(검시). 당신은 경찰서로 가서 유족 진술을 하게 된다. 평소에 원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은 없었는지(살인인지), 채무 상황이 안 좋거나 가족 간 불화는 없었는지(자살인지), 무엇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지 등 질문을 받게 된다. 또 부검을 희망하는지를 확인한다. 참고로 수사 기관에서 봤을 때 부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부검을 하겠다’라고 통지한다. 지장을 찍고 장례식장으로 간다. 그날은 슬퍼할 틈도 없이 흘러간다.
장례식장으로 회사 관계자가 찾아온다. 치료비와 장례비 전부를 지불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많다. 관계자는 명함을 건네주면서, ‘회사에서는 시키지도 않은 작업을 왜 고인께서 하다가 돌아가셨는지 모르겠다’, ‘안전 교육을 했던 사항인데 왜 작업 수칙을 어겼는지 모르겠다’ 등의 변명을 한다(회사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를 지켰지만 작업자가 일탈을 한 것으로 이해시키려는 전략이다). 유족으로서는 현장의 작업 방식을 잘 모르니 화를 내기도 어렵다. 그러면서 회사는 ‘위로금’이라며 금전을 제시한다. 사망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누구 잘못이 더 큰 것인지 확신이 서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이 ‘위로금’을 받으면 계속 억울한 채로 살아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거절하면 당장 남은 가족들의 생계가 막막하다. 친척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평소에는 연락이 안 닿던 어떤 친척은 ‘자신이 변호사(혹은 노무사, 손해사정사)를 잘 안다’라면서 소개해 준다고 한다. 당장 결정해야 할 것은 너무도 많은데 아는 것은 없고,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 취급을 받는다
정신없는 와중에 장례를 치렀다. 한숨 돌린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TV나 영화에서 많이 봤어. 사건 현장에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고, 현장 검증 같은 것을 할 때 나한테 연락하겠지.’ 놀랍게도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는다. 회사 관계자한테 연락해 보니, ‘이미 경찰이랑 고용노동부에서 다녀갔다’라고 한다. 당신은 유족 진술을 받았던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본다. ‘누구 잘못인지 정확히 밝혀진 겁니까? 저는 왜 안 부른 건가요?’ 형사는 말한다. ‘수사 중인 사항이어서 정확히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그리고 현장 검증에는 원래 유가족 안 부릅니다.’ 경찰은 그런 줄 알겠는데 고용노동부는 뭐 하러 온 거지? 수소문 끝에 고용노동부 관할 지청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고, 2, 3번 정도 전화를 돌려 받다가 드디어 담당 근로감독관과 통화를 하게 된다. 대개는 경찰보다는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해 주지만, 여전히 수사 중이어서 자세히 말해 주기는 어렵다는 말만 듣는다. 뭔가 시원하게 설명되는 것이 없다.
이 상태로 가만히 있는다면 수사 결과나 재판 결과를 알지 못하게 된다. 회사 관계자는 장례식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가 갑자기 연락이 와서 ‘합의서를 어서 쓰자’고 독촉을 한다. 고인이 잘못한 것이기는 하지만, 회사가 ‘근재보험’을 들어 놨으니 보상금을 넉넉하게 줄 수 있다고 한다. 회사가 도와줄 테니 산재 보험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산재 보험은 4대 보험으로서 국가가 운영하는 것이므로, 회사가 도와주지 않더라도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이렇게들 생색을 낸다.
산재 유가족의 알 권리, 참여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위의 내용은 분기마다 1-2명꼴로 산재 유가족을 상담하는 필자의 경험을 기반으로 설명한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되었으니 좋아진 점은 있지 않은지 궁금해할 수 있다. 분명히 좋아진 점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일터에서 1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2명 이상이 6개월 이상 치료를 받게 되거나, 동일한 원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이 발생하면 ‘중대산업재해’로 보고, 원청(도급인)의 대표 이사의 잘못을 찾아내서 처벌하는 법이다. 그 덕분에 회사나 공공 기관이 산재에 기울이는 관심이 커졌다. 통계상 드러나는 산재 사고 사망자도 감소 추세에 있다(2022년 644명, 2023년 598명). 그리고 ‘당신 가족이 잘못해서 죽는 바람에 회사에 끼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는 폭언이나, 불쌍한 사람에게 적선하듯이 ‘몇백만 원’ 정도의 위로금만 던져 주고 합의서를 강요받는 황당한 일은, 이제 거의 없어진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알 권리’ 차원에서는 거의 나아진 점이 없다. 이러한 답답한 상황을 방지하려면 유가족이 정식으로 경찰과 근로감독관에게 고소장(진정서)을 제출하고 경찰과 근로감독관에게 자주 연락해서 수사 상황을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일 뿐이므로 결코 먼저 연락을 주어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기 때문에, 계속 쫓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산재를 포함하여,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와 같은 전반적인 재난 참사 유가족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자는 취지의 ‘생명안전기본법’이 발의되었다(2020년 11월 13일, 의안번호 2105321, 우원식 의원 대표 발의). 김훈 소설가를 비롯한 노동, 시민 사회의 많은 인사들이 애를 썼지만, 아마도 이번 국회에서 통과되지는 못할 것 같다. 변호사를 선임해서 대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변호사를 선임할 만한 재력과 정보력이 없는 유가족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해야만 알 권리가 보장되는 지금의 상황이 문제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2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로, 중대 재해를 개인의 잘못으로만 보지 않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대 재해는 결코 우연히 발생하지 않고, 수많은 경고 신호가 무시된 끝에 발생한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알려진 ‘하인리히의 법칙’에 따르면, 1건의 중대 재해 발생에 앞서 비슷한 원인으로 29건의 경미한 사고가 있고, 그리고 사고가 발생할 뻔한 적이 300건 정도가 누적되어 있다. 최고 경영자 차원에서 안전에 관하여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이 중대 재해다. 그런 관점에서 보아야 비로소 사망자와 유가족이 범죄의 결과로 ‘억울한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서 다시금 인식될 것이다. 둘째로, 생명안전기본법이 다음 국회에서는 진지하게 다뤄지고,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재난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의 권리가 제도를 통해 분명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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